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통적으로 강압(억지)과 관여라는 두 개의 큰 축을 기준으로 진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보수 우위 사회였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억지를 기본으로 하는 강압으로서의 대북 정책은 특히 안보-방위 패러다임과 결합하여 막강한 자원을 독점해왔다.
대북 정책의 뉴 패러다임?
반면 관여로서의 대북 정책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길게는 노태우 정부 시절의 소시기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정도를 그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듯하다. 그나마 노태우 정부 시기의 대북 관여 정책은 탈냉전 초기의 환경 변화에 조응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관여 정책은 김대중 정부 시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의 관여 정책은 국내 지지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데 더해, 소위 반테러전이라는 국제 환경의 변화 때문에 남북 관계의 연성화는 시작도 해 보지 못한 채 핵문제라는 의제에 결박당한 지 오래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물론 전통적인 강압과 억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무언가 새로운 시도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대북 강압과 확장 억지라는 전통적 레토릭에 근거해 한미일 동맹화를 겨냥한 정책 전환을 추구하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와 다른 무엇인가를 제기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즉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라는 지역주의와 평화번영이라는 평화 담론에 근거해 통일 문제에 머물고 있던 김대중 정부의 관여 정책을 타 넘고자 했었던 경험에 비추어, 보수 정부의 대북 정책도 나름대로 진화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 나왔을 때,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다음 수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그래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통일’ 이라는 것이 결국 역대 보수 정권들이 내건 흡수통일 외의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기대를 충족시키는 어떤 제스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세월호 문제에 밀린 탓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한 방’이라는 논리는 조금씩 물 건너간 게 아닌가 하는 평가들이 높아지고 있다.
드레스덴 구상의 좌절
올 초 1월 16일 북한은 느닷없이 국방위원회 성명을 발표해 소위 ‘중대 제안’을 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비방 중상 중지, 서해 5도 포함 육해공 상에서 상대방 자극 중지, 비핵화 등을 강조하는 ‘예측 가능한’ 내용이지만 특이하게 “이 제안의 실현을 위하여 우리는 실천적인 행동을 먼저 보여주게 될 것이다”라고 한 점이 눈에 띠었다. 곧이어 북한은 조건 없는 이산가족 상봉에 동의함으로써 성명을 실천에 옮기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 같은 북한의 유화적 조치에 뒤이어 나온 것이 소위 드레스덴 구상이었다. 마치 물밑에서 무슨 합의라고 있는 듯 양측은 주고받기식의 핑퐁 게임을 통해 관계 진전에 나서는 듯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도적 문제 해결(Agenda for Humanity)이다. 이산가족 상봉 및 산모/유아에게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는 ‘모자패키지(1000days) 사업이 주 내용이다. 둘째는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Agenda for Co-prosperity)사업이다. ‘복합농촌단지’를 조성하고 교통, 통신 등 가능한 부분의 인프라 건설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셋째는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Agenda for Integration) 사업으로, 역사 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스포츠 교류 등을 제안하였다.
첫째, 셋째 내용이 대체로 예상 가능한 내용이라면 둘째 항은 명백히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키게 하는 새로운 대북 제안이다. 그러나 참신한 만큼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각론이나 알맹이가 없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북한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국방위 대변인 담화를 통해 드레스덴 선언은 “민족 반역과 위선, 반통일 속내로 얼룩진 시대의 퇴적물”이라며 “북남관계의 현 상황에 대한 무지로부터 아무런 해결방도도 없이 위선과 기만으로 여론만 흐리게 한 반통일 넋두리”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독일을 ‘한반도 평화통일의 모델’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는 “도이췰란드(독일)는 흡수통일로 이루어진 나라”라며 “바로 그곳에서 박근혜가 자기가 구상하고 있다는 통일에 대해 입을 놀렸다는 것만으로도 불순한 속내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비판하였다. 뒤이어 4월 2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의미하는 통일이 흡수통일을 의도하는 것인가로 시작하는 10개 항의 공개 질문 항을 발표하였다.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였다. 그로부터 시작된 남북관계의 긴장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외교 구상의 세 가지 흠결(mismatch)
임기 초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외교 정책은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그리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틀을 갖추어 가는 듯했다. 이들이 남북관계에서 결실을 보는 과정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그 결과로 무엇이 나올 건가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드레스덴 구상은 신뢰 프로세스, 동평구 그리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모아내는 결정체라기보다는 여전히 파편화된 정책 집합 이상이 아니었다. 이 같은 부정적 평가는 드레스덴 선언을 북한이 거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통일대박론이나 통일준비위원회 등으로 군불을 지펴 온 정부가 스스로 기대치를 높여 놓은 만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보수 정부의 실력에 모종의 기대치를 갖고 새 정부가 주도하는 통일과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대를 건 국민에게서 차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 같은 실패의 이유를 한국의 보수 정권 담당자들이 국제 정세나 대북 관계에 대해 가진 인식의 흠결(mismatch)에서 찾고자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세 가지 불일치가 존재하고 있다.
