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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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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 [하승수 칼럼] "동성애는 찬·반 대상이 아니다"
2013년 4월 17일 뉴질랜드 국회에서는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는 결혼법 개정안이 표결에 붙여졌다. 당시에 뉴질랜드 국회의원은 121명이었고, 노동당·녹색당 등 동성결혼 법제화에 우호적인 정당의 의석을 다 합쳐도 50석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동성결혼 법제화 법안은 찬성 77표, 반대 44표로 가결되었다. 뉴질랜드의 보수정당이자 여당이었던 국민당 의원 27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뉴질랜드의 보수는 달랐다. 당시 뉴질랜드 국민당의 모리스 윌리암슨 의원은 '우리가 이 법안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 사랑을 결혼으로 인정받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 모르겠군요'라고 발언했다.


이런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는 유엔의 공식입장이고, 동성결혼 법제화를 하는 국가들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세계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이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결혼과 유사한 시민결합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까지 포함하면 벌써 35개 국가에 달한다.


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2017년 12월 동성결혼 법제화 법안이 통과된 호주에서도 보수정당인 자유당 총리가 동성결혼 법제화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동성결혼 법제화는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조차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월 2일에는 충청남도의회에서 자유한국당의 주도로 인권조례가 폐지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실 충청남도 인권조례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도 않다. 단지 인권조례와 연결된 충청남도 인권선언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가 명시되어 있다는 이유로 인권조례 자체를 폐지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인권은 후퇴하고 있다. 이런 인권의 후퇴는 2014년부터 본격화된 것이다. 당시에 서울시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만들어서 공포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측에서 반대를 본격화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다 만들어진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를 포기했다.

여기에서 승리를 맛본 이들은 공세를 강화했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에게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기 시작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국회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 관련법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당에서도 방침을 정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했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한다'고 발언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TV토론에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혐오발언을 쏟아내면서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에 반대하느냐'고 집요하게 물었고, 문재인 후보가 마지막에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문재인 후보는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결혼에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이었다.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이 혐오발언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것은 혐오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 자체가 혐오발언이다. 사람의 존재에 대해 찬·반을 묻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찬·반을 묻는 대상이 된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을 해 본다면, 이런 질문자체가 혐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왼손잡이에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이 말이 안 되듯이, '동성애에 반대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혐오의 언어가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유엔이 권고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동성결혼 법제화는커녕 그나마 있던 인권조례까지 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문제는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혐오질문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데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에게는 또다시 '동성애에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질 것이다. 여기에 굴복하는 후보들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인권은 더욱 후퇴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혐오에 대한 단호한 답변도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혐오발언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심상정 후보는 동성애는 찬·반의 대상이 아님을 지적했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신지예 후보가 '혐오는 포용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 않다'면서, 서울시 인권조례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지금이라도 서울시민인권헌장을 공포하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이런 후보자들이 계속 나오길 바란다. 인권은 늘 혐오와 차별에 맞서고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용기있는 발언들에 의해 진전되어 왔다. 이번 지방선거가 또다시 인권이 후퇴하는 선거가 아니라 반전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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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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