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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왜' 올라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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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왜' 올라가십니까?

[취재기] '케이블카 반대' 북한산 백운대 농성 김병관 씨

추석연휴의 시작이던 18일.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해발 836m) 등정에 나섰다. 기자는 평소에 걷기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지만 '등산'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최근에 다녀온 산도 딱 1년 전 추석 때 올라간 덕유산 향적봉(1614m)이다. 백운대는 높이가 향적봉의 절반이라지만 해발 100m(북한산성 입구)에서 시작하는 백운대 코스와 해발 600m(삼공리 입구)에서 시작하는 향적봉 코스와 높이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덕유산은 산세가 완만한 반면, 북한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악산으로 꼽히기 때문에 초보자에게 결코 쉽지 않은 산이다.

ⓒ프레시안(김하영)

주말에 이 산을 오르게 된 것은 백운대에서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정상에서는 지리산 연하천 대피소 소장을 지냈던 김병관 씨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를 벌이다 한 달 전에 시위 장소를 백운대로 옮겼다.

산행 처음 30분 정도는 산보 기분이었다. 절까지 차가 다니기 때문에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도 널찍했고 경사도 완만했다. 숲이 깊어지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각종 바위를 기어 올라야했고 경사도 만만치 않았다. 95kg의 거구를 움직이다보니 발걸음도 점점 느려져 30분에 한 번 쉬던 것이 20분에 한 번, 10분에 한 번으로 잦아졌고, 급기야 열 걸음 걷고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약속 시간 오후 4시를 훌쩍 넘긴 오후 6시 반에야 백운대에 올라설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정상에 가까워지니 기운이 솟았다. '네 발'로 기어 올라가긴 했지만.

백운대에 오르니 옆 인수봉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암벽등반을 하고 있었고, 한 외국인 커플은 한국말로 '야호' 격에 해당될 듯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해질녘인 덕분에 서쪽 한강 물줄기를 따라 붉게 노을이 물들고 있었고, 거센 바람이 정상 한 가운데 꽂힌 태극기를 쉼 없이 흔들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수유리, 방학동, 상계동 일대의 아파트 숲이 내려다보였다. '청량감'이라는 말을 이런 때 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는 길에는 '내가 이 짓을 왜 할까'라는 수많은 후회를 들게 하면서도 정상에 서는 순간 그 고통을 깨끗이 잊게 만든다.

ⓒ프레시안(김하영)

정상 바로 아래의 바위에는 커다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국립공원 파괴에 앞장서는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해체하라!! 산상시위 185일째." 김병관 씨가 백운대에 시위를 한 것은 한 달여이지만 이미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위를 하던 중이었다. '케이블카' 논란이 가장 뜨거운 곳이 지리산과 북한산이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김병관 씨는 백운대 바로 아래 백운산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김 씨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옆 자리에서 휴식을 취한 뒤 자리를 뜨려던 중년 사내 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내A: 케이블카 반대요? 북한산에 케이블카가 생겨요? 지리산은 들어봤어도 북한산은 난 금시초문인데.
김병관: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에는 좀 나오는데 이게 조중동, 방송에는 안 나와요. 그래서 사람들이 몰라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북한산 케이블카 검토성 용역도 했어요.
사내A: 그런데 왜 이런 데서 시위를 해요? 사람들 많은 데 가서 해야지. 서명 같은 것도 받아요? 그래봐야 백운대 올라오는 사람들 몇이나 되겠어요.
사내B: 백운대 올라올 정도의 사람들은 케이블카 다 반대하겠지.
김병관: 밑에서도 하는데 난 산 사람이니까 산에서라도 하는 거지요.
사내B: 산 정상은 노력해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누리게 해줘야지.
사내A: 민심이 관건인데.

