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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수업일수 안 줄이면 헛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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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성교육? 수업일수 안 줄이면 헛일!" [인성교육진흥법, 무엇이 문제인가 ②] 현장 교사가 말하는 진짜 인성 교육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 서울 한울중학교에 재직 중인 이명남 교사에 대한 주변의 평가다. 20년을 훌쩍 넘는 긴 세월 동안,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이 교사 또한 자평한다. 베테랑 현장 교사이기도 한 그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인성교육진흥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교사는 '인성 교육이 따로 있느냐'고 되물었다. 가장 가까이서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인성 교육 그 자체란 얘기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아이들 스스로 따라 배우게끔 하는 '모델링(modeling)'. 지난 20년간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갈고 닦아 온 그의 훈육 방식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정부가 인성 교육을 외부 단체나 프로그램에 의존하도록 한 것은 원칙 면으로나 효용 면에서나 '판단 착오'라는 주장이다. (☞관련기사 : "인성 교육하면 제2의 이준석이 안 나올까요?")

과연 인성 교육이란 무엇일까. 인성교육진흥법 시행 사흘 뒤인 지난달 24일, 서울 구로구 일대에서 이 교사를 만나 교직 생활 20년 내공에 빛나는 그의 인성 교육 비법을 들었다.

▲이명남 교사. ⓒ프레시안(서어리)

이 교사의 가슴팍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의미다.

"세월호 집회가 열릴 때마다 가고, 국토 순례도 갔어요. 저도 교사로서 세월호 사고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른들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에요. 아이들도 다 알아요. 그런데 인성교육진흥법 취지 중에 세월호 참사 얘기도 있더라고요. 사회에 물질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해서 일어난 사건, 맞죠. 그렇게 진단을 했으면, 그럼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쳐야죠.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아이들 인성 교육부터 하자는 결론이 나오는 건가요?"

"수업일수 안 줄이면 인성 교육, 일회성 이벤트 될 것"

비슷한 지적들이 이미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그에 아랑곳없이 정부는 지난 달 14일 국무회의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인성 교육 전문 인력을 양성 업체를 지정하고, 공모전 등을 통해 뽑힌 교육 프로그램 및 교육 과정에 인증서를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인성 교육을 학교 바깥에 위탁하는 셈이다.

▲지난 달 21일 인성교육진흥법 시행 규탄 기자회견을 연 교육운동연대와 교육혁명공동행동 등 교육 단체들. ⓒ프레시안(서어리

현재 각 학교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시행하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진로 교육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교사는 이런 프로그램들에 대해 '장삿속에 지나지 않는 일회성 이벤트였다'고 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대구 학교 폭력 사건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사건 이후로 이미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어요.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달라지지 않아요.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한다면 또 모를까, 일회성 이벤트가 되기 쉽거든요. 제 생각엔, 인성교육 프로그램이란 것도 내용적으로는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교육 프로그램 만드는 업체들만 좋은 일이 되는 거겠죠."

결국 문제는 시간이다. 교사나, 아이나 인성 교육에 집중하기엔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모둠을 짜서 어떤 문제 상황을 놓고 해결하고 협상하는 방법을 배워요. 이게 가능하려면 아이들 수가 적어야 해요. 지금처럼 한 반에 30~40명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이런 활동은 방과 후 특강이나 '창체(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을 활용할 테니,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시간도 충분하지 않으면 어른들도 터득하기 어렵습니다. '비폭력 대화'도 아주 여러 번 연습을 거쳐야 하거든요."

그는 교과 과정도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습 진도를 나가는 대신 집중력, 자기 조절 능력을 기르는 걸 터득해요. 이런 걸 몸으로 익힌 다음 교과 공부를 하게 되면 저절로 공부가 잘 되겠죠. 나중에 따로 인성 교육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교과 과정, 학교 구조 전체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프로그램 중심의 인성 교육이란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프레시안(서어리)

"선생님이 미안해. 선생님에게도 배울 기회를 줘서 고마워"

시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위탁' 그 자체다.

"인성 교육이란 걸 외부에 맡기고, 교사도 외부 강사한테 연수를 받으라고 하다니…. 마치 교사들은 아이들 인성 지도를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간주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는 방학 등 일정 탓에 인성교육진흥법이 현재 교육 현장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교육부나 각 시도 교육감이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면 현장에서 많은 반발이 따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교사는 인성 교육을 외부 단체에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아이들 인성에 가장 영향을 주는 건 '관계'라고 했다. 아이들의 인성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 다음으로 많이 접하는 어른이 교사인 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성 교육이랄 게 따로 없어요. 아이들한테 양보해라, 정직하게 살아라, 말로 해봐야 소용없어요. 직접 보여줘야 해요. 선생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아이들한테는 인성 교육이에요. 선생님이 같은 반 친구들을 어떤 눈초리로 보는지요. 만약 어떤 학생을 막 대하거나 소외시키면 그대로 따라 해요. '아, 쟤는 왕따 당해도 되는 아이구나' 하고요. 선생님이 말로는 '남을 존중하라'고 하는데 행동이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안 믿겠죠."

