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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오리올스행, 최선의 답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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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오리올스행, 최선의 답안지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오리올스행, 모두가 웃는다
KBO리그 '천재 타자' 김현수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 17일 볼티모어 지역지 <볼티모어 선>의 댄 코놀리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한국 외야수 김현수가 2년 700만 달러(약 82억6000만 원)에 계약을 합의했다"고 전했다. 메디컬 테스트만 통과하면 김현수는 KBO리그에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첫 번째 선수가 된다. 앞서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는 모두 포스팅 과정을 거쳐 빅리그 유니폼을 입은 바 있다.

현실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당사자들 모두가 100% 만족하는 완벽한 계약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은 한쪽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거나, 데드라인에 쫓겨 마지못해 도장을 찍거나, 아니면 계약이 어떤 결과로 끝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 합의에 도달하곤 한다. 하지만 오리올스와 김현수의 이번 계약은 그렇지 않다. 김현수 영입은 오리올스 구단에나, 선수 본인에게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이상적인 계약이며, 양측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볼티모어 오리올스 구단 입장에서 보자. 2015 시즌 볼티모어의 외야진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최악의 수준이었다. 11명의 선수가 번갈아 가며 등장한 볼티모어 외야진의 조정 득점 생산력(wRC+)은 86으로 리그 30개 팀 중에 29위(30위 신시내티)에 그쳤다. 외야진의 평균 출루율은 0.295로 채 3할에도 미치지 못했고, 장타율도 0.397로 저조했다. 특히 김현수의 포지션인 좌익수 자리는 무려 7명의 선수가 돌아가며 나섰지만 wRC+ 80에 장타율 0.373에 그치며 최악의 기록을 냈다. 올 한해 볼티모어 외야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중견수 애덤 존스가 유일하다.

또 크리스 데이비스(47홈런) 외에는 위협적인 좌타자가 없다는 것도 2015 시즌 내내 오리올스를 괴롭힌 문제다. 데이비스는 2015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취득했다. 볼티모어에 잔류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데이비스가 이적할 경우 볼티모어 타선에서 왼쪽 타석에 나설 수 있는 선수는 스위치 히터인 맷 위터스와 지미 파레데스만 남는다. 볼티모어 홈구장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좌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으로 꼽힌다. 홈경기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좌타자의 공격력이 중요하다. 이에 오리올스는 이번 스토브리그 초반부터 좌타석에서 타격하는 코너 외야수 영입을 목표로 움직였다.

▲김현수의 MLB 성공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연합뉴스

문제는 FA로 팀을 떠날 줄 알았던 포수 맷 위터스가 뜻밖에도 팀 잔류를 선택했다는 것. 메이저리그 구단은 FA 자격을 앞둔 선수에게 1년짜리 '퀄리파잉 오퍼(qualifying offer)'를 제안할 수 있는데, 선수가 이를 거부하고 FA를 택하면 구단은 이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얻을 수 있다. 이에 구단은 팀을 떠나 장기 계약을 노리는 선수에게는 실제 붙잡을 의사가 없더라도 퀄리파잉 오퍼를 제시해 실익을 챙기는 쪽을 택한다. 이미 칼렙 조셉과 스티브 클레빈저라는 두 명의 주전급 포수를 보유한 오리올스는, 위터스를 떠나보내고 절약한 연봉으로 FA 시장에서 외야수와 선발 투수를 영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맷 위터스의 뜨거운 친정 사랑 때문에, 오리올스는 2016시즌 연봉 1580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1년 더 위터스를 기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졸지에 주전급 포수를 3명이나 보유하게 된 오리올스는 결국 포수 중 하나를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트레이드를 통해 공격형 포수 클레빈저를 시애틀 매리너스로 보내고, 대신 1루/외야수 요원인 마크 트럼보를 받아온 것. 통산 131개의 홈런을 기록 중인 트럼보는 파워는 뛰어난 편이지만, 삼진이 많고 선구안과 수비력이 떨어지는 우타자다. 기존 볼티모어 외야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선수다. 게다가 2015년연봉 690만 달러로 몸값도 만만찮은 편이다. 연봉 조정 3년차인 2016년 연봉은 800~9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와 함께 FA 시장에서 알렉스 고든 등 수준급 좌타 외야수를 영입하려던 볼티모어의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 됐다. 볼티모어가 김현수 영입전에 어느 구단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

김현수는 누구인가

1988년생인 김현수는 수유초-신일중-신일고를 거쳐 2006년 육성 선수 신분으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지만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어느 구단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당시 김현수의 드래프트 '낙방'은 지금까지도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입단 이후 김현수는 성실한 훈련 태도와 근성 있는 모습으로 당시 두산 사령탑 김경문 감독(현 NC)의 눈도장을 받았다. 육상 선수로는 드물게 입단 첫해부터 1군에 등록해서 경기까지 출전했고(1경기 1타석 무안타), 이듬해부터는 풀타임 1군 선수로 출전하며 99경기 타율 0.273 5홈런 32타점을 기록해 가능성을 보였다.

