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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집권 2년 남았지만, 이미 '선거'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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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집권 2년 남았지만, 이미 '선거'는 시작됐다" [의제27 '시선'] 97년 체제를 넘어서자
역사를 보는 시각은 흔히 구조적 시각과 주체적 시각으로 대별된다. 전자가 역사를 이루는 구조적 조건을 중시한다면, 후자는 그 조건 아래서 살아가는 집단의 주체적 의지를 주목한다. 집단적 주체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은 다시 정치 엘리트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점과 일반 시민(민중이라고 해도 좋다)의 활동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나눠 볼 수 있으며, 이는 지배세력 중심의 시각과 시민세력 중심의 시각으로 이름 지을 수도 있다.

2011년의 역사적 의미

현실 이슈를 주로 다뤄야 할 칼럼에서 느닷없이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새해가 시작된지 한 달이 지나긴 했지만, 올해 2011년의 역사적 의미를 한 번 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올 2011년이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수령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체제론적 관점에서 올해와 내년은 '97년 체제'가 새로운 체제로 나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97년 체제는 다름 아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등장한 신자유주의 레짐(regime)이다. 97년 체제는, 1961년 박정희 정권과 더불어 등장한 '61년 체제'를 대신하여 우리의 경제·사회·문화, 그리고 정치까지도 신자유주의 원리로 재구조화해 왔다. 부유층 감세와 4대강 사업으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는 바로 한국적 신자유주의 레짐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시민세력 중심의 관점에서 이러한 신자유주의 체제에 중대한 균열을 가져온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08년 봄 촛불집회의 경험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졸속 협상에서 시작된 촛불집회에 담긴 주요 코드 중 하나는 민영화 반대, 공교육 정상화 등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적 비판이자 거부였다. 다른 하나는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다. 촛불집회로 형성된 새로운 '정체성의 정치'에 미국발 금융위기는 반(反)신자유주의의 세계사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결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철옹성과도 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두 번째 균열을 제공했다.
▲2008년 촛불집회는 97년 체제의 중대한 균열을 가져왔다. ⓒ프레시안(자료사진)

97년 체제의 위기와 미래 논쟁

이러한 변화가 가져온 것이 다름 아닌 97년 체제의 위기다. 97년 체제의 위기에 대해 보수 세력은 2009년엔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2010년엔 '공정사회론'으로 각각 대응했다. 친서민 중도실용이 97년 체제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에 대응하는 보수적 전략이었다면, 공정사회론은 97년 체제의 중심 원리인 '경쟁 만능'을 '기회 균등'으로 대처하려는 보수적 해법이었다. 그 효과 여부를 떠나서 97년 체제의 정치적 지지가 철회되는 것에 대해 보수 세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민의 관심은 97년 체제의 극복을 요구하고 있었으며, 그것도 임시 처방이 아닌 구조적 처방을 요청하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 무상급식으로 상징된 복지국가 논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는 이 논쟁의 예고편이었으며, 최근 진행 중인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그 본편인 셈이다.

둘째, 바로 이런 맥락에서 97년 체제의 위기가 가시화되는 과정 속에 미래 논쟁이 이제 막 열리고 있다. 지배세력 중심의 관점에서 미래 논쟁의 이니시어티브를 잡은 것은 무상급식을 의제화한 진보 세력이었으며, 여기에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미래 논쟁은, 최근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의 '맞춤형 복지'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복지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 모색을 강제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적지 않은 보수 세력은 여전히 복지국가보다는 성장주의 모델을 내심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계자본주의 질서로부터 가해지는 구조적 강제는 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의 내적 진화를 모색해 온 선진화 모델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정책 추진의 여부와는 별개로 1990년대 후반 서유럽 중도좌파 그룹이 주조한 사회투자국가 전략을 우리 보수 세력의 일각이 수용하여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으로 제시하는 것 자체가 매우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시대정신의 교체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정치 세력의 경쟁은 언제나 담론 또는 시대정신의 경쟁과 병행한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를 이끈 두 개의 시대정신은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지배세력 중심의 관점에서 그것은 보수적 산업화세력과 진보적 민주화세력의 경쟁으로 나타났으며, 그 개별 세력은 다시 온건 그룹과 정통 그룹으로 내적 분화를 이뤄 왔다. 그 결과, '안보적 보수' 및 '시장적 보수'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과 '중도진보' 및 '정통진보'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은 '선진화'에서 '사회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전 및 시대정신을 제시해 왔다.

복지국가, 새로운 시대정신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이러한 다양한 담론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등장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부재한 경제적 산업화가 민주화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했듯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부재한 정치적 민주화가 이제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2011년 현재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는 복지국가가 철지난 모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세계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1980년대에 우리 사회에선 민주화 열풍이 불었듯이, 지금 우리 사회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회적 약자를 체계적으로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복지국가의 구축과 강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것은 복지국가에 대한 이러한 관심이 앞서 말한 구조적 조건의 역사에 정확히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97년 체제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의 강화, 다시 말해 사회의 지속불가능성을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으며, 따라서 지속가능성을 일차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담론이 이제는 시민 다수로부터의 헤게모니를 결코 창출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더불어 주목할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서의 복지국가에 대한 이러한 관심의 증가가 지난 몇 년 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선진화 담론의 때이른 쇠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적으로 선진화는 산업화, 민주화, 복지국가와 비교할 때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경제적 산업화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로, 그리고 다시 사회·경제적 복지국가로의 진화는 어느 사회에서든 관찰할 수 있는 이른바 모더니티에 내재된 경로의존성이기도 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목표가 신자유주의의 내적 진화에 있는 한 선진화 담론이 97년 체제의 극복을 요구하는 시대적 국면에서 더 이상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토건주의'는 선진화 담론이 갖고 있던 긍정적 의미를 이미 적잖이 소비함으로써 그 개념의 생명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결론을 맺자. 신자유주의라는 구조적 강제가 이완되는 현실 속에서 97년 체제를 극복하려는 미래 담론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해가 다름 아닌 올해 2011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담론 경쟁의 중간 기착지가 바로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될 것이다. 누가 과연 97년 체제를 넘어선 미래의 비전과 시대정신의 제시에서 시민 다수의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는가. 최근 민주당이 제기한 무상복지 논쟁은 그 헤게모니 경쟁의 시작을 함축한다. 아직 2년의 집권 기간이 남아 있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불만이 있겠지만, 이미 선거는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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