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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군사 행동 보류, 여기 문재인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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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군사 행동 보류, 여기 문재인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위기의 남북관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북 전단 살포 '사건'이 남북관계의 위기 '사태'로 발전했다. 23일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 계획의 보류를 결정함으로써 파국을 면한 듯하지만 사태가 해결되었다고 속단할 수 없으며 사태의 근본 원인이 사라졌다고도 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현재까지의 상황 변화를 반추하면서 남북관계 전반을 깊이 성찰하고 미래의 방향을 재설정할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달 말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북한에 날려 보낸 전단에 대하여 4일 김여정 부부장이 <로동신문>에 발표한 담화는 거친 표현과 함께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남한 당국이 "응분의 조치를 따라 세우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개성공업지구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군사합의 파기 등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여정 담화 이후의 상황 악화

한국 정부가 즉각적으로 전단 살포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특별법 제정과 기존 법률의 적용을 통한 재발 방지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북한은 8일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발표하고 다음날 남북한 간의 모든 통신선을 차단했다. 6·15선언 20주년을 맞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대화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협력의 속도전을 시사하면서 북한에 긴장고조 행위의 자제를 당부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모욕과 조롱에 가까웠다. 그리고 다음날인 16일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어서 17일 북한군은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 부대 전개, 접경지역 경계 강화와 훈련 재개, 삐라(전단) 살포 투쟁 보장 등 대남 군사행동을 실행하기 위하여 당중앙위에 비준을 제기할 계획임을 밝혔다.
▲ 17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16일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로동신문
한편 20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은 6·25를 전후하여 대북 전단 살포를 강행하겠다고 공언했으며 22일 밤에 기습적으로 소량의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21일 북한의 당 통일전선부도 "다 깨진 남북관계"에서 대남 삐라살포를 강행하겠다는 계획을 <로동신문>에 게재했다. 판문점선언 직후 철거했던 대남 심리전 확성기도 다시 설치했다. 3주일 만에 남북관계가 3년 전으로 후퇴한 듯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23일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금강산과 개성공업지구 군대 전개, 비무장지대 초소 진출, 접경지역 군사훈련, 대남 전단 살포 지원 등 6.16. 북한군 총참모부 예고)의 보류를 결정했고 대남 확성기도 다시 철거하는 움직임이 관측되었다. 그러나 크게 보았을 때 남북관계가 사실상의 파탄 지경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상황 악화의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위기가 고조되어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일 것이다. 전면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남과 북 공히 가혹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번영이라는 기회의 창은 두 번의 전례 없이 파격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활짝 열렸다가 허망하게 닫힌 만큼 그 부정적 학습효과로 다시 열리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불행한 것은 남북관계의 정체나 파국이 모든 이에게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반도 냉전체제가 주변국들의 전략적 이익에 복무해 왔고 국내 극우수구 세력들이 대대로 정치경제적 이권을 유지하는 토대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역지사지와 지피지기에 입각한 진단

북한이 왜 저럴까. 마치 몰랐다는 듯이 시치미 떼고 물을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많이 알려진 대북 전단의 내용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체제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과 비방이 넘친다. 북한의 분노가 얼마나 클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낯선 북한의 "최고존엄"은 김정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이고 체제이고 인민과 한 몸을 이루는 존재이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김여정을 비롯한 고위급 참모들이 극렬한 반응을 보이고 전 인민이 궐기대회를 갖는 것도 단지 김 위원장과 당에 충성심을 보여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사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고는 사태 해결의 출발선조차 밟을 수 없다. 이번 위기는 대북 전단 살포에 의하여 격발되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이 누적되어 폭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고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며 미국에게는 배신감을, 남한에게는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절치부심의 결과는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정면돌파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을 보니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실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 같다. 