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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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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전태일통신 6> 비정규직이라는 뇌관
희망이 있다면 아무리 큰 고통도 참을 수 있지만, 희망이 없다면 아주 조그만 고통도 견딜 수 없다. 그리고 정당한 명분과 법적 근거 하에서 가해지는 어려움은 감내할 수 있지만, 정당화될 수 없는 차별과 억압이 만연해 있는 세상은 폭발을 기다리는 시한폭탄과 같다.

주류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들이 집단적으로 거리에 뛰어나와 교통을 마비시키고 악다구니를 쓰지 않는다고 빙산 아래 그 수십 배, 수백 배 큰 얼음 덩어리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 노동자의 55%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이 한국의 현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경제 양극화가 과거의 것과 다른 점은 바로 저임금과 차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그들이 왜 열악한 현실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줄 수 있는 시원한 명분과 논리가 없다는 점이다.

첫째, 이들은 자신과 거의 동일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경력과 기술 면에서 자신보다 결코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일터에서 자신보다 2배 정도의 임금과 고용안정, 그리고 사내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리고 남성과 동일한 노동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극히 불리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여성노동자들 역시 그러한 현실을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다.

둘째,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의 저임금, 억압, 비인간적인 대우가 비록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말뿐이기는 하나 산업역군이라는 낮 간지러운 칭찬도 있었고, 또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기회가 오면 그러한 현실로부터 탈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은 그러한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나 사회나 기업이나 이들에게 아무런 목표나 희망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계약기간이 지나면 재계약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비정규직으로서 일정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된다는 보장도 없으며, 경제가 좋아지면 복지와 노동조건이 향상된다는 비전도 별로 없다.

더구나 그 시절에는 일터에서 사건이 터지면 급히 달려와서 위로해주고 불철주야 뛰어다지면서 내 일처럼 처리해 주던 학생이나 신부님, 목사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때와는 백팔십도 다르다.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죽어가도 자신과는 아무 관계없는 딴 나라 백성인 양 곁눈으로 보고서 지나가버리는 시민들, 내 코가 석자여서 옆을 볼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의 군상들만이 거리에 넘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민주니 참여니 인권이니 하는 소리를 외치던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서 이제 공공연하게 우리 사회는 법치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화장실 한번 당당하게 가보자는 것이 우리의 요구입니다"라고 외치는 건설 플랜트 노동자들의 요구를 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원시부족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인 양 듣고 있다는 점이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을 하고 핸드폰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 조치되는 현대판 노예이자 3등 국민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무서운 시한폭탄이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친 전태일의 분신은 역사책 속의 흘러간 옛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과 권력자들의 가시권을 벗어난 저 밑바닥 대한민국은 무법천지다. 그리고 작업장이야말로 불법의 천국이다. 그리고 매일 이 불법과 편법을 지켜보면서 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분의 목소리를 내기가 무섭게 준법을 요구하며 휘두르는 경찰, 검찰의 몽둥이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조치가 아니라 뇌관을 돌로 쳐서 터트리려는 극히 위험한 장난이다.

평등과 관용의 정신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최근의 소요사태를 보면, 정당화되지 않는 차별, 아무런 희망과 대안도 주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실감할 수 있다.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20명의 천국이 80명의 지옥 위에서 보장된다면, 그 천국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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