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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식 '미투 공작설', 그리고 '미투 감별법'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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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어준식 '미투 공작설', 그리고 '미투 감별법'에 부쳐 [이라영과 미투 톺아보기] ①
미투 운동이 긴 시간 우리 사회에 파장을 낳고 있다. 적잖은 유명인이 충격적인 폭력의 가해자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여성들이 미투로 드러난 성폭력 문제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폭로를 뒤이어 이어지고 있다. 국회와 여성단체 등은 우리 일상의 성폭력 문제를 논의하고, 대안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투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익명 폭로자를 향한 '꽃뱀'이라는 날선 비난이 제기되고, '어디까지가 미투냐'는 식의 질문의 외피를 쓴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금 인터넷은 과거 메갈리아 사태 당시처럼 미투를 계기로 남녀 성대결 구도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남성 대부분에게서 미투의 맥락과 원인, 더 구조적으로는 여성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현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미투를 더 큰 맥락에서, 더 쉬운 말로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거 <프레시안>에 여성혐오 문제에 관한 글을 여러 차례에 걸쳐 게재한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가 미투와 관련한 첨예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글을 보냈다. 세 차례에 걸쳐 미투가 지금 나오는 이유, 미투에 대한 남성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관한 단상, 미투 운동의 다음에 관한 고민 등을 나눠 싣는다. 글은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가 질문하고 이라영 연구자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왜 지금 '미투'인가?

-요즘 미투 운동이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닌데요, 왜 지금 미투 운동이 이처럼 세계적으로 일어날까요? 여성 차별은 이미 오래 되었고, 페미니즘 운동도 제법 오랜 시간 이어졌는데요.

그동안 쌓여왔던 목소리가 그나마 조금 들리는 시점에 이르렀다 생각합니다. 목소리의 양적 성장이 더는 여성의 주장을 무시하기 어려운 지점이 되었죠. 유명인의 권력형 성폭력 폭로를 시작으로 점차 일상의 성폭력이라는 문제로 화두가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Me Too, 곧 성폭력 고발 운동에는 미디어의 영향도 큽니다. 피해자가 익명으로 말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말이 퍼져나가는 파급력도 큽니다. 지역과 국가를 넘어 말이 들리게 하는 효과가 있기에 미투에 동의하는 이들이 국경을 넘어 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말이 이어지다 보니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또한 누구나 항상 휴대하는 스마트폰을 통해 사진과 녹취를 남기거나 메시지를 저장할 수 있어서, 여성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기가 예전보다 쉬워졌어요.

수많은 묵살을 경험하면서 여성과 사회의 소수자들은 말의 연대를 이어가야 겨우 말이 들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미투, 곧 '나도 OO다'는 주장은 피해자를 고립시키지 않는 언어지요.

-한국의 미투 운동이 다른 나라의 운동과 다른 지점이 있을까요?

운동의 차이점이라기보다, 성폭력의 양상에 선진국과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폭력의 양상이 다르니 그 후 이어지는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한국 남성들은 대체로 유혹을 가장한 성추행을 하지 않습니다. 유혹으로 가장하려는 위선적인 노력조차 안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죠. 여러 사람 앞에서 추행하거나 조직적으로 폭력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일이 더 빈번해요. 또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폭력적인 방식(벽치기, 손목을 아프게 잡고 끌고 가기, 심지어는 구타 등)이 모두 로맨스의 과정으로 그려져요. 이를 우리 사회가 학습하고 있죠.

성차별주의자나 성폭력범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제도적 처벌 양상이 다르고 사회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도 다릅니다. 한국은 수많은 법적 판결에서 보듯이 여성이 겪는 폭력에 매우 관대합니다. 조직은 대부분 가해자를 보호하지요. 심지어 법적으로 유죄를 받은 배우도 오히려 사건 전보다 언론에 자기 생각을 더 많이 말합니다. 법적으로 가해자라고 확인이 되어도 그의 억울함이 문화적으로 더 존중받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는 앵커나 배우 등이 성폭력 가해자로 알려진 후 비교적 빠르게 해당 사실을 인정, 사과하고 방송에서 즉각 하차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케빈 스페이시가 맡았던 역할을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한 후 영화를 다시 찍었어요. 한 장면을 찍기 위해 투입되는 노동력이 엄청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결정은 굉장히 상징적입니다. 물론 이건 겉으로 보이는 변화이고, 실질적인 변화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죠. 이러한 대응이 성폭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그 확실한 선긋기가 무조건 옳은가,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죠. 다만, 사회가 미투에 반응하고 응답한다는 건 중요합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런 반응이 약해요. 여전히 미투를 무시하죠.

최근 한국도 변하고 있긴 합니다. 얼마 전 김생민 씨가 방송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김생민 씨처럼 빨리 인정하고 사과할 경우, 특히 가해자가 그간 좋은 이미지를 쌓았을 경우, 가해자가 '잃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대체로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고, 억울해 하고, 피해자를 모독하고, 조직은 대응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주변에서도 지쳐서 폭로한 사람을 지겨워하고... 우리 사회는 이런 흐름에 익숙하기 때문에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만으로도 가해자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효과를 얻어요. 졸지에 그는 폭로 '당해서 불쌍한' 사람이 되지요.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도 여성들은 집단적 목소리를 냈다.그간 지속되어온 여러 움직임이 폭발했다. 이번 미투 운동 역시 그간 우리 사회가 개별 여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자, 여성이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미투 지지자는 '꼴페미'?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여성이 본격적으로 집단적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미투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냈다기보다는, 여성의 목소리가 모이면서 강남역 살인사건을 사건화 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여성이 어이 없이 죽임 당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전에 2015년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있었고, 메갈리아를 통해 언어 대항을 하면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경험들이 축적 되었습니다. 그 경험의 축적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명명하여 사건화 할 수 있는 추동력을 더해 주었다고 봅니다.