타미플루 감기약조차도 제 때에 인도하지 못한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심했을 것이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 수없이 명시된 "민족"과 "자주"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심을 보이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2년간 남한 정부가 한 일은 한미 워킹그룹에서 '한미공조'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지시를 받고 트럼프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연합훈련 계속하고 F-35기 등 첨단 공격무기 도입한 것뿐인 것 같다. 이런 인식이 북한이 남한에 대하여 발표한 말과 글에서 도출될 수 있다. 사실 남북관계는 이미 파탄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관계의 위기는 자신의 국익에 더 유리하다. 한반도에 적당한 수준의 군사적 긴장이 유지되어야 주한미군의 존재 가치가 커진다. 주한미군은 이제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전력 중의 하나로 역할이 커졌다. 남북관계가 악화할수록 한국의 대미 의존성은 높아질 것이다. 사드를 비롯한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할 수 있고 연합훈련을 구실로 미군의 훈련을 마음껏 실시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고가의 무기를 계속 판매할 수 있고 방위비 분담 협상에도 유리하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을 확실히 미국에 묶어둠으로써 한·미·일 연합으로 대중국 포위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이익 계산에 따르면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나 북미관계의 개선, 평화번영에 대한 지지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제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도록 한다. 미국에게 이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쉽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북한을 적절히 자극하면 잘도 화내며 돌아서니 북한 탓할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남한 내에서 미국을 거의 자신의 조국처럼 생각하는 외교관, 관료, 학자, 언론, 수구우익 세력, 대중의 안보 불안감과 레드 콤플렉스는 수십 년간 깊이 뿌리 내린 더없이 미더운 우군이 아닌가. 그러나 이에 대하여 실망하거나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 그래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맹국이라도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한미관계를 국익에 맞게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남북관계 악화와 한반도 긴장 고조는 낭보 중의 낭보일 것이다. 미국을 고리로 하여 한·미·일 3각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을 맨 밑자리 파트너로 끌고 갈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주적은 중국이었지만 한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계속 무시하기만 할 상대가 더 이상 아닌 관계가 되었다. 징용공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한 이유는 더 늦기 전에 한국의 추월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한 몫 한 것이다. 남북이 손잡고 평화뿐 아니라 번영까지 치고 나가는 것은 일본에게 악몽과 같은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은 이미 뱉은 말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관계의 위기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파국을 향하여 가속화할 수 있다.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경우에 따라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은 이를 십분 활용하여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국내의 극우적 수구세력은 냉전체제의 복원을 바라고 있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은 평화번영 정책의 폐기를 줄기차게 주장할 것이다. 이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정공법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한국형 새로운 길이요 정면돌파전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해서도 일본에 대해서도 심지어 국내의 극우수구 세력에 대해서도 결코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일단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너무 탓하지 말자. 문제도 해답도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은가.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참으로 진부한 표현이지만 모든 진부한 말은 인간의 오랜 지혜와 세상사의 진실을 담고 있다. 문제는 그 뜻을 내면화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이다. 앞으로 한국은 철저한 합리성과 자주성에 기반하여 위기관리를 하면서 우리 스스로 당연히 할 바인 안보와 평화의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반드시 북한의 협조를 유도하기 위한 것도, 미국에 반대하는 것도, 국내 정치적 이득을 챙기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하여 몇 가지 정책을 제안하면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1) 당분간 북한에게 아무 감동을 주지 못하는 대화 제의나 합의 준수 요구, 협력사업 제안 등을 중지하고 위기관리 모드에서 남북관계의 회복을 위한 여건 조성에 힘써야 한다. '엄청난 인내'와 '긴 호흡'이 필요한 상황임을 인식하고(<조선일보> 2014. 10. 16 사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적극적인 대북, 대미, 대내적 조치들을 차분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2) 위기관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남북한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군사적 대응은 선제적인 긴장고조 행동을 자제하고 군사합의서를 성실히 준수하면서 정보활동과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필요하면 최소한으로 대응하면서 위기의 상승을 막아야 한다. 