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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국' 아베 vs. '전쟁 반대' 일본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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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군사대국' 아베 vs. '전쟁 반대' 일본 국민 [주간 프레시안 뷰] '이중의 콤플렉스' 벗어나려는 몸부림

아베 정부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통적 반대세력이었던 지식인, 예술가들에 더해 20~30대의 젊은 엄마들과 10~20대 청소년들도 속속 반전평화운동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양상입니다. 침략과 전쟁의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군사대국화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아베 정부와 '전쟁 반대'를 외치며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는 일본 국민들이 한판 대결을 펼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일본 국민들의 반전평화운동은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평화의 앞날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 엄마와 청소년들, 반전평화운동에 뛰어들다

일본 국민들의 반전평화운동에 불을 지핀 것은 아베 정부의 집단자위권 행사 관련 입법입니다. 집권 자민당은 지난 16일 일본의 하원 격인 중의원에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11개 안보 관련 법안을 민주당, 공산당 등 야당의 불참 속에 강행 처리했습니다. 지난해 7월 1일 각의 결정에 의해 현행 헌법으로도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이른바 '해석 개헌' 꼼수를 완결하기 위한 후속 조치였습니다. 이 법안들은 27일부터 참의원 심의에 들어갔으며 향후 60일 이내에 처리될 전망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을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는 셈입니다.

이에 대해 이달 초순 약 2만 명이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일본 국민의 반대운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1개 안보 법안의 중의원 처리(16일)와 참의원 심의 시작(27일)을 전후한 15~17일과 26~28일을 각각 '국회 앞 긴급 항의 행동'의 날로 정하고 반대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전평화운동은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됐습니다. 이제까지 정치적 사안에 무관심했던 젊은 엄마들과 청소년들이 운동에 가세한 것입니다.

우선 지난 17일 저녁 '국회 앞 긴급 항의 행동'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시위대의 주류를 이루면서 "국민을 무시하지 말라" "전쟁 아닌 평화를" "정말로 멈추게 하겠다"를 외쳤습니다. 이들은 또 "자민당, 재수 없어요(간지 와루이요네)" 등 톡톡 튀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의 동참을 요청했습니다. 아베 정부가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만 명은 모여야 하므로, 이달 초순 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각자 5명을 더 동참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의 한 정치평론가는 "197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이 쇠퇴한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생활정치에 눈을 뜬 30~40대에 이어 10~20대의 젊은이들도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죠. 특히 젊은이들은 무력감에 빠진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일본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 12월 군사대국화를 위한 아베 정부의 첫 조치인 '특정비밀보호법'과 '국가안보회의 설치법'이 강행 처리된 데 대해 기성세대들이 "일본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개탄한 데 대해 젊은이들은 "민주주의가 죽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며 활동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난 5월 3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SEALDs:실즈)'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반전평화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한편 일요일인 26일, 도쿄 도심 시부야의 한 공원에서는 젊은 엄마 2천여명의 반대시위가 있었습니다. 유모차와 함께 분홍 풍선을 든 엄마들은 "누구의 아이도 죽이지 않겠다" "전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를 외쳤습니다. 이 반대시위는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엄마의 모임'이라는 단체가 주도한 것으로 교토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 사이고 미나코 씨(27)가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날 엄마들의 반대시위는 도쿄뿐 아니라 교토, 후쿠오카 등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엄마의 모임'에는 26일 현재 2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1만7천여명의 엄마들이 가입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년, 젊은 엄마들뿐만 아닙니다. 아이돌그룹도 반전평화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제복향상위원회'라는 이름의 아이돌그룹은 지난 28일 도쿄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1만5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공연에서 반전 태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 그룹의 사이토 유리아(18) 양은 이날 "남의 싸움에 관여하는 것을 아름다운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며 아베 총리를 비판했습니다. 그녀는 또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데는 어른이든 아이든 이이들이든 관계없다"고 당차게 말했습니다. 공연 중간, 평론가 사타카 마코토는 "아베 총리는 중국이 위협이라고 말하지만, (군대가 아닌) 외교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의료인들도 참가했습니다.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의료.간호.복지관계자 모임'이라는 단체는 지난 10일 안보법안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현재까지 4천여명이 동참했습니다. 이 단체의 한 관계자는 "인명의 중요성을 의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의사야말로 평화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학자의 모임'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 도쿄대 명예교수 등 1만2천여명의 지식인들이 참여했습니다(27일 현재). 일본변호사협회,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영화인 (평화헌법) 9조의 모임' 등은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항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전사회적인 반전평화운동의 결과는 아베 총리의 지지도 폭락으로 나타났습니다.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 여론조사(18~19일) 결과 아베 지지는 39.3%로 전달 대비 6.8%P나 떨어졌습니다. 반대는 52.6%였습니다. 한편 <닛케이> 여론조사(24~25일)에 따르면 안보법안에 대한 반대는 57%로 찬성 의견(26%)의 2배를 넘었습니다. 특히 응답자의 81%는 안보 법안 추진에 대한 아베 정부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찬성하는 국민의 69%도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답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주 방송에 1시간 반 동안이나 출연해 집단자위권 행사의 목적을 설명했으나 반대 여론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 15일 일본 중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법안 표결에 반대하는 의사를 담은 종이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집권당인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AP=연합뉴스

