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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승리는 민주당에게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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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원순의 승리는 민주당에게 축복이다"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4>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택은?
서울시장 선거가 코앞이다. 애초 '시민후보' 박원순이 월등히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시작한 선거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결국 결과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초박빙의 판세가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 전개에 대해 많은 분석과 설왕설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나로서는 민주당에 시선이 간다. 작년 6·2 경기도 지사 선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설마 그럴 리가 없겠지 하면서도, 이번에도 결국 자당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끝까지 마음을 열지 못해 투표장에 가는 일을 포기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번 선거 결과가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끝나든 아니든 민주당은 커다란 곤경에 처할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박 후보가 이기면 서울시장 선거에 자당의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으로서는 야권통합과 혁신에 대한 압박을 더 없이 크게 받을 것이다. 진다해도 민주당은 서울시 의회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데다 야권대통합의 대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제 1야당으로서 결코 그 주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어쩌면 이 경우 박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을 안 해서 진 것이라며 고소해 할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들의 바로 이런 속내가 이번 선거 결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나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진보적 미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민주당에 대해서도 미증유의 커다란 정치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참에 원론적인 차원에서나마 이번 선거에 무소속 시민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다는 사실이 민주당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새삼 한 번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싶다.

안타깝게도 지금 민주당은 독자적인 힘으로는 내년에 정권 교체를 달성해 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단지 인기 있는 대선후보를 갖지 못해서만이 아니라 국민들이 민주당을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원순 후보가 무소속 시민후보로서 야권의 단일후보가 되었다는 사실부터가 그것을 웅변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유주의'와 '호남 지역주의'라는 두 가지 한계가 가장 근본적이지 않을까 한다. 하나는 이념적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실질적인 정치적 기반과 관련된 것이다. 자유주의라는 이념적 정체성은 민주당이 노동계 등으로부터의 지지를 얻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 할 수 있고, 지역주의는 특히 영남 지역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확장성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규정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 근본적 한계들을 극복하고 독자적으로 다시 집권당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라는 이념적 정체성은 물론 자기들만을 '리얼 진보'라고 여기는 쪽에서 주로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고, 또 그래서 그 자체로는 반드시 문제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일부에서처럼 '보수-자유-진보'의 정립 체제라는 인식틀 안에 위치지우는 것이 반드시 올바르다고 보지도 않는다.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볼 때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위상을 그와 같은 틀 속에서 기껏해야 '중도 우파' 정도라고 보는 통상적인 시각은 근본적으로 서구적인 분배 정의 패러다임의 산물로서 우리 근대성과 정치 지형이 가진 고유한 맥락을 놓치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당은 독재 세력과 수구 기득권 세력에 맞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치를 들고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민주주의적 정의'를 추구하고 실현하려 했던 정치 세력의 중심이었다고 해야 한다. 민주당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무슨 '부르주아 정당'도 '한갓된 자유주의 정당'도 아니며, 그와 같은 토대적-민주주의적 정의를 갈구하는 우리 사회 모든 시민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진보적일 수 있는 그런 정당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당 스스로가 이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낡고 잘못된 정치적 지평 안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핵심만 지적해 두자. 지금 전세계적으로 '99%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시장근본주의나 신자유주의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올바르게 이해된 민주당의 정치적 위상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당은 그 모순을 충분히 심각하게 여기지 못한 채 오히려 때로는 그런 모순을 스스로 앞장 서 심화시키기까지 했다. 비록 최근 들어 '보편적 복지'를 당 강령에까지 삽입함으로써 얼마간의 자기 교정에 나서기는 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그 진정성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는 않다.

▲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선 손학규 민주당 대표.ⓒ연합뉴스

그런데 민주당의 이런 어정쩡한 정치적 정체성은 호남 지역주의라는 민주당의 실질적인 정치적 지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은 커다란 기득권을 지닌 '보수 정당'이 아닐 수 없다. 최악의 정치적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편하게 기댈 곳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호남 지역주의를 철저하게 기득권 옹호적이고 반민주적인 영남 지역주의와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집권 후에도 그 호남 지역주의가 여전히 그 자체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그 역사적 사명이 끝난 것이다. 국민참여당의 이른바 친노 세력이 한 때 자신들이 몸담았던 민주당을 외면한 채 오히려 그 동안 자신들을 그토록 공격해댔던 민주노동당과 합당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만 보더라도 그 지역주의가 이제는 범민주 진영 전체의 질곡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민주당에게는 지금 아주 철저한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민주당에게 정치적 미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아주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민주당 후보 대신 박원순을 야권단일후보로 택한 서울 시민들의 깊은 갈망 속에 표현되어 있다. 그는 단순히 인기 있는 비민주당 무당파 후보가 아니다. '시민' 후보 박원순은 말하자면 서울광장에 불타올랐던 촛불과 영도로 가는 희망버스에 담긴 이 땅의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야만과 혼돈을 끝장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민주당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정치적 가치들과 지향을 대변한다. 바로 이 정부 들어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실종되어 버린 '공동선'과 야비한 신자유주의가 처절하게 짓밟아 버린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시민적 연대'의 가치, 그리고 이 땅 곳곳에 여전히 넘쳐나는 부당하고 자의적인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모든 시민의 사람다운 삶을 지켜 줄 참된 '정의'에 대한 지향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시민후보 박원순의 승리는 결코 민주당의 패배나 주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참된 축복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민주당이 가야할 길, 민주당 혁신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고통스럽고 지금 그대로의 정체성과 기득권을 지켜낼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민주당의 참된 역사적 가치를 살리고 오랫동안 고통과 차별과 무시에 신음하며 이 땅에 민주주의의 초석을 일궈냈던 호남 민초들의 그 숭고한 열망을 제대로 승화시켜 줄 그 길을 민주당에게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마지막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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