▲ 김병관 씨. ⓒ프레시안(김하영)

김병관: 2008년에 우이령포럼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서 전국 성인남녀 18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국립공원 내에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는 사람은 전체의 31%였어요. 북한산 케이블카는 90%가 반대했고요.
사내B: 여론조사가 그렇게 나오면 뭐합니까. 청와대가 여론조사에 어디 영향을 받습디까?
사내A: 덕유산도 케이블카 때문에 완전히 망쳐버렸더라고. 중간은 뭐 어떨지 모르겠는데, 설천봉은 완전히 다 깎아버렸더라고.
김병관: 우리나라에 스키장 빼고 케이블카가 22개가 있어요.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도 다 정류장에서 음식 팔아서 남는건데, 북한산도 케이블카 만들면 정류장에 4~5층짜리 건물 지어서 레스토랑이다 카페다 지을 텐데, 그러면 봉우리 완전 날아가는 거죠.
사내B: 들어보니까 지리산은 천왕봉까지 케이블카가 올라간다고 하던데.
김병관: 이게 지금 법으로는 못 가요. 자연공원법 시행령에서 케이블카 길이는 2km 밖에 설치를 못 하거든요. 그런데 지리산 천왕봉까지는 거리가 4km가 넘어요. 그러니까 환경부에서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고쳐서 케이블카 길이를 5km까지 연장하려고 해요. 그런데 시행령은 국회 안 거치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수 있어요. 이걸 추석 연후 앞 뒤 하루를 잡아서 처리한다고 해요.
사내A: 케이블카를 왜 하려고 하는거에요?
김병관: 이게 북한산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설악산 등은 지자체에서 하는 거고. 사실 이게 다 적자에요. 수학여행 많은 설악산이나 통영 정도가 흑자라고 하는데. 이게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거든요. 500억에서 1000억은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 지자체나 이런 데서는 얼마나 탐나겠습니까. 그리고 국립공원 입장료도 폐지돼서 수입도 줄어들었는데, 이런 거 하면 공단에서는 예산도 따올 수 있고. 그리고 우리나라 케이블카는 효성이 거의 다 하고 있어요.
사내B: 선생님 목표 꼭 달성했으면 좋겠습니다.


10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두 사내는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인터뷰 질문을 이들이 다 해버리는 바람에 별로 더 물을 말이 없었다. 김병관 씨가 몇 마디를 덧붙였다.

"선진국에서는 케이블카가 사양산업이에요. 일본은 1990년대 초까지 설치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철거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미국은 산들이 4000~5000m급 산들이고 규모가 커서 몇일을 가야 하는 산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산들은 아무리 험해봐야 오르는데 반나절 코스입니다. 이런 곳에 케이블카를 세운다는 것은 국립공원을 유원지로 만들겠다는 발상입니다."

찬성론자들은 "자력으로 산에 오르기 힘든 노약자 장애인들도 국립공원 경관을 누릴 자격이 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산 길 탐방로를 줄여 산림 보호에 더 효과적이다"는 반박을 하기도 한다.

김병관 씨는 이에 대해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산에 길을 내지 않고도 헬기로 공수하는 방식 등으로 산림 파괴를 최소화 하면서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봉우리를 깎아내야 하고, 케이블카 설치 이후 소음과 전자파가 산림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케이블카 만들어 놓고 탐방로 10개를 5개로 줄인다고 산림이 더 크게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노약자 장애인을 위한다면 케이블카 지을 수천억 원으로 그들을 위한 다른 복지에 쓰는 것이 낫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씨는 "지리산은 천왕봉까지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것인데, 그러면 사람들이 편하게 천왕봉까지 올라와 능선을 타고 종주를 할 것"이라며 "그러면 종주 인구가 급격히 늘어 산림 파괴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 백운대에서 바라본 성북.노원 지역 ⓒ프레시안(김하영)

김 씨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김 씨로부터 손전등을 하나 빌려 산을 내려왔다. 완전히 어둠이 내린 북한산. 깊은 정적 속에 계곡의 물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귀신이라도 만나면 어쩌나 살짝 걱정이 됐으나, 밤에도 이마에 전등(헤드 랜턴)을 켜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김 씨는 추석 때 잠깐 지리산에 다녀온 뒤 백운대에서 계속 농성을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김 씨에게서 빌린 손전등을 돌려주기 위해 기자도 다시 한 번 올라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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