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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과 전경련의 아전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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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과 전경련의 아전인수 [편집국에서] 독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통일에 관한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독일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모델"이라며 "올해가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번 방문에서 통일 독일의 모습을 보면서 통일 한국의 비전을 세워보고자 한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저 역시 통일의 산물"이라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통일 과업을 달성한 독일은 부러움의 대상이며 대한민국이 가야할 목표"라고 했다.

이번 박 대통령의 '통일 견학'을 통해 두 가지 점이 눈에 띄었다. 하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이나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반도는 무얼 하고 있었나. 또 하나는 박 대통령이 만난 메르켈 총리와 가우크 대통령이 모두 동독 출신이라는 점이다. 만약 한반도가 통일이 됐을 때 통일 정부와 국회에서 활약할 북한 출신 정치인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통일 대박론'을 펼치는 것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독일은 통일의 상징적 국가이기에 역대 대통령들 역시 방독 중에 대북 관계에 관한 발표들을 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에 곡물지원을 제안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 당국 간의 협력을 제안했다. 김 대통령의 제안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핵화 합의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도 북한에 인도적 지원 확대와 남북경협 다변화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방송 수준이더라도 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통일 의지를 다지고 독일을 배우겠다는데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며칠 더 머무르더라도 통일 말고 다른 것들도 배우고 왔으면 좋겠다.

마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박 대통령의 방독에 맞춰 독일 경제에서 배워야 할 점 4가지를 발표했다. 하나는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투자 유치와 지원, 또 하나는 노동시장 유연성, 그리고 법인세 부담 완화, 3중(지방정부-중앙정부-EU) 기업 지원망 등을 꼽았다.

결론은 기업들을 더 지원해달라고 떼 쓰는 것이다. 법인세 부분만 봐도 전경련은 독일이 통일 전 30%가 넘었던 법인세를 15%까지 낮췄다면서 우리나라 법인세는 너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시한 우리나라 법인세율이 22%이다. 그런데 22%는 최고 법인세율이다. 2012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각종 감면 혜택을 받아 적용된 법인세 실효세율은 각각 16.3%, 15.8% 수준이었다. 반면 독일은 법인세 15% 외에도 통일연대세(통일세)로 소득세와 법인세의 5.5%를 더 부담한다. 여기에 지방정부세 등을 더하면 기업의 총 세금 부담은 기본적으로 20%가 넘는다고 한다. 부가가치세도 계속 올라 19%(우리나라 10%)에 이른다. 독일은 기업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통일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분단세'라도 낼 각오도 없으면서 법인세만 깎아 달란다.

전경련은 또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는 통일 과정에서 얻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동독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유입되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산별노조가 차츰 힘을 잃게 됐고, 과거 산별노조가 주도하던 집단적 임금협상 방식이 개별기업 단위로 바뀌어가면서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이 점차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주장이다. 폭스바겐은 3만 명 이상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계획했지만 주4일제 근무(노동시간 단축), 초과 근무의 유급휴가 전환(노동시간 계좌제) 등을 통해 해고 없는 노동 시장 유연화를 시행했다. 이는 노조의 경영참여와 노사간의 토론과 합의 문화가 바탕이 된 것이었다. 특히 독일은 강력한 사회보장제도가 뒷받침돼 있기 때문에 고용 시장 조정의 저항이 크지 않다. 비정규직으로 근근히 버티다 계약해지(해고) 되면 생계고의 나락에 떨어지는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전경련의 속이 훤히 보이는 이런 조언 말고 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배워야 할 것은 이런 것 아닐까.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을 완전 폐기하기로 했다. 후쿠시마 사태 때문에 갑자기 결정한 것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토론하며 준비해온 정책이라고 한다. 풍력, 태양열,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에 관해 독일은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골치가 더 아파졌다고 한다. 에너지 자립도가 극히 낮은 우리나라도 에너지에 대한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독일식 정치제도 역시 배울 점이 많다. 우리가 당장 독일처럼 의원내각제로 바뀔 가능성은 낮지만 독일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승자독식의 한국 정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잘 들리지 않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서 '사회 통합'을 내걸었다. 사회통합은 강자가 약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때 가능한 것이다.

다행인지 우리나라에는 독일 차만큼이나 독일 전문가들이 많다. 독일에서 공부한 정치인들도 제법 된다. 독일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하루 이틀인 것도 아니다. 하긴, 박 대통령은 정권 출범과 함께 유명한 독일 전문가를 내쳤다. 부디 이번 독일 방문을 통해 박 대통령이 한두 가지라도 제대로 배우고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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