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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복지'-민주당의 '진보', 논쟁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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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의 '복지'-민주당의 '진보', 논쟁을 준비하자 [의제27 '시선'] 포스트 신자유주의, 한국의 미래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를 '사건사', '사회사', '구조사'로 나눈 바 있다. 예를 들어 6.2 지방선거, 한나라당 전당대회, 민주당 전당대회를 사건사라 할 수 있다면, '87년체제' 또는 '97년체제'는 사회사를 이룬다. 그리고 구조사는 모더니티와 같은 장기지속을 함축한다.

나름 흥미를 갖춰야 할 칼럼에 다소 딱딱한 역사이론을 언급하는 이유는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 사회와 이와 연관된 정치적 변화에 대한 흐름을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브로델로 되돌아가면, 그는 사회사를 콩종크튀르(국면)의 역사라 이름짓고, 국면의 변화가 사건 및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역사를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사건, 국면, 구조가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로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학 연구자로서 최근 한국사회에선 새로운 국면적 변화를 예감하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여기서 국면이라 함은 물론 신자유주의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 기원을 1997년 외환위기에 두든, 아니면 김영삼 정권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든,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렸던 신자유주의 국면은 이제 또 다른 국면으로 변화돼 가는 도정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친 김에 딱딱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사회변동에서 그 속도는 균일하지 않다. 어떤 국면에선 변화의 속도가 더딜 수 있고, 다른 국면에선 매우 빠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국면이라 하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게 보통이지만, 기술혁신 등과 같은 현대사회 변동은 변화에 가속도를 부여함으로써 국면의 교체를 앞당기기도 한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수용에서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시간격차를 고려할 때, 다시 말해 서구사회에선 8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반면 한국사회에선 90년대에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자유주의 국면이 그렇게 짧은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 국면이 '포스트(post) 신자유주의' 국면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바로 이 포스트 신자유주의 국면이 상당히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국면 교체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고수하려는 세력과 변화시키려는 세력 사이의 경쟁 및 갈등이 치열하다. 일종의 '파국적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발전패러다임이 명확하지 않다. 패러다임 교체를 최후 승인하는 것이 국민 또는 시민의 집합의지에 있다고 볼 때, 시민적 관점에서 대안적 패러다임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이러한 흐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의료개혁을 성취했으나 신자유주의의 중핵을 이루는 금융부문 개혁은 지체돼 있고, 일본의 경우 아동수당은 지급했으나 국가 재정이 상당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유럽의 경우도 큰 차이가 없다. 지난해와 올해 독일과 스웨덴의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선전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와 한국사회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국면사의 시각에서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로의 변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또 국가마다 상이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이 왼쪽으로 이동해 왔다면, 유럽은 크게 보아 오른쪽으로 이동해 온 것이 포스트 신자유주의 국면의 정치적 풍경이다.

둘째, 이러한 지구적 변화가 한국사회에 미치고 있고, 또 앞으로 미치게 될 영향이다. 돌아보면 한국사회에서 국면적 전환을 강제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지만, 무상급식을 둘러싼 토론과 그 연장선상에서의 6.2 지방선거 결과는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의 상징적 징표였다.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학 연구자로서 최근 한국사회의 흐름을 지켜보면 일대 미래논쟁을 예감하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국가 건설을 강조하고,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 담론이 봇물을 이룬 것은 논쟁의 예고편이다. 과연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어떤 사회로 나가야 하는가. 무너져가는 하층 및 중간계급의 삶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며, G2의 시대로 빠르게 재편돼가는 세계질서 속에서 어떤 전략적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새롭게 열리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중대한 국내적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 개의 선거를 위한 미래논쟁이 당장 내년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진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진보적 가치를 갖고 있다면, 담론적, 정책적, 전략적 수준에서 새로운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 비전과 논쟁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국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2012년 중요한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미래에 대한 일대 논쟁이 요구되는 때다. ⓒ프레시안

미래논쟁의 세 가지 과제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학계와 시민사회는 물론 정당을 포함한 진보개혁 진영은 본격적인 진보논쟁을 벌이자. 6.2 지방선거 이후 진보대통합론, 제3지대백지신당론, 빅텐트론 등 연합정치에 대한 토론이 진행돼 왔다. 시민적 시각에서 볼 때 정치전략에 선행돼야 할 것은 가치와 비전 논쟁이다.

일각에서 제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과연 한국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고 어떤 비전을 추구해야 하는지 공개 논쟁을 벌이자. 민주당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중도개혁주의'를 강령에서 삭제한 것처럼, 의식적·무의식적 영향을 미쳐 온 냉전분단체제를 이제는 넘어서서 한국사회의 새로운 진보의 방향을 모색해 보자.

둘째, 비전 논쟁과 병행해 제대로 된 정책 논쟁을 벌이자. 논쟁이 추상수준이 너무 높거나 이념적 수준에서만 진행될 경우 앞선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적잖이 공허할 수 있다. 무상급식 사례가 보여주듯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절실한 것은 현학적 이론 논쟁이 아니라 포스트 신자유주의 아래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정책대안의 현실 논쟁이다.

따라서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 증세를 할 것인가, 성장 동력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 비정규직 법안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가, 아동수당 등 보편적 복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그리고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해 어떤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인가를 포함해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자.

셋째,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거버넌스를 활성화하자. 돌아보면 최근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2008년 촛불집회였다. 6.2 지방선거가 진보개혁 진영에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다 준 것은 다름 아닌 촛불집회의 원동력이었던 시민주체성이 선거 참여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보사회의 진전 속에서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는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바로 이점에서 시민주체성의 열망을 구체화할 수 있는, 진보개혁 정당과 진보적 시민사회가 쌍방향 소통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과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두 개의 선거가 있는 만큼 내년에 선거 국면이 일찍 열린 가능성이 있다. 특히 대선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선택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가 마감되는 전환의 시기에 진보적 콩종크튀르를 열 수 있는 중대한 정치적 계기다. 한국사회는 지금 논쟁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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