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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하면 역시…'해리 포터' 볼드모트도 탐냈던 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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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하면 역시…'해리 포터' 볼드모트도 탐냈던 원소!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것도 아닌데 다시 조용호 선생님을 떠올렸다. 1980년대 종로학원의 화학 선생님. 지금 생각하면 조용호 선생님은 주기율표 환원주의자였다. 모든 것은 주기율표로 통한다. 내가 배운 화학의 90퍼센트는 그에게 배운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마지막 10퍼센트가 결정적이기는 하다.

나는 화학을 공부했고, 원소를 좋아하며, 주기율표에 여전히 신기해하고,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를 사랑한다. 정식 출간은 되지 않았지만 멘델레예프에 관해 쓴 짧은 책이 잡지의 부록으로 나간 적도 있고, 초등학생용 과학책 시리즈물의 <원소> 편을 쓴 적도 있다. 몇몇 출판사에서 원소에 관한 본격적인 책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다. <원소의 왕국 : 피터 앳킨스가 들려주는 화학 원소 이야기>(피터 앳킨스 지음,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주기율표>(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 죽음을 부르는 독극물의 화학사>(전2권, 존 엠슬리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광기와 사랑, 그리고 세계사>(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까지 나왔는데 원소에 대해 더 이상 쓸 말이 뭐가 있단 말인가? 웬걸! 또 있다. 화학을 전공한 과학저술가가 쓴 <원소의 세계사 : 주기율표에 숨겨진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비밀들>(휴 앨더시 윌리엄스 지음, 김정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가 그것이다.

<원소의 세계사>을 펼치면서 받은 첫 인상은 <사라진 스푼>과 매우 비슷한 책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에 관한 인상은 첫 3초에 결정된다지만, 책은 다르다. 한참 읽은 후에야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라진 스푼>은 원소를 빙자하여 생물학에서 천문학에 이르는 자연과학 전반을 다루는 책이라면 <원소의 세계사>는 원소를 빙자하여 세상 이야기를 하는 문화사 책이다.

▲ <원소의 세계사>(휴 앨더시 윌리엄스 지음, 김정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알에이치코리아
원소로 문화사를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 그 이유를 저자 휴 앨더시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한다.

"원소들은 영원했다. 즉 빅뱅이 있은 직후에 만들어졌고,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지구에 머물 것이며,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물론이고 지구 자체가 죽음의 행성이 된 이후에도 존재를 이어갈 것이다. (…) 모든 일은 역사에서 일어나고, 지리학에서 고유한 위치를 차지하며,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원소들로만 물질적으로 구성된 것이기도 하다. 동아프리카 대지구내, 금란의 영역, 뉴턴의 프리즘, '모나리자' 등 모든 것이 원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13쪽)

원소는 세상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세계사와 문화사 역사 원소로 이뤄져 있을 게 아닌가, 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원소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구성한다면 물-불-공기-흙이라는 상투적인 큰 제목을 붙일 수도 있으련만, 그는 힘-불-기술-아름다움-흙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문화사를 꾸린다.

'힘'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원소는 뭘까? 내가 천박(친박이 아니다.)해서인지는 몰라도 '힘'이라는 단어는 '금'이라는 원소와 연결된다.

<사라진 스푼>은 '돈으로 쓰이는 원소들'이라는 챕터에서 아연(Zn), 금(Au), 텔레늄(Te), 유로퓸(Eu), 알루미늄(Al)을 다뤘다. 그런데 <원소의 세계사>는 '힘'이라는 챕터에서 금(Au), 백금(Pt), 철(Fe), 플루토늄(Pu)과 수은(Hg)을 다룬다. 유럽인들은 금에 대한 욕망으로 신대륙을 찾았고,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영험을 믿고 수은(Hg)을 찾았던 게 아닌가? <해리포터>에서도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볼드모트가 금을 만들고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들 수 있다는 마법사의 돌을 두고서 다투지 않는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로마제국은 청동, 스페인은 황금, 영국은 철과 석탄을 소유함으로써 제국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대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자는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금 대신 플루토늄을 이야기한다. 20세기 초강대국 사이의 균형은 우라늄을 사용하는 핵무기와 우라늄으로 만드는 플루토늄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뭐, 상식이다. 평소에 원소와 관련지어 생각해 본 바가 있는 것은 아니어도, 듣고 보면 빤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즈음마다 저자는 재미있는 요소를 던져준다.

"각 원소는 하나 혹은 두 글자로 줄여진 원소기호를 가진다. 표준적이 규칙에 따르면 플루토늄의 기호는 Pl이 되어야 했지만 우리는 Pu를 선택챘다."고 그(시보그)가 설명했다. P. U.(오줌, 윽!-옮긴이)는 예로부터 미국 영어에서 악취를 뜻하는 비속어이고, 따라서 불쾌한 느낌을 준다. 우리의 작은 장난이 비난을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비난은커녕 장난을 알아채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102쪽)

▲ <사라진 스푼>(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해나무
아뿔사! 나도 그랬다. 플루토늄은 처음 두 알파벳이 Pl인 원소가 이미 있는 경우에만 Pu를 쓰게 된다는 규칙을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플루토늄의 원소기호에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 전 세계 화학자들이여, 뭐 하셨나?

지표면의 매장량은 백금이 황금보다 열 배나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백금의 녹는점이 철보다도 훨씬 높고, 심지어 숯불로 만들 수 있는 최고 온도보다 훨씬 높은 덕택에 예전에는 제력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백금이 가장 가치 있는 금속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실제로 백금이 더 비싸다. 그래서 '골든디스크'보다 더 많이 팔린 음반을 플래티넘 디스크라고 한다.

<원소의 세계사>와 <사라진 스푼>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원소의 세계사>는 확실히 문화사에 가깝고, <사라진 스푼>은 상대적으로 과학책의 성격을 더 띤다. 예를 들어, 유로퓸(Eu)에 관한 설명을 들어 보겠다. 유럽은행은 유로화를 제조할 때 위조지폐를 분간하기 위해 유로퓸이 포함된 형광제를 썼다. 물론 이름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궁금했던 것은 이런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많은 잉크 중에 하필이면 왜 유로퓸이 포함된 잉크가 선택됐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째 됐건 이것은 결국 유럽연합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새로운 지폐가 이것과 동일한 아이디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화학원소를 포함함으로써 교묘하게 강화되는 사명을 보유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원소의 세계사> 481쪽)

"화학자들은 유로퓸 염료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나는 분자의 대부분을 이루는 수용기, 즉 안테나 부분이다. 안테나는 들어오는 빛 에너지를 붙잡아 그것을 유로퓸이 흡수할 수 있는 진동 에너지로 바꾸어 그 에너지를 분자 끝부분으로 전달한다. 거기서 유로퓸의 전자들이 에너지를 받아 더 높은 에너지 준위로 도약한다. 그러나 전자들이 도약을 했다가 추락하면서 빛을 방출하기 직전에 들어온 에너지 중 일부가 도로 안테나 쪽으로 돌아간다." (<사라진 스푼> 481쪽)


그렇다. '원소'에 관한 또 하나의 번듯한 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모두 읽자.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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