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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5분의 1, 가습기 살균제 살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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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5분의 1, 가습기 살균제 살인 대상" [함께 사는 길]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 220만 명을 찾아라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매달린 지 5년째다.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 '가습기 살균제'를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한다. 검색할 때마다 새로운 뉴스가 떠 있다. 나름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인데도, 뉴스에는 모르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지난 5년 동안 필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 몇 개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 중 몇 명이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 중에서 몇 명이나 피해자일까?

ⓒ함께사는길

잠재적 피해자 추산 방법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규모를 추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는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수와 평균적인 사용자 수, 그리고 한 통의 평균 사용기간 등을 알면 추산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반 인구 중에서 평균적인 사용률과 당시의 인구수를 알면 추산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인구가 추산되면, 사용자들 중에서 건강 이상을 경험했거나 상대적으로 고농도의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용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면 잠재적인 피해자를 추산할 수 있다.

사용자 수와 피해자 수를 추산하는 두 가지 방법 모두 정교한 방법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이 아닌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추산을 시도해보았다. 먼저 다음과 같은 추산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했다.

○ 정보 1 :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11월 이후 6개 제품은 강제로 판매가 금지되었고, 나머지 제품도 판매 및 사용금지가 권고되었다. 따라서 사용자는 2010년의 통계청 전체 인구인 4941만 명을 기준으로 추산한다.

○ 정보 2 :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 역학조사를 발표하기 전에 일부 도시의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습기 사용비율은 37.2퍼센트이고 가습기 살균제 사용 비율은 18.1퍼센트였다. 이 내용은 2012년 한국환경보건독성학회지에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발표했다.

○ 정보 3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2015년 12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에 의뢰하여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ARS-RDD방식의 휴대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22퍼센트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 경험이 있었고 사용자 중에서 20.9퍼센트가 '사용 중 건강 피해 경험'을 호소했다.

○ 정보 4 : 검찰수사팀의 수사 과정에서 알려진 내용으로 옥시 측이 호서대학교에 의뢰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시 실내 대기 중 살균제 농도조사에서 30채의 아파트에서 가을과 겨울 두 차례 조사했더니 60회 중에서 2회가 고농도로 조사되었다.

잠재적 피해자 227만 명 추산

이상의 정보를 바탕으로 추산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는 894만~1087만 명이다. 사용자 중에서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자는 29만~227만 명으로 추산된다. 건강 피해자는 '고농도 노출자 또는 설문조사에서 건강 피해 경험 호소자'로 규정한 추산이다. 2016년 5월 31일까지 정부에 신고한 피해자가 2336명인데, 이는 전체 피해자 추산의 0.1~0.8퍼센트에 불과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앞의 추산은 2010년 1년 동안만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와 피해자 추산이다. 여기에 더 정밀한 추산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된 기간인 1994년부터 2011년까지의 출생아 인구를 고려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신생아는 43만 5400명이다. 인구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였음을 고려해 가습기 살균제 판매기간인 16년 동안 매년 평균 45만 명이 새롭게 태어난 신생아였다고 보면 720만 명이 추가된다. 이를 고려하면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추산은 1024만~1245만 명으로 늘어나고 피해자 추산도 33만~260만 명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피해자가 많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힘들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정부가 피해 신고를 재개한 4월 25일부터 5월 말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에만 1054명이 추가로 신고했고 이중 사망자는 236명이나 된다. 이런 사실을 보면, 이 추산의 상당한 정도가 사실일 수 있다. 이 기간의 특징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라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매일 이 문제를 전해줬다. 따라서 이런 식의 보도가 계속된다면, 피해신고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찾기 전국순회캠페인(2015. 10. 24~11. 7). ⓒ환경보건시민센터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찾기 전국순회캠페인(2015. 10. 24~11. 7). ⓒ환경보건시민센터