첫째는 한중관계의 밀월을 바탕으로 중국을 통해 북한을 위임 관리할 수 있다는 전제다. 북한의 도발은 중국에 의해 저지될 것이고 시진핑의 중국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중관계가 과거에 비해 새로운 형태의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긴장은 중국이 한반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특수한 이익의 발로라는 점에서 ‘중국발’일 따름이다. 그것을 ‘한국발’ 즉 한국의 외교적 성과라고 보는 시각은 어불성설이다. 일부 미국의 전문가들은 ADIZ 논란을 계기로 한중관계의 허니문이 끝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 김정은을 초청하는 것이 한국 정부가 중국에 걸어온 기대가 실패하는 가늠자로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CSIS, 2014, “Decoding China’s Emerging ‘Great Power’ Strategy in Asia,“p.39)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중국에 대한 기대가 좌절될 수 있음을 대비하고 있는 징후는 없다.
둘째는 북한은 고립되어 있다는 전제다. 특히 북한 경제는 지속해서 난국으로 빠져들고 있고, 정치 제도는 위기관리 능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판단이다.
얼마 전 부르킹스 연구소의 초대 한국 석좌(Korean chair)에 임명된 캐서린 문 웰리슬리대 교수는 취임 연설에서 북한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자신의 방북 경험을 설명했다. (관련기사 바로 가기 ☞ : )
정부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설명이고 이런 입장 때문에 취임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녀는 한국 정부가 가진 북한관과는 사뭇 다른 해석을 던져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사실 한국 정부의 5.24 조치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고 제재가 시작된 이래 북한 경제가 +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흐름이 되었다. 북중 교역은 양국의 국경선을 따라 생태계 현상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제재를 통해 이를 막는 것은 중국에 자해를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제재뿐 아니라 중국의 대북 제재 한계는 이처럼 분명해지고 있고 북한의 생존 능력은 다양화해지고 있다.
셋째, 한미관계가 역대 최상이라는 전제다. 일본은 대미 외교에서 계속 무리수를 범하고 있어 한국 주도의 대일, 대북 압박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실상 미국은 박근혜 호에 대해서 한국의 밸런싱 외교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보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 특히 대중 외교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한국의 대일 역사 논쟁(memory war)이 중국 편에 서서 일본을 의도적으로 압박하려는 조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내비치기도 할 정도이다. 한중간의 밀월을 미국이 무작정 허용할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대외 정책이 여유가 있지는 않다는 방증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아젠다가 대부분 미국이 요구하는 안보분야에 국한된 것은 그래서이다. 미국은 한국이 군사 동맹으로 더욱더 미국과 밀착하기를 바라고, 이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반환 연기와 북핵 억지를 중심으로 한 대북 억지 논리가 주를 이룬 것은 미국 측에서 보면 중국을 겨냥한 큰 틀의 동아시아 재균형화(rebalancing) 전략의 일환에 불과했다. 한국 측 입장에서 보면 역대 최상의 한미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통일 대박론보다는 대북 억지론의 깃발을 다시 든 것이다. 북한의 반발은 당연했다.
보수 통일론의 새 프레임은 가능할까?
요컨대 북한의 중국 위임 관리론, 북한 급변사태론 그리고 한미군사동맹 강화론의 3각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한미동맹 강화론과 북한 문제의 중국 위임론이 충돌하기 쉬운 긴장 관계에 있을 뿐 더러, 북한 급변 사태라는 것이 그리 쉽게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대박론이 결국은 북한 붕괴론이라는 비판이 비등한 것도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이런 전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 진영이 자기 성찰을 통해 통일 담론을 독점하고자 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맞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민족 문제가 보수 민족주의의 아젠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국제 정치 틀의 변화를 주도면밀히 분석하지 않고 희망적 사고에 의해 정책을 재단할 경우 그 후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수 있다. 현재 상태가 지속할 경우 북한은 또 다른 형태의 공세로 정국을 주도하고자 할 수 있다. 북한의 핵 무장 이후 남북관계는 전략적 상호 억지가 이루어져 전면전의 가능성은 낮지만, 전면전의 위험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중소규모 충돌의 빈도는 더욱 높아진다는 안보-안보부재(security-insecurity)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고 봐야한다. 북한이 서해 5개 열도 긴장 운운하는 것은 빈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과 같은 사태를 누가 예측이나 했던가를 생각해보면 현실주의가 지배하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미래와 그것의 한반도판 버전을 가늠할 수 있다.
기왕에 통일 담론을 독점하겠다고 나섰다면 이 정부가 보다 면밀히 국제 정세를 타산한 데 기초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염원이 있다. 이제 임기 2년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한국 보수가 경직된 친미나 친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당한 정세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줄 충분한 기회를 얻고 있다. 이제 한국 보수의 준비된 통일 담론 그리고 지역/평화/통일 모두를 아우르고 이를 지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기대해본다. 이를 위해서 멀리는 공식-비공식의 이중 협상 체제를 동시에 운영한 노태우 보수 정부의 대북 협상론에서 한국 보수의 통일 모델을 찾아볼 수 있겠다.
나아가 미일동맹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북일협상에 독자적으로 나서 미국 정부의 당혹감과 배신감마저 다독여가는 보수 아베 정부의 대미외교 협상론에서라도 배울게 있다면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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