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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쿨투랄리스, 승기 잡은 6.4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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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쿨투랄리스, 승기 잡은 6.4 지방선거 [시민정치시평] 교육감 선거 승리가 진보 진영에 갖는 의미
인간이란 무엇인가? 주류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경제적 존재(호모에코노미쿠스)'로 정의하고 마르크스경제학은 물질적 존재로 환원시켜 바라보지만, 인간은 그리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집단을 형성해 사는 사회적 존재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각자의 이익을 방어하거나 자신의 세계관을 관철시키며 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과 시민적 덕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런 과정은 당연히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능력'에 힘입어 인간은 타협, 중재, 조정 등 다른 정치적 행위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런 능력에 주목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존재(호모폴리티쿠스)'로 보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아무튼 정치 없이 인간집단은 존재할 수 없으며, 정치를 통해 비로소 '좋은' 사회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존재로 하여금 정치적 행동을 '실행'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물질의 결핍을 첫째 원인으로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에게 있어 물질의 결핍은 정치적 행위에 대한 동기가 되지 못한다. 결핍을 채우자면 정치보다 경제활동에 열심히 전념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마르크스경제학자들에겐 다르다. 물질의 결핍은 개인의 나태함보다 자본가의 착취로부터 온다. 나아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나 서민의 열악한 물질적 상황이 세습, 정경유착, '나쁜' 사회적 자본은 물론 사기, 갈취, 내부정보의 공유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경제활동에 '올인'한다고 해서 물질의 결핍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적 착취와 같은 '경제적 요인'에 의하든 이런 '비경제적' 요인에 의하든 물질의 결핍문제는 정치권력으로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정치활동을 물질의 결핍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물질의 결핍 여부와 관계없이 종종 인간은 정치적 행동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또 다른 본능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변별력적 장치는 다양하다. 그중 인간의 '문화적 본능'은 특별하다. 진화심리학자들이 관찰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정신적 내용을 주입하기는 매우 쉽다. 동물의 경우 그것은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문화적 역량이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량에는 문화를 습득하고 전달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선호, 혐오, 습성, 유행, 도덕, 윤리 등 엄청나게 다양한 문화적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으며 그중 많은 것들을 이미 어릴 때부터 내부화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다. 인간의 문화적 역량에는 기존의 문화를 수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이 과정은 습득 및 전달과정에 비해 덜 자연스럽게 진행되겠지만 동물의 경우보다 훨씬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새로운 문화라 할지라도 그것마저 인간은 쉽게 창조하여 내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경제학자 앨런 그루치가 호모사피엔스를 '문화적 존재(호모쿨투랄리스)'로 정의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경제적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행동한다.

하지만 문화적 역량이 정치적 행위를 자동으로 유발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이러한 역량은 '교육'을 통해 비로소 실현되며, 행동으로 구현된다. 교육은 인간의 문화적 역량을 선택하여 실현할 뿐 아니라 그것의 내용과 방향을 지시함으로써 실제적 행동으로 구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정치적 행위로 이어진다. 이로써 단순한 호모에코노미쿠스는 호모쿨투랄리스의 본성을 되찾아 새로운 내용의 문화를 지향함으로써 호모폴리티쿠스의 본성으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제적인 정치적 행위는 교육을 통해 가능하며 다양한 교육 경로 가운데 제도권 학교 교육만큼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로는 아직 없다.

6․4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광역단체장 선거결과는 17개 자치단체 중 새누리당이 8명, 새정치민주연합 9명을 차지했으니 숫자상으로는 일단 야당의 신승처럼 보인다. 반면 기초단체장선거결과를 보면 새누리당 117명, 새정치민주연합 80명이니 새누리당이 이긴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보면 승리, 저렇게 보면 패배로 볼 수 있으니 현재로선 그 결과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정치영역에서 일시적 균형이 형성된 것이다. 힘의 균형이 유지되면, 진보도 퇴보도, 개선도 개악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를 결정하는 것은 문화적 역량이다. 그리고 문화적 역량은 교육에 의해 좌우된다. 그 내용도 교육에 의해 결정된다. 17개 선거구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탄생했다. 이건 압승이라 말해도 된다. 문화영역에서 승리했으니 앞으로 정치영역을 탈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질의 분배도 개선되며 시민적 덕성도 함양될 것이다. 좋은 사회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다.

6.4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너무 우울하거나 자학할 필요 없다. 좋은 사회를 이루어나갈 때 가장 필요한 영역을 확보하였으니, 오히려 승기를 잡은 셈이다. 새누리당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집중하느라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많이 진출한 것"을 그냥 아쉬워한 건 아니다.

블로그에 게시된 내 글에 대한 이웃의 댓글 하나를 소개한다. '서연아빠'라는 필명을 가진 평범한 시민이다.

"교육감 선거에서 압승을 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현실성 있고 철저한 준비로 진보교육의 뿌리를 굳건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그마한 허점과 혼란이 생기면 시민들은 금방 진보에 질려버릴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보지 않았습니까? 이번 선거에서 세월호 참사를 통해 시민들이 진보교육감을 선택했지만 다음 선거에서 진보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지금부터 우리의 몫입니다."

'좋은 사회'를 진실로 꿈꾸고 있는 이 평범한 시민들의 말을 진보 교육감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두 번 다시 실패는 없어야 한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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