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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병원' 비공개, 박근혜 결정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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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메르스 병원' 비공개, 박근혜 결정이 아니라면…

[추적] 3일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병원 실명 비공개는 누구의 작품이었을까?

재난 컨트롤 타워의 부재, 먹통이 된 국가 시스템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메르스 참사'로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 실패를 두고 전문가 그룹의 판단을 정부가 수용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칫 청와대와 대통령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시스템의 문제를 '무지'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쉽다. 전문가가 아닌 행정 관료들이 제한된 지식을 갖고 매뉴얼 이상의 행정 조치를 취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두말 하지 않아도 된다.

한 보건의료 전문가는 "감염병은 전문가가 막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막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 상황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낸 말이다. 즉, 관료의 실패와 전문가의 실패 위엔, 보다 근본적으로 권력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감염병 차단 조치는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행정부 수장이 할 일이다. 전문가는 길을 제시해줄 뿐이다. 그런데 삼성은 최고 권력자이자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정부는 대통령이 "할 일을 다 했다"고 비호하며 사태의 원인을 병원 탓으로 돌린다.

병원명 비공개 결정은 과연 누가 내렸나?

박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정부와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 부재 상황, 그리고 메르스 대응 실패는 수차례 지적된 것들이다. 상황을 조금 좁혀보자. 초동 대응 실패 후 가장 큰 잘못은 병원명 비공개 방침이었다. 병원명 비공개 방침을 결정한 책임자를 두고 국회에서는 설왕설래하고 있다.

관련해 청와대와 정부 안에서는 몇 가지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상황을 복기해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고 질타했다. 지난 5월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13일 만이다. 이때까지 1차 대응 시기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평가가 나왔고, 대통령이 비로소 메르스와 관련된 현안을 직접 챙기기 시작한 시점이다.

1차 대응은 실패했다. 대통령도 인정했다. 그리고 2차 대응의 책임은 온전히 대통령의 것이 됐다. 지난 1일부터 병원명 전면 공개가 이뤄진 7일까지 2차 대응 시기로 볼 수 있다. 초동 대응의 실패를 보건복지부로 돌린 박 대통령은 2차 대응 시기에서 실패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또 실패했다.

당시 핵심은 병원명 공개를 포함한 정보 공유였다. 초동 대응을 놓쳤다면 2차 대응 전략은 보다 면밀하고 과감하게 짜야 했다. 수석비서관 회의 직후 병원명을 공개, 메르스 접촉자의 자진 신고를 유도해 신속한 격리를 통한 상황 관리가 있어야 했다. 그런 권한은 당연히 국민이 권력을 부여해 준 선출직 최고 지도자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책임 소재와 관련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3일 대정부 질문에서 문 장관은 "병원명 비공개는 누가 결정했느냐"는 질문에 "제가 (결정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24일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한 문 장관은 같은 질문에 결정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당시 의료계 전문가 자문과 내부 검토를 통해 결정했다"고 답했다.

문 장관은 "메르스 전파력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병원 비공개 방침을 정했다"고 밝힌 후 "(그러나 예상과 달리) 메르스 전파력이 상당히 강하고,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서 폭발적으로 환자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당초 (정부)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해 방침을 바꿨다"고 했다. 정부의 상황 판단 실패는 인정하나, 누구의 실패인지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문 장관이 단서를 제공했다. "6월 3일 정보를 공개하라는 대통령 지시도 있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병원명 전면 공개 시점은 6월 7일이다. 청와대에서 병원 비공개 방침이 언론에 브리핑된 것은 6월 3일, "대통령의 공개 지시"가 있었다는 바로 그 날이었다. 정보 공개를 지시한 회의에서 병원명 비공개 결정이 내려졌다는 말이 된다. 즉, 문 장관의 발언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3일 '메르스 대응 긴급 점검 회의'에서 "가능한 공개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모두 즉시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의가 끝난 후 '선임 수석'격인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현재 환자들을 격리 수용한 병원들을 전부 공개하면 앞으로 치료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회의 참석자인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은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고 했다.

6월 3일 나왔던 대통령의 원론적인 "정보 공개 지시" 발언을 추후 해석해, "대통령 지시에 따른 병원명 공개였다"고 끼워맞추기를 했다는 설명이 훨씬 논리적이다. 대통령의 '오판'을 감추기 위해 정부가 억지 설명을 내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병원명 비공개 결정, 박근혜 대통령이 내린 게 아니라면?

주목할 만한 부분은 더 있다.

2차 대응 시기 중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흥미로운 말을 했다. 청와대 홍보 라인이 병원명 공개 등을 비롯해 "메르스 사태 대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관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병원명을 공개하면 의료 산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의료 산업 혼란, 즉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병원명 공개를 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결국 병원명 비공개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 안에 홍보 라인과 경제(의료 전문가 포함) 라인이 갈등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즉, 대통령이 주재한 3일 '메르스 대응 긴급 점검 회의'에서 '비홍보 라인'이 병원명 비공개 결정을 유도했고, 박 대통령이 최종 판단을 했다는 설명이 자연스럽다. 반면 대통령 주재 회의 직후 "병원명 공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브리핑을 내놓았는데 이를 대통령의 판단과 무관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당시 청와대의 상황 인식도 안이했다. 현정택 수석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현재 환자들을 격리 수용한 병원들을 전부 공개하면 앞으로 치료를 할 수가 없다"라고 했다. 메르스 확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치료'를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치명적인 오판이다.

김우주 이사장이 7일, 정부가 뒤늦게 병원명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내놓은 해명은, 병원명 비공개 결정 과정과 관련된 앞선 심증을 더욱 공고히 한다.

질문 : 초기엔 병원명 공개에 대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하지 않았나.

김우주 : 제가 아마 그때 병원명 공개를 설명할 때 득실을 얘기해서 그게 아마 (기자분들) 뇌리에 박힌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어떤 결정이 사실, 흑백이라든지, 두부모 자르듯이 결정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런 결정은 이해득실을 따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드린 거고, 아마 평택성모병원 건은 그때 당시에는 사실은 공개하자는 측면도 있었고, 아직은 좀 그렇다라는 측면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이번주에 얼마나 확고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방역 조치를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지금 이미 뭐 관광객도 감소하고 여러가지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이건 '사이언스'고 의학이고 과학인데 그 외적인 논란이 커져 실제보다 많이 불안해진 겁니다. 사실 이것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방역을 해야 하는데 현장에 있다 보니…. 민간인으로 오랬동안 자문을 해서 제 이론적 백그라운드가 사실 현장에서 틀릴수도 있고, 뭐 그럴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공조직을 통해 구현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 이사장은 병원명 비공개와 관련해 청와대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음을 토로했다. "공개하자는 측면도 있었고, 아직은 좀 그렇다라는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논란이 있을 경우, 결정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게다가 '이해득실'을 따진다는 차원에서 결정이 났다고 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발언이다. 상황에 따라 의료 시장의 위축을 걱정, 병원명 비공개를 결정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이론적 백그라운드가 현장에서 틀릴 수도 있다"며 2차 대응 미흡에 대한 것도 일부 인정했다.

병원명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맞다. 아니라면, 이 나라는 제3의 '실세'가 통치하는 나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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