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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에서 '#아이 빌리브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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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에서 '#아이 빌리브 유'로 [이라영과 미투 톺아보기 ③·끝] 여성을 약자화하는 사회에 의구심을
미투 운동이 긴 시간 우리 사회에 파장을 낳고 있다. 적잖은 유명인이 충격적인 폭력의 가해자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여성들이 미투로 드러난 성폭력 문제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폭로를 뒤이어 이어지고 있다. 국회와 여성단체 등은 우리 일상의 성폭력 문제를 논의하고, 대안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투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익명 폭로자를 향한 '꽃뱀'이라는 날선 비난이 제기되고, '어디까지가 미투냐'는 식의 질문의 외피를 쓴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금 인터넷은 과거 메갈리아 사태 당시처럼 미투를 계기로 남녀 성대결 구도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남성 대부분에게서 미투의 맥락과 원인, 더 구조적으로는 여성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현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미투를 더 큰 맥락에서, 더 쉬운 말로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거 <프레시안>에 여성혐오 문제에 관한 글을 여러 차례에 걸쳐 게재한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가 미투와 관련한 첨예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글을 보냈다. 세 차례에 걸쳐 미투가 지금 나오는 이유, 미투에 대한 남성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관한 단상, 미투 운동의 다음에 관한 고민 등을 나눠 싣는다. 글은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가 질문하고 이라영 연구자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여성 문제에 관한 이라영 필자의 다른 글 보기



가해자 말고 피해자에 감정이입해야

-미투 운동이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최근에는 정치인에 관한 폭로와 대학가 폭로를 끝으로 새로운 소식은 잘 나오지 않는 듯합니다. 한편에서는 이제 시민 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미투에 힘을 실을 작업이 진행 중이고요. 앞으로 미투에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밝히는 일은 어쩌면 부차적입니다. 폭로는 최후의 수단이기에 폭로에 의존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지요. 폭로가 나오지 않더라도 제도가 응답을 해야 합니다. 법을 다루는 권력기관인 검사마저도 자신이 겪은 일을 제도적으로 해결할 길이 막혀 언론에 직접 호소한 게 현실입니다.

'나꼼수 코피 사건'처럼 여성은 정치적 응원을 위해 '자발적' 벗음을 요구받거나, <더러운 잠>처럼 정치적 응징을 위해 벗겨지는 일이 꾸준히 일어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 쉽게 달라지진 않겠지요. 가해자 한 사람 잘라낸다고 쉽게 이 '문화'가 달라지리라 믿지는 않아요. 다만 미투 운동을 계기로 이에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늘어날 겁니다.

피해자 보호와 치유에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성에게도 삶의 시간, 역사가 있어요. 통념적으로 여성이 공간화(자궁)된다면 남성성은 진보의 주체, 곧 시간입니다.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로 여겨져요. 그래서 사회가 여자 때문에 과거에 발목 잡힐까 봐 남성을 걱정해주고, 그의 미래를 걱정해줘요. 반면 피해 여성이 회복하는 시간에는 무심합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사건 이후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피해자들은 피해가 있었던 그 시간으로 계속 돌아갑니다. 피해자의 절규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사회에서 가해자는 제 삶을 살지만, 피해자는 과거의 기억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단역 배우 자매들의 어머니는 딸이 죽은 시간까지 기억해요. 그 날에 인생이 멈췄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 [인터뷰] 단역배우 자매 어머니 "국가는 없었다")

-당장은 법조-언론-여성단체의 역할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들은 미투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여성단체들은 지금도 과하게 일을 많이 하는 걸로 압니다. 저는 이런 사안에서 늘 여성단체의 역할을 기대하는 태도도 조금 의아합니다. 언론과 사법 영역이 여성단체의 비판과 요구를 끊임없이 무시해왔습니다. 셀 수 없이 비판이 거듭되어도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매우 느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가해자 입장에서 기술하고 가해자의 성별을 가려줍니다. 또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그야말로 입을 막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내 말을 믿지 않겠지, 말해봐야 나만 손해지, 증거가 없는데 무고로 고소당하면 어떡하지? 이렇게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경험이 쌓이면 말하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미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I believe you'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피해 호소인을 지지하는 움직임도 곧 일어났어요. 피해자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사회니까 이런 움직임이 이어졌요. 대부분 사회가 가해자의 시선과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을 기술하고 가해자의 마음에 감정이입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언론과 법이 (성별과 무관하게) 가해자 일반에 감정이입한다기보다,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성 가해자의 입장에 감정이입합니다. 남자를 때린 남자, 여자를 성폭행 한 여자에게는 다른 반응이 나타나잖아요. 성소수자의 경우, 성폭력 사실이 알려지면 더욱 빨리 사회에서 사라지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 이현주 씨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를 때리거나, 성폭행 하거나, 심지어 죽였을 때에는 악착같이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기분을 좋게 하거나 나쁘게 하는 감정의 매개이지, 감정의 주체가 될 수 없어요. 남성의 기분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우발적' 행동이라는 이유로 남성의 폭력을 법이 잘 이해해 줍니다. 남성은 여성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아마도 무의식중에) 생각하기 때문에 남성의 기분을 나쁘게 한 여성은 벌을 받을 만 하다고 여기는 거죠.