그는 자신은 아이들한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학습 방법 중에 모델링(modeling)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어떤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기 위해서 교사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고 학생들이 스스로 따라 하고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다.

"전반적으로 학교 내 체벌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벌은 세우잖아요. 저는 그것 또한 권력자들의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벌을 받을 땐 선생님이 무서워서 고개를 숙이지만, 결국 그 방법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 사용할 수 있거든요. 그런 고리를 끊는 걸 제가 보여주는 거죠. 아이가 누군가를 때리면, "네가 화가 났구나. 그런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고 물어봐서 다른 방법으로 풀 생각할 기회를 줘요. 저는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버튼을 만들어서 옷에 하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리고 저도 부족한 사람이니, 미처 생각지 못한 실수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바로 아이들에게 사과해요. '미안해. 다음부턴 절대 안 할게. 선생님한테 배울 기회를 줘서 고맙다'라고요. 권력 있는 사람도 사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연합뉴스

"교사와의 관계가 아이들 인성을 좌우한다"

이 교사가 하는 교육은 시간이 많이 투여되는 방식이다. 이것저것 챙길 게 많은 교사로선 사실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 반에 아이들이 30명 넘는데, 당장 말 안 듣는 아이를 어떻게든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그치고 나무라기 쉽죠. 그런데 학기 초반에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관계를 잘 형성하면, 나중에는 주워 먹기 하는 셈이더라고요. 우리 반에 일탈 행동하는 애들이 몇 명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바뀌는 게 조금씩 눈에 들어와요.

한 아이가 쉬는 시간부터 다른 친구랑 말다툼하다가 결론이 안 난 상태에서 수업 종이 울렸어요. 그런데 그 애가 수업 중간에 갑자기 가방 싸서 집에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한테 '네가 화가 날 수도 있어. 그런데 다음부턴 교무실에서 조금 쉬었다가 수업에 들어가거나 그런 식으로 노력해보자'라고 말하고 부모님께 전화해서 집에 보냈죠. 다음부턴 기특하게도 정말로 집에 가고 싶은 걸 꾹꾹 참더라고요."

그는 이러한 일들 또한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저랑 그 아이가 관계가 나빴다면 아이한테 그런 얘기는 잔소리에 불과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는 선생님이 자기 기분을 어느 정도 이해해준다는 걸 믿고 있기 때문에 노력을 하는 거예요."

그는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가끔 양보를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하나를 요구하는 대신, 아이의 요구 또한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반에 담배 피우는 아이가 있는데,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쳤더라고요. 가족들이 자퇴를 시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얘길 들어보니,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아이에게 용돈 안 준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죠. 담배를 피우는 게 건강엔 해롭지만, 도둑질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느냐'고요."

"문제아 덕분에 학교가 발전한다"

ⓒ프레시안(서어리)
이 교사는 아이들과는 관계가 무척 좋은 반면, 선배 교사들과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젊었을 땐 무척 반항기 넘치는 교사였다고 회고했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다 교장실에 가끔 불려갔거든요. 교장 선생님이 그러는 거예요. '딸 같아서 얘긴데'. 그럼 저는 '저는 교장 선생님 딸 아닌데요'라고 맞받아쳤던 게 기억이 나요."

그는 학교 현장에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학교장이 결정하면 교사들과 학생들은 자연히 복종하는 구조다. 그는 학교장의 결정에 반발해 갈등을 겪곤 했다고 했다.

"예전에 학기 말에 시간이 남으면, 어떤 교장 선생님은 보수 단체 사람들을 불러다가 평화 통일 교육이란 걸 했어요. 북한 인권 얘기한다면서 자극적인 장면들만 몽땅 보여줘서 북한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하게 하고, 통일 외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교장실 가서 문제 있다고 따지는데,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이처럼, 인성 교육이란 미명 하에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권력자들은 순종을 원하는 것 같아요. 인성 교육이라는 것도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만드는 교육이란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만들기. 말 안 들으면 찍히죠. 어려서는 교사한테 찍히고, 커서 정부를 거스르면 또 찍히죠. 그런데 사회는 그렇게 찍힌, 흔히 말하는 '문제아'들 덕분에 바뀌었거든요. '귀 밑 3센티미터'에 반발해서 학교와 싸우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두발 자유화가 된 것처럼요.

정부가 강조한다는 '예'란 무엇인가요. 윗사람 말을 무작정 따르는 게 진짜 예일까요? 그렇다면 '배려'는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에서 배려가 '시혜'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사회적으로도 합의되지 않은 가치들이 누군가의 입맛대로 변질되어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아이들에게 전파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인성 교육이 되겠죠. 어떤 가치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단, 학생들 스스로 자유 의지를 갖고 여러 체험을 통해 자기의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 그게 진짜 인성 교육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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