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선수들이 실수를 해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야구가 얼마나 어려운 스포츠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아서다. 겉으로 보이는 상황과 실제 속사정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을 관리하는 감독도 마찬가지다. 좋은 감독은 선수들이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열심히 해도 아웃되거나 홈런을 맞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실수한 선수가 다음 타석에서, 다음 등판에서 실수를 멋지게 만회하고 팀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오늘 어이없는 실수로 패했어도, 내일은 내일의 경기가 있고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걸 안다.
좋은 감독은 선수의 실수를 갖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플레이, 1루로 전력질주하지 않는 자세,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 이기적인 플레이를 했을 때 질책한다. 질책을 하더라도 절대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지 않는다. 선수를 따로 은밀한 곳에 불러서 개인적으로 이야기한다. 언론에 대고 선수를 비난하거나 선수 때문에 졌다고 탓하지도 않는다. 그 선수를 기용해서 그 자리에 배치한 것도 감독 본인이기 때문이다.
책임지는 감독, 선수를 보호하는 감독은 선수들의 신망을 얻는다. 신뢰받는 감독은 권위가 생긴다. 감독이 어떤 결정을 했을 때 의심이나 오해를 사지 않는다. 감독의 교체에 개인 감정이 깔려있지 않다는 걸 알기에, 실력대로 기용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수들이 다른 생각을 갖지 않는다. 이런 감독 아래서 선수들은 팀 내 정치에 신경을 끄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실수를 해도 비난 받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과감하게 플레이 할 수 있다. 안전한 선택만 하다 경기를 망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야구는 선수가 하지만, 좋은 감독은 그 선수들이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나쁜 감독은 선수들이 위축되고, 불만을 품고, 감독이 하는 결정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텍사스 레인저스 배니스터 감독은 어느 쪽일까. 11일(한국시각) 열린 텍사스와 오클랜드 에이스의 경기에서는 메이저리그 더그아웃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나왔다. 발단은 8회말 오클랜드 공격. 텍사스가 4-2로 앞선 가운데 주자 1루에서 타석에 나온 벤 조브리스트가 우익수 앞으로 굴러가는 안타를 때려냈다. 타구를 잡은 추신수는 1루 주자를 잡을 생각으로 3루로 송구했지만 한발 늦었고, 그 사이 타자주자 조브리스트도 2루를 향해 질주했다. 이를 잡기 위해 3루수 조이 갤로가 2루로 재빨리 송구했지만 악송구가 되면서 공은 외야로 굴러갔다. 3루에 있던 레딕이 홈을 밟았고, 이어 버틀러의 안타로 2루 주자 조브리스트로 홈에 들어와 4-4 동점이 됐다. 결국 텍사스는 9회말 결승점을 허용해 4-5로 역전패했다.
문제는 경기가 끝난 직후 터졌다. 배니스터는 더그아웃에 들어온 추신수를 한참 동안 노려보며 ‘레이저’를 발사했다. 이어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는 추신수를 불러 세워놓고 8회의 3루 송구에 대해 질책했다. 또 경기 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잔뜩 화난 얼굴로 선수들의 실책을 비판했다. 특히 8회 추신수의 송구에 대해서는 “컷오프맨에게 송구했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이 선수를, 그것도 베테랑 선수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질책하는 장면은 거의 보기 힘들다. 대부분 메이저리그 감독은 설령 특정 선수 때문에 졌다 해도 남들이 다 보는 데서 질책하지 않는다. 질책하더라도 감독실로 불러서 잘 타이르거나 외부의 시선이 없는 장소에서 이야기한다. 추신수 본인도 해당 상황에 대해 “더그아웃 앞에서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감독의 의무는 선수를 보호하는 것이다. 공개적인 질책은 선수에게는 망신이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어 다치게 한다. 질책을 당한 선수는 물론이고 동료 선수들조차 불만을 갖게 된다.
공개적인 비난은 의도와 관계없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면 곧장 자기가 실수했다는 걸 안다. 굳이 감독이 지적하지 않아도 문제라는 걸 알고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게 마련이다. 이런 선수에게 대놓고 비난하는 건 감정을 상하게 하고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선수들은 경기 중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감정적으로 매우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지적을 하고 야단을 쳐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이건 고교야구 감독들도 아는 상식이다. 고교 감독을 지낸 한 야구인은 “선수가 실수해도 한번도 경기 중이나 경기 직후에 지적한 일이 없다”고 했다. “선수 본인도 얼마나 안타깝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겠나. 거기에 대고 뭐라 하면 선수에겐 서운한 마음만 들 뿐이다. 정말 조언이 필요할 때는 다음날 훈련할 때 듣기 좋은 말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야 반발이 없다.”
고교 감독도 아는 사실을, 메이저리그 감독이 몰랐다. 배니스터 감독은 이전에도 선수가 실수를 하면 한참 동안 노려보며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구원에 실패한 투수의 공을 글러브에서 뺏는 감정적인 장면도 연출했다. 아무리 초보 감독이라지만, 메이저리그 감독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주고 있다.
추신수가 감독에게 공개 망신을 당할 만큼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8회 3루 송구 자체는 현명하지 못한 플레이였지만, 그 외에는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 같은 이닝에 추신수는 우익수쪽 장타성 타구를 최선을 다해 아웃으로 잡아냈다. 잡지 못했다면 결승타가 될 수도 있는 타구였다. 타석에서도 안타와 득점을 기록하며 자기 몫을 다했다.
좋은 감독은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는 실수를 했어도 비난하지 않는다. 감독의 질책은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야구를 모욕하는 행동을 했을 때, 팀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를 할 때만 주어져야 한다. 게다가 텍사스가 꼴찌에서 벗어나 5월 대질주로 지구 2위까지 올라온 데는, 슬럼프에서 벗어나 맹타를 휘두른 추신수의 공이 결정적이었다.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감독이 실수 하나를 가지고 비난하는 건 선수단의 사기를 꺾는 일이다.
배니스터 감독이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대놓고 선수들을 비난한 것도 이례적인 행동이다. 배니스터 감독은 선수들의 잇단 실책 때문에 패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감독 자신의 작전 실패로 인한 득점 찬스 무산, 평소와는 다른 불펜 운용의 실패에 대해서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선수들은 감독이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길 바란다. 감독이 선수를 비난하면, 선수들도 때가 되면 주저 없이 감독을 비난한다. 이날 배니스터 감독의 비판에 추신수는 감독 면전에서 "글러브 줄 테니까 감독이 한번 뛰어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현지에서는 추신수의 이런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감독과 선수가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 팀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다음날인 12일 경기에서 텍사스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7-0으로 패했다. 텍사스 타선은 오클랜드 선발 캐즈미어에 1안타 무득점으로 꽁꽁 묶였다. 후폭풍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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