아베의 군사대국화는 일본에 도움이 될까

국민의 8할 이상이 그 이유를 모르고, 반대가 찬성의 2배가 넘을 정도로 국민들이 원치 않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아베가 그토록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아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는 아베의 주장처럼 일본의 안보, 나아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베는 그렇다고 강변하는 반면, 한국과 중국은 너무도 당연히 '노(No)'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맞물려 중국 대 미일 간의 군사 갈등을 격화사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내 반대세력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일본의 최고 안보전문가 중 한 사람인 야나기사와 교지(柳澤協二)의 견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야나기사와는 1970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방위청에 들어간 이후 2009년 아소 총리의 내각관방 부장관보로 공직을 마칠 때까지 40년 가까이 안보 문제에만 매달려온 분입니다. 내각관방은 우리로 치면 국무총리실에 해당되는 조직으로 그는 2004년부터 5년간 안보.위기 관리 담당 부장관보(차관급)로 일했습니다. 그전에는 방위청 방위정보본부장, 방위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재야가 아닌 제도권 내의 안보전문가인 것입니다. 그런 그는 지난해 펴낸 <망국의 안보정책>이란 책을 통해 아베의 안보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한국에서는 지난 5월 <망국의 일본 안보정책>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음). 군사대국화는 일본의 안보에 해가 될 뿐인 망국적 정책이란 것입니다. 나아가 미국도 일본의 '독자적' 군사대국화를 결코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우선 그는 아베의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이 '평화헌법과 미일동맹의 조화'를 추구해온 역대 자민당 정권의 안보정책 노선에서 이탈한 돌연변이라고 말합니다. 일본 방위를 위해서만 무력을 행사한다는 지난 70년간 유지돼온 평화헌법의 틀을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방해가 되는 것이죠. 그는 특히 미국은 일본의 군사 능력 강화에 대해 "본능적으로 '환영과 경계'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최대 국익인 자유로운 경제 질서 유지를 위해 일본이 군사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미국으로부터의 자립이라는 계기를 갖는 한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일본이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동아시아 안보 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미국의 통제를 벗어난 군사대국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러시아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의 통제를 벗어난) 강대한 패권국이 출현하는 것, 나아가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어 이것에 휘말리는 형태로 개입하게 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베의 집단자위권 추진은 이중의 콤플렉스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하나는 2차 대전 패전 및 이후의 대미 종속이라는 '대미 콤플렉스',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침몰에 이은 2010년 중국의 일본 경제 추월과 이제는 일본을 모델로 삼지 않는 한국에 의해 일본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합쳐진 '대중 및 대한 콤플렉스'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전함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추진되는 집단자위권은 한편으론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등해지기 위한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국의 군사행동에 (하위파트너로서) 협력한다는 근본적 모순이 있으며 결코 '대미 종속'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나아가 패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국 또는 국제테러조직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새로운 전쟁은 어떤 식으로든 일본에 상처와 함께 새로운 트라우마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일본이 패전의 트라우마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예의 주시하면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을 탐색하는 것이 아닐까? 그 핵심어(keyword)는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정신적 자립'을 달성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종속을 초래한 '패전으로부터의 자립', 그리고 역사를 객관시(客觀視)하는 것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과거로부터의 자립'이다."

역사를 객관시 한다는 것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한국, 중국 등에 대한 침략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 국가들과 진정한 화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거로부터의 자립'에서 '패전으로부터의 자립' 미국으로부터의 '정신적 자립'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야나기사와는 한 중국전문가와의 대담에서 일본의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국과 군사, 경제적으로 대등해지려는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기보다는 민주주의, 높은 삶의 질 등 일본의 강점을 살려 매력 있는 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1960년, 불평등했던 미일 안보조약(1952년 체결)을 보다 평등한 방향으로 조약 개정을 단행했으나 학생, 시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사임해야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과 이에 맞선 일본 시민들의 반전평화운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나기사와의 지적대로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인정하며, 이웃 국가들과의 화해를 통해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기여하는 반전의 계기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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