겉보기에는 어느 순간 여성들이 터져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조금씩 쌓아온 맥락이 있지요. '~내 성폭력'이라는 고발도 2016년에 있었고요. 성폭력 피해자의 옷차림을 문제 삼은 캐나다 경찰의 한 마디로 촉발되어 세계적인 운동으로 퍼졌던 '잡년행진'도 있었고, 2000년대 초반에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한국에 이미 있었죠.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러 개인들의 고된 싸움이 있었고요.

메갈리아는 도발적인 언어를 통해 여성을 유머의 주체, 이름을 만들어 부르는 주체로 만드는 시도를 했기에 대중적인 파급력이 있었습니다. 메갈리아 이후, 그들의 '상스러운' 언어가 남성은 물론이요, 많은 여성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지요. 그 '불편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하지 않은 변화는 없어요.

종종 '잘못된 분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요. 형식적으로 틀린 지적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분노가 아닙니다. 분노가 억압당하는 게 문제지요. 분노에 잠식당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분노해 보는 경험도 중요합니다. 자기 안에 갇힌 분노가 자신을 뚫고 나와 '공분'이 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공분은 애도의 정치화, 여성 살해의 정치화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투 초기의 충격에 대중이 어느 순간 익숙해진 듯합니다. 이와 동시에 '미투 지지=꼴페미'라는 등식이 온라인에서 회자되면서, 다시금 여성혐오가 강하게 일어나는 듯합니다. 일각에서는 미투를 정치적 음모론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만들어진 미투 지형이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대중이 익숙해질 뿐 아니라, '지겹다'는 사람들도 나오기 마련이죠. '문화화된 폭력'의 경우, 사람들은 폭력이 지겨운 게 아니라 그 폭력(문화)을 폭력이라 규정하고 말하는 목소리에 더 지겨움을 느끼니까요. 실제로 권력형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는 흔히 '관행'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어차피 뭘 해도 '꼴페미'는 계속 창조됩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성폭력을 폭로하면 꼴페미고,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폭로하면 꽃뱀이고, 폭로하지 않으면 '걸레'입니다.

정치적 음모론, 이건 아주 비열한 대응이에요. 우리편이냐 아니냐로 사안을 판단하려니 무리수를 둘 수밖에요. 김어준 씨를 비롯하여 그 주변 인물과 지지자들은 안태근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까지만 성폭력 폭로를 지지했습니다. 화살이 딱히 정치적 진영에 머물지 않자 '걱정'한다는 명목으로 '저쪽에서 공작을 꾸미면 어떡하느냐'는 둥 위험한 발언을 흘리더니, 점점 '우리 편'의 실체가 드러나자 본격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가해자 옹호하기에 앞장섰습니다.

이 사안에 대한 김어준 씨의 발언과 태도에는 꾸준히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 왔지만 그 중 아주 거슬리는 문장 하나만 꼽자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 되겠다"라는 공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상대 정치 진영에서 현재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매체에 내보낼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피해자들을 의식이 있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준비시켜', '등장시켜야' 하는 수동격의 인물로 본다는 뜻이죠. 김어준 씨는 '나꼼수 비키니 응원'이 비판받을 때에나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했어요. 곧 여성이 '주체적 성적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스스로 문제제기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을 안 합니다.

한국은 네크로필 사회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당분간 시끄러워지겠지요. 폭력이 줄어든다기보다는 폭력이 가시화 될 테니까요. 우리 사회가 이 '소란스러움'을 마땅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저 지속 가능한 폭력의 구조를 유지할 뿐입니다.

이 운동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해 온 수치심의 개념이 아주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니까요.

-어디까지가 미투인가요? '키스 시도도 미투냐'는 식으로 많은 남성이 불만을 드러냅니다. 여성 혐오가 깔린 질문이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남성이 미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어디까지가 성폭력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이해합니다. 키스 시도도 성폭력이냐는 질문에는 사람의 몸을 개척하는 땅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 있어요. 물리적 장소로서 몸의 어디까지가 허락되고 어디부터 안 되느냐는 의식이 보입니다. 물론 '허벅지를 만졌다'와 '구타를 동반한 강간'은 명백한 차이가 있지요.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법적 처벌을 위해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성폭력의 발생 맥락과 개념을 근본적으로 따져 보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많은 남성이 여성과 의견을 교류하지 않는 게 문제예요. 키스가 되느냐 안 되느냐, 가슴을 만지면 되냐 안 되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모든 여성에게 일괄적으로 정해진 '어디까지'는 없어요. 서로가 교류하는 지점, 상황, 모두 다 달라요. 날아다니는 벌이 꽃에 다가가듯이 생각하지 말고, 여성도 움직이는 사람이며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간임을 자각했으면 합니다. 여자와 '만나지' 않고 여자를 구경하고, 여자와 관계 맺지 않고 여자를 덮치고, 자빠뜨리는 대상으로 삼으니 이해를 못하겠지요.

어린 아이에게 뽀뽀해달라고 조르는 어른들은 아이의 의사를 궁금해 하지 않아요. 아이의 '싫음'이 존중받지 못합니다. 보통의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한국은 여성에 대하여 네크로필(nécrophile, 시간증) 사회나 다름없어요.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내 감정을 조절하고, 동의를 구하고, 제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해보고, 상대가 생각할 동안 기다리고, 관계의 숙성을 인내하는 모든 노동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의식이 없는 생물에게 일방적으로 성행위를 하는 겁니다. 권력이 있으면 물리적 힘을 동원하지 않고도 성폭력을 행사하죠. 무력을 통한 강간, 약물 강간만이 아니라, 권력으로 짓눌러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행위 역시 사람의 의식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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