2008년부터는 김현수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입단 3년차를 맞은 김현수는 시즌 전 경기(126경기)에 출전해 0.357의 타율에 9홈런 89타점을 기록하며 천재성을 발휘했다. 2009년에는 전년도와 같은 타율(0.357)을 기록하면서 홈런 숫자를 23개로 끌어올려 한 단계 더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FA 자격 취득을 앞둔 올해는 141경기에서 타율 0.326에 데뷔 이후 최다인 28개 홈런을 쏘아 올렸다. 김현수의 통산 성적은 10시즌 1131경기 타율 0.318에 142홈런 771타점이다. 김현수의 통산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는 33.2승으로 역대 외야수 중에서는 박재홍, 심정수, 김재현, 이병규, 이순철, 장효조, 박한이, 전준호, 박용택에 이어 10위에 해당한다(현역 외야수 4위). 20대 현역 선수 중 김현수보다 많은 WAR을 적립한 선수는 SK 최정이 유일하다.
이런 면에서 김현수는 볼티모어가 현재 상황에서 외야 보강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다고 볼 수 있다. 팀이 원한 좌타자 외야수의 요건에 부합하고, 연평균 350만 달러의 몸값도 현재 FA 시장에 나온 외야수들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리그 평균 이상의 성적이 기대되는 젊은 외야수를 이 정도 조건으로 잡을 기회는 흔치 않다. 외야 수비력도 지난 10년간 잠실야구장의 넓은 외야를 지키며 어느 정도 검증이 끝났다. 김현수는 발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타구 판단력이 좋고 송구 정확성도 나쁘지 않다. 충분히 리그 평균 이상의 외야수로 활약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많은 볼넷을 골라내면서 삼진은 적게 당하는 타자라는 점에서, 기존 볼티모어 타선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15 시즌 볼티모어 타선의 볼넷/삼진 비율은 0.31로 30개 팀 중 28위에 그쳤다. 22.2%의 타석당 삼진율은 컵스-휴스턴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반면 김현수는 통산 볼넷 597개를 얻을 동안 삼진은 501차례만 당하며 1.19의 놀라운 볼넷/삼진 비율을 자랑한다. 메이저리그 진출 시 김현수의 예상 볼넷/삼진 비율은 0.63으로 이는 2015년 기준 MLB 전체 22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이다. 참고로 김현수의 2015 성적을 기반으로 산출한 2016 메이저리그 예상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산출 방식은 '미네소타가 박병호에 베팅한 세 가지 이유'를 참고하라.) (☞관련 기사 : 미네소타가 박병호에 베팅한 세 가지 이유)

ⓒ배지헌


김현수 입장에서도 오리올스 유니폼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주전 경쟁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오리올스의 40인 로스터를 살펴보면, 팀 내에서 김현수의 주전 자리를 위협할 만한 선수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FA 시장에서 추가로 거물급 외야수를 데려올 만한 자금 여유도 없는 상황. 이에 김현수는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은 물론, 시즌 초반까지 꾸준하게 주전 외야수로 기회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입단하자마자 치열한 주전 경쟁에 내몰린 강정호와 비교하면, 훨씬 심리적으로 여유로운 가운데 메이저리그에 적응해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조건이다. 포지션이 외야수라 그라운드 상태나 주자들의 거친 플레이에 신경을 곤두세울 일도 많지 않다. 강정호 이전까지 동양인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는 대부분 외야수였다.

대표적인 타자 구장으로 통하는 오리올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도 호재다. 김현수는 2006년 데뷔 이후 10년간 타자에게 불리한 구장인 잠실을 홈으로 사용했다. 잠실구장의 1991~2014년까지 평균 파크팩터는 0.929로 국내 모든 구장 중에서 가장 타자에게 불리하다. 같은 기간 홈런 팩터 평균도 0.781에 그쳐, 홈런 구경하기가 <개콘>보며 웃을 확률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지난 4시즌 동안(2012~2015) 김현수가 잠실 홈구장에서 쳐낸 홈런은 24개, 원정경기에서 기록한 홈런은 44개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김현수가 홈으로 쓰게 될 오리올 파크는 최근 몇 년간 쿠어스 필드-양키 스타디움과 함께 가장 좌타자 홈런팩터가 높은 구장이다. 타자들의 무덤에서 좌타자의 천국으로 자리를 옮긴 만큼, 예상치(11~13홈런)보다 훨씬 많은 홈런을 기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2년이라는 짧은 계약 기간도 김현수에게는 유리한 조건이다. 2년간 좋은 활약으로 주가를 한껏 끌어올린 뒤, 2년 뒤에 다시 FA 시장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27세인 김현수는 볼티모어와 계약 기간이 끝나도 29세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2년간 타자 구장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낸다면 충분히 'FA 대박'을 노려볼 수 있는 나이다. 또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일본 진출이나 한국 복귀 등 다른 가능성을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적은 연봉을 감수하면서 계약 기간을 줄인 것도 아니다. 김현수의 평균 연봉 350만 달러는 먼저 진출한 강정호(275만 달러), 박병호(287만 5천 달러)보다도 많다. 기간은 물론 금액 면에서도 만족스러운 계약 조건이다.

한 가지 더. 이번 김현수 계약 소식에 웃고 있는 건 구단과 선수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를 중계하는 방송사와 미디어, 국내의 메이저리그 팬에게도 김현수의 오리올스행은 반가운 소식이다. 오리올스가 속한 AL 동부지구는 MLB 최고 인기 구단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속한 곳이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이들 팀과의 경기는 확실한 흥행과 화제성을 보장한다. 여기에 AL 동부지구에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매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는 탬파베이 레이스도 속해 있어 매 경기 치열하고 흥미로운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김현수의 오리올스행 소식에 구단도, 선수도, 방송사도, 미디어도, 팬들까지 모두가 활짝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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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
야구 블로거. 2009년부터 여러 포털 사이트와 잡지에 야구 글을 기고하고 있다. <프로야구 크로니클>,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3>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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