피해자 스스로 신고하기 어려운 이유

지난 5년여 동안 필자는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여러분들 중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본 사람 있나요?"라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20퍼센트 내외의 사람들이 사용했었다고 말한다. 앞의 추산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은 아직 신고하지 않은 무수한 피해자를 찾아내는 데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망피해다. 지금까지 신고한 피해자의 20퍼센트가 사망자다. 이들을 찾아내 관련성을 밝히고 제조 판매사와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혹자는 이제 정부가 피해 신고 기간을 무기한으로 열어놓았으니, 피해자가 있다면 신고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먼저, 사람들은 자신이 또는 가족이 과거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었는지 여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종류의 제품을 사용했는지는 더욱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짧게는 5년 전에 길게는 22년 전에 1000원에서 2000원에 사서 쓰고 버리는 일회용 가습기 살균제 상품을 기억해 내고, 그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이 건강에 이상을 경험했는지를 연관시켜내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건강 이상의 경험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는 동안 또는 그 이후에 기존에 질병이 있었던 경우는 그 질병이 더 악화되었는지 여부가 중요하고, 건강했던 경우는 호흡기질환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질병이 발병되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점은 이 과정에서 사람이 사망한 경우일 것이다.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화학물질 집단 테러

이 사건이 알려진 지 5년이 되었지만, 언론 보도가 많이 나간 올해 들어서 전체 신고의 절반 가량이 쇄도했다는 사실은 스스로 또는 가족이나 친지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및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다시 말해, 현재와 같이 정부와 지자체가 가만히 앉아서 피해신고를 접수받는 식으로는 피해자를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거리에서 병원과 집마다 찾아가서 피해자를 찾아내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비유가 거칠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집단 테러 또는 집단 살인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전 국민 5000만 명 중 1000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이자 테러 및 살인의 대상이었다. 그중 30만 명에서 200만 명이 실제 피해를 입은 대상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테러와 살인은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버젓이 저질러졌다.

이제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들 피해자들을 찾아낼 의지가 있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찾아내느냐 하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한국전쟁의 피해자를 찾아내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적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아직도 시신도 못 찾은 전사자들도 부지기수다. 찾아낸 시신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무영의 전사자로 처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화학물질과의 전쟁'이었고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을 위시한 기업들에 의해 저질러진 화학물질 집단 테러'였다. 그 규모는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과 사망자들에 버금가거나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쟁 또는 테러에서 희생된 피해자 중 1퍼센트도 채 안 되는 피해자만이 신고했을 뿐이다. 만약 피해자를 찾아내지 않고 이 문제를 이대로 덮는다면 이는 옥시와 롯데, SK, 애경 등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된다.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할 것이고 가해자들의 면죄부는 반복될 것이다.

▲ 시민단체들은 지난 4월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 처벌을 촉구하며 '옥시 불매 운동'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전 국민 역학조사 필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전국의 2, 3차 병원에 내원해 입원했거나 사망한 사례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하는 방법이다. 이들을 추적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었는지 여부를 묻고, 기억을 떠올리게 도와주고, 사용 과정에서 기존의 질환이 악화되었는지 아니면 새로운 질환이 발병했는지 나아가 사망했는지 파악하는 조사다.

다른 방법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환경역학조사다. 통계청이 몇 년에 한 번씩 몇 달에 걸쳐 전국의 모든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인구 조사를 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하면 된다. 국민 10명 중 2명이 사용자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려할 만한 방법이다.

필자는 제시된 두 가지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원 조사는 중증 피해자 및 사망 피해자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유용하고, 전 국민 역학조사는 광범위한 저인망식 조사로서 유용하다. 아마 세계에서 처음 겪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생활제품을 국민의 20퍼센트인 1000만 명이 사용했고 사용자의 3~20퍼센트가 잠재적인 피해자라는 사실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피해자를 찾아내는 조사는 국회가 만든다는 특별법의 핵심내용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5년 정도의 조사기간을 설정하고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도록 지원하고 병원 조사 시 환자와 보호자의 개인정보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관련성을 조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어야 한다. 조사자는 질병관리본부와 환경과학원 등의 정부기관과 환경보건학회와 같은 관련 학회 및 시민단체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효과를 높일 것이다.

참사를 딛고 희생자를 하나하나 찾아내 기록하고 위로하는 일은 어떠한 이유로도 미뤄지거나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 '두 번 다시 생활용품으로 소비자가 시민이 아이들과 산모가 죽고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다짐과 반성은 말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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