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충고가 있다. 친한 사람일수록 종교와 정치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다. 괜히 종교 얘기나 정치 얘기를 꺼내면 결국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종교는 절대자 또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다보니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자칫 부딪칠 수 있다. 그래도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타종교 신도와 부딪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고 믿기 때문에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부딪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니까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오히려 정치이야기는 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현실은 이 충고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가 많다. 갈수록 이런 현상이 심회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종교의 정치화, 정치의 종교화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종교의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사례가 급속히 많아지고 있고, 정치인을 둘러싼 지지자들간의 갈등과 반목도 갈수록 광신도 집단을 닮아가고 있다. 종교와 정치는 현상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본질적으로 통하는 것일까? 종교가 죽음 이후 내세에서의 구원을 추구한다면, 정치는 현세의 삶을 구원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양자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이성적인 믿음이나 정치적 지지보다 거의 사생결단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점 또한 갈수록 수렴하고 있다.
박정희교(敎)와 노무현교(敎)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잘 못해도 30% 가량 고정된 지지율을 보인다는 점에 많은 유권자들이 아연실색한다. 심지어 거의 종교 집단과 흡사하다고 한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종교적 수준의 추종이다. 이제 이 30%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말아야 할 병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증후가 야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빠"니 "친노"니 하는 정치적 딱지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붙고 있다. 오늘도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야당과 야권은 친노 때문에 문제라며 척결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대립의 각을 세우는 정파들과 유권자들이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을 격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지적하면 감정적으로 매우 불편해지는 경우들이 많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이었으며, 그 결과 정권을 잃은 장본인이다.
바야흐로 한국 정치는 박정희 지지자들과 노무현 지지자들의 싸움처럼 보인다. 아니 두 개의 정치 종교가 형성됐다. 1960~70년대 경제 성장의 단맛을 잊지 못하는 노인 세대들은 자본주의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염원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노무현 정부 당시 30~40대로서 민주화의 확대를 경험했던 세대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을 자신들의 청년기 민주화 투쟁의 성과로서 동일시하며 그 시절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죽어서 신(神)이 된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말기에 총탄에 의해 생을 마감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에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그 지지자들에 의해 죽어서 신이 되었다. 아니 지지자들이 두 대통령을 신으로 만들었다. 지지자들은 신도처럼 따른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정치사의 거대한 옹이로 자리 잡는 것 같다. 그 어떤 도끼로도 쪼개기 어려운 옹이처럼 또는 거대한 빙벽처럼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 것 같다. 정치의 종교화 현상이다. 그러나 박정희교와 노무현교는 그 위력 면에서 아직 차이가 크다. 그 동안 박정희교가 정치 발전에 치명적인 방해 요인이었는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노무현교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독교나 불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예수나 부처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대개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도들과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박정희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과 그 신도들 모두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고, 노무현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 모두를 비판하는 세력과 주로 그 지지자들을 비판하는 세력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전자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이고 후자는 친노를 비판하는 야권 세력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박정희교와 반박정희교의 대립, 반박정희 세력은 노무현교와 그 반대 세력으로 분열되어 갈등하고 있다.
야권의 필패 딜레마
야권의 이러한 분열은 항상 신당 창당, 통합, 분당 등의 반복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정희교 지지자들은 내부적인 다툼은 있어도 대외적으로는 결속을 강화하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당명의 간판은 새로 달더라도 오히려 갈수록 공고하게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간판도 수시로 바뀌고 합쳤다 헤어졌다 반복하면서 유권자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으며 급기야는 신뢰조차 잃어버렸다.
야권은 신당 창당,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와 비노의 갈등 등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신당이 창당되든 새정치민주연합이 둘로 쪼개지든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압도하면 상황은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럴 일이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한 배를 타고 끝까지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으로서 야당은 여당을 이길 수 없다. 적어도 2017년 대선까지 승리의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니 그 동안 뜻밖의 변수가 발생하거나 작동하면 모를까 예측 가능한 현재의 변수와 상수로 보면 의회권력이든 대권이든 야당이 이길 확률은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예측일 것 같다.
정치의 탈종교화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싸움에서 야당 또는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치의 탈종교화를 추구해야 한다. "친노", "노빠"와 같은 낙인을 찍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찍히지도 말아야 한다, 안정적인 곁방 전세살이 같은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하고 그 주인이 친노냐 비노냐 싸울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새로운 집을 마련하는 데 전력을 투입해야 한다. 사랑을 가르친 예수를 내세워 오히려 증오와 갈등을 저지르는 기성 종교의 정치적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노와 비노의 싸움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렸다. 그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전파하고 실천함으로써 예수를 부활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패배했다. 패배의 결과 스스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죽음을 선택했다. 그를 지지한다면 그가 말한 대로 실천해야 한다. 형제들과 싸우지 말라. 타락한 종교의 어두운 그림자를 뒤집어쓴 정치는 더 이상 지지받지 못한다. 박정희교와 노무현교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커다란 숙제라고 본다.
(☞관련 기사 : 민교협의 정치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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