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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카톡 털린 여기자, "혹시 내 '썸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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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검찰에 카톡 털린 여기자, "혹시 내 '썸남'까지…" [기자의 눈] 검찰의 정진우 부대표 보석 취소 신청에 부쳐

어디까지 봤고 얼마큼 알고 있나. 지금도 보고 있나, 앞으로도 볼 것인가.

검찰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다. '막연한' 걱정이 실제였음을 확인하자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기자로서의 호기심과 탐구심만 발동한 게 아니다. 내가, 그리고 나의 취재가, 그리고 나의 지인과 나의 취재원들이 안전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정말로 궁금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래서 검찰에게 묻는다. 검찰은 16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보석을 취소해달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보석취소 청구 신속결청촉구 의견서'란 것을 냈다. 정 부대표의 주장과는 달리 그는 6월 10일 벌어진 청와대 만인대회 행사를 주도했으며, 그럼에도 "적법하고 정당한 경찰의 과학 수사에 대해 근거없이 비난해 큰 국가적 혼란이 야기됐단 것을 고려"해달란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울종로경찰서의 수사 보고(휴대폰 압수수색 집행 영장과 카카오톡 분석) 내용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취재를 위해 이 수사 보고 문서를 읽어 내려가다 '흠칫'했다. 행사 당일 나는 서울은커녕 경남 밀양에서 다른 일을 취재 중이었다. 그런데 검찰 서류에 느닷없이 내 휴대폰 번호 11자리가 적혀 있다. 대체 왜.


010-OOOO-OOOO : "10시 2분 장소를 브라질 대사관이 아니라 삼청동주민센터 남측 새마을금고(삼청본점)로 9시 20분에 공지 예정, 그 전에는 비공개이니 기자님만 별도로 이동해 주세요."

<프레시안>이 20일 입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 제3단독 강 모 검사가 작성한 이 의견서에는 이런 내용과 함께 또다른 6명의 휴대 전화 번호 또한 적혀 있다. 각 번호의 주인 등에게 정 부대표가 보낸 카톡 메시지들도 고스란히 적혀 있고, 정 부대표가 연행된 직후 궁금한 사항을 대신 문의하라며 남긴 두 인권·사회 운동 활동가의 실명도 등장한다.


▲ 검찰이 지난 16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보석을 취소해달라며 재판부에 제출한 '보석취소 청구 신속결청촉구 의견서' 일부.

▲ 마찬가지로 의견서 일부. 정 부대표가 연행된 후 궁금한 사항을 대신 문의하라며 두 활동가의 실명이 적혀 있다.


검찰, 내 '썸남' 누구인지 알고 있나

검찰이 나를 봤다. 자연히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 본 건가. 정 부대표와의 대화만 봤을까, 아니면 의견서에 실명이 적시된 두 활동가와의 카톡 대화도 봤을까. 수사 대상에 오른 이들이 과연 이 세 사람뿐일까. 수사 대상에 오른 더 많은 이들과 내가 나눈 대화도 전부 훑어 봤을까. 시간이 흘러 기억도 희미한데 나는 그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던 건가. 검찰이 작성한 의견서에는 6월 10일 오후 8시 54분부터 오후 11시 59분까지의 카톡 대화만 첨부되어 있다. 그러나 검찰이 이날 하루 3시간 5분 동안의 대화만 들여다 봤을 거라고도 쉽게 믿기 어렵다. 앞서 공권력이 대거 투입됐거나 관련 민·형사 소송이 줄줄이 진행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 유성 희망버스, 철도 민영화 파업 등에선 어땠을까. 이런 사건들도 여러 노동계 인사를 창구 삼아 두루 취재했는데, 또 다른 대화 기록이 검찰에 남아있는 건 아닌가. 검찰은 나의 사생활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는 건가. 몇 취재원들과 나눈 지극히 사적인 대화도 보았을까. 회사 선배와 말다툼 후 그에 대해 토로한 나의 카톡도 보았는가. 긴 시간 연애를 못하고 있는 나에게, 한 취재원이 소개해준 '썸남'과의 관계도 검찰은 알고 있는가. 친분이 있는 모 국회의원과의 카톡 대화도 보았는가. '내 카톡을 검찰이 봤대'라고 하니 한 지인으로부터는 '앞으로 최 기자랑은 얘기 못 하겠다. 무섭다'란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위법 행위도 한 일이 없는데, 어쩌다 나의 사생활은 검경의 수사 대상에 포함된 건가.


▲ 검경이 문제 삼은 6월 10일 청와대 만민공동회 행사의 한 모습. ⓒ프레시안(손문상)


'국가적 혼란' 야기한 건 정진우 부대표가 아니라 검경이다

검찰에게 묻고 싶다. 이런 우려가 비현실적이고 과도한지 말이다. 2009년 광우병 사태를 보도한 문화방송(MBC) <PD 수첩>의 막내 작가 이메일은 7년치가 압수수색됐다고 한다. 정보·수사 기관의 정보 수집 욕구를 '필요한 부분만 수색한다'는 선언만 믿고 얕잡아 보기란 어렵다.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당장 <프레시안>이 인터뷰 한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는 물론, 수많은 전문가들이 실시간 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 관련 기사 : "카톡 실시간 검열 불가능? 거짓말이다!")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걸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검찰의 무분별한 통신 기록 수사는, 검찰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당한 취재 활동 위축이란 결과를 낳는다. 앞으로 정부와 마찰을 빚는 이들을 취재하고자 할 때엔 검찰이 또다시 카톡 대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단 우려 속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칫하면 이번처럼, 그 대화 기록이 취재원을 상대로 한 제2, 제3의 재판에 증거물로 활용된다. 정당한 취재 활동마저 위축시키는, 그래서 사실상의 보도 통제 효과마저 만드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방식에 심대한 우려를 표한다. 물론 검찰은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로써 나는 이 '혼란' 속에 계속 남아있게 될 테고 말이다. 검찰이 '수집하지 않았다'고 공언하더라도 영 믿을 수 없어 여전히 이 혼란 속에 남을 것이다. 검찰이 '위법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한다면, 앞으로도 '나의 카카오톡을 보겠구나'란 생각이 들어 더욱 혼란스러워질 테다. 어쨌거나 혼란이다. 이것이 검찰이 이야기한 정 부대표가 야기한 '국가적 혼란'이라면 검찰은 생각을 다시 하시라. 정작 무분별한 카카오톡 압수수색 대상의 한 조각이 된 나는, 이 혼란을 야기한 쪽은 정 부대표가 아니라 검찰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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