기존의 진보와 보수라는 틀을 벗어나야 합니다. 진보 세력은 그동안 성 정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서는 조금 넓은 의미의 '진보'를 말합니다. 여성의 말과 행동은 툭하면 지나친 것이 됩니다. 남자가 여자를 죽이면 죽일만한 이유를 여자에게서 찾지만 여자는 '한남'이라고만 말해도 지나치고 과격하다고 합니다.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더 '지나치게' 말해야 합니다.

-여성이 일상을 보내는 곳, 즉 집-학교-직장이 여성을 향한 폭력이 없는 곳으로 변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일까요? 아울러, 여전히 여성 혐오에 관한 이해가 없는 남성에게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입식으로 알릴만한 방법은 없을까도 궁금해요.

남성들이 여성혐오에 대해 이해가 없는 건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가 없으니까 모르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왜 남성은 평소에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자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인간관계, 특히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자처할까요.

여성과의 관계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전반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남성은 서열관계 속에서 복종하거나 다스리는 관계에 익숙합니다. 서열관계로 빚어진 인간관계가 너무 많아서 동등한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감정노동을 낯설어 합니다. 누구와의 관계에서든 인간은 이 감정노동에서 자유롭지 않은데도 말이죠.

일단 여성의 가시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TV토론을 보면 대부분 남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아무리 백인 중심 사회인 미국의 방송이라 하더라도 TV토론에서 백인 남성으로만 패널을 구성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형식적일지라도 젠더와 인종 문제를 고려하는 척이라도 합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주제로 남성으로만 구성된 TV토론이 방영되는 모습은 경악스러웠어요. 이렇게 여성을 지우는 게 우리의 일상입니다. 여성이 수동적인 피해자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사회입니다.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과 집단에 대해 사회가 행할 수 있는 정의는 그들의 발언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이전에, 일단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 봅니다. 발언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집단은 어떤 말을 했을 때 작은 실수나 잘못이라도 매우 크게 부풀려집니다. 이것은 정의롭지 않아요. 양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질적으로 더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댑니다. 미투 국면에서 폭로가 터져 나오는 와중에 모두 전적으로 옳은 말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러나, 저는 일단 말이 막혔던 이들이 말하도록 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선행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참정권 운동의 역사와 이유, 현재 한국에서 청소년이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해 삭발까지 하면서 투쟁하는 이유는 바로 의견을 낼 권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회에서 생각하는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를 외치는 거예요.

▲ 이제는 정부가 제도로 응답해야 할 때다. ⓒ프레시안(최형락)

남성은 왜 듣기를 거부하는가

-특히 남성의 왜곡된 성 관념을 교정하고, 여성이 약자임을 제대로 우리 사회가 이해하는 게 중요해 보이는데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요? 대부분의 여성이 이 문제를 남성에게 설명하기를 아예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들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폭력의 구실로 삼는데 매우 익숙합니다. 성폭력을 '내 안의 악마', 곧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본능이라는 자연법칙에 따라 발생한 일로 만들죠. 그래서 가련한 본능의 피해자가 되어요. 가해자들의 말에 이런 화법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대부분 남성인데, 이 남성들은 경제활동을 이유로 종종 구제받습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이유로 심지어 의붓딸이나 친딸을 성폭행해도 판사가 '이해'해 줘요. 반면 여성은 피해자가 되어도 남성의 사회생활과 해당 조직에 방해되지 않도록 일자리에서 물러나기를 권유받거나, 순수한 피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일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여깁니다. 왜 거기서 계속 일해? 일을 그만두지 않은 걸 보니 서로 좋아한 거 아니냐. 이렇게 진행이 돼요. 왜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문제는 이토록 쉽게 생각할까요.

믿어지지 않겠지만 여성도 일이 필요해요. 가해자를 퇴출시키는 문제도 신중하게 논해야 하는데, 피해자는 으레 '알아서 나가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태도이고, 알아서 나가지 않으면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여겨요. 한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의 72%가 직장을 떠난다고 합니다.

여성이 필연적으로 약자는 아닙니다. 여성을 약자로 만들고 있는 사회에 의구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성이 약자라기보다 노동하는 인간이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폭력이 야기하는 많은 문제 중 하나는 여성의 노동권을 침해하여 경제력을 박탈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여성이 설명하기를 포기했다고 보는 게 바로 문제입니다. 여성에게 설명하는 노동을 강요하는 것, 이것이 바로 특권입니다.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은 입장에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스스로 생각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거죠. 남성들은 왜 이렇게 듣기를 거부하는가. 왜 듣지 않으면서 여성에게 친절한 설명을 원하는가. 이 사회는 인간관계와 돌봄에 대한 남성의 무지를 과잉 이해합니다. 남성은 너무 이해받고 여성은 자기검열이 상대적으로 더 강해요. 효과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계속 싸울 수밖에 없어요.

성차별에 저항하는 행동이 '반사회적'으로 읽히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성차별주의자들을 교화하거나 계몽하는 게 운동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에게 갇혀 있던 경험이 더는 개인적이고 예외적인 경험이 아니라 이 사회의 보편적인 '문화'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지 않으려는 사람을 향해 설명하기보다는,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줘서 목소리를 더 키우는 게 낫습니다. 여자들의 심판자 노릇을 하는데 익숙한 이 남성연대 사회를 갑자기 바꾸지는 못해도, 적어도 불편함을 직시하는 사람들은 늘어나리라 봅니다. 겉모습에 불과할지라도 조금 조심하려는 남성들을 실제로 보고 있어요. 미미하지만 듣는 남성이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단역배우 자매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전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비평의 영역을 벗어나 정부가, 제도가 응답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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