예컨대 북한이 한다고 해서 대북 전단 살포를 한다거나 북한 따라서 확성기를 다시 설치·운용하거나 폐쇄한 GP(감시초소)를 복원하는 행위는 아무런 실익 없이 긴장만 고조시킬 위험성이 있다. (3) 북한의 '대남 무력 공격'은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되며 단호히 즉각적으로 대응하되 비례성과 확전방지 및 조속한 원상복구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4) 대북 전단 살포 등 남북한 간의 평화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조속히 제정하여 시행해야 한다. 현재는 경찰관공무집행법, 남북교류협력법 등을 적용하여 임시방편으로 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하고 있지만 전단 뿐 아니라 다른 매체들에 대해서도 풍선이나 다른 수단을 사용하여 북한에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법제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 23일 강원도 홍천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살포한 대북전단을 담은 풍선이 발견됐다. 풍선에는 김정은, 김일성, 김여정 등의 사진과 이들에 대한 비판 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5) 7·4공동성명(1972), 기본합의서(1992), 6·15공동선언(2000), 10·4선언(2007), 4·27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2018) 등 남북한의 정상급 합의서들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에 즉각 착수하고 조속히 의결해야 한다. 앞의 두 가지 문서가 매우 중요하다. 역사성과 내용 면에서 이후 4개의 정상회담 합의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이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6개 문서의 비준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보수는 곧 반평화 세력이라는 부끄러운 이미지를 안고 갈 것인가? (6) 적절한 시기에,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어떤 방식으로든 남북 정상 간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를 활용하는 것이다. 김위원장의 군사행동 보류 결정에 화답하여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먼저 진심어린 친서를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친서에는 반드시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하여 북측이 느꼈을 분노에 대한 이해와 유감 표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남측이 더 잘 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 노력을 진행하고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 앞으로 함께 잘 해보자는 식상한 권유보다 훨씬 더 많이 포함되어야 한다. (7) 한국정부는 남북관계의 발전이 비핵화보다 앞서 가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를 견인할 수 있다는 견해와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이는 남북관계가 악화하면 그러한 프로세스가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미 국무부는 지금까지 한사코 남북관계가 앞서 나가는 것을 경계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으나 정작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자 "남북관계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발표했다.(6.16 국무부 대변인) 그들의 이중성을 비난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이것을 우리 스스로 공식화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기회가 되면 대북 인도적 협력사업부터 경제·사회·문화 부문 협력까지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도 대북 제재만 탓하고 있지 말고 일정 수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손해'를 감수할 용기내야 한다. (8) 한미 워킹그룹의 역할에 남북관계의 발전을 적극 지원한 할 것을 포함시켜야 한다. 한미 워킹그룹의 출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실질적인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협의 내용의 대부분이 비밀로 묶여있기 때문에 평가는 결국 드러난 성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사실상 성과라 할 만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이 미국에게 사사건건 보고하고 승인받는 기구이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남북관계 발전의 걸림돌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남과 북에 공히 많다. 한국이 전적으로 주도하기는 불가능할지언정 사안에 따라 주도적 역할 즉, 우리의 정책을 '통보'하고 미국의 협력을 '요구'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9) 비핵화와 대북제재의 해제에 관하여 북한과 미국에게 유연성과 적극성을 발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미국의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 방침은 비핵화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 이상의 비핵화 정의 즉, 비핵화의 최종상태에 대하여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것 역시 비합리적이다. 답은 자명하다. 비핵화의 정의를 내린 후 그 이행과 제재 완화를 단계적·동시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한국이 중재자인지 촉진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당사자이고 9월 평양공동선언(제5조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의 실천 주체이다. (10)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일정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최종적으로 한반도 내에서의 모든 훈련을 중단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싱가포르에서 한 약속은 축소가 아닌 '중단'이었다. 왜 다른 것은 미국의 말을 잘 따르는데 이것은 무시하는가. 합당해 보이는 이유가 없지는 않다. 한국군의 작통권 환수를 위한 준비 차원의 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통권 환수 준비는 두 차례 연기되는 과정에서 사실상 다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앞으로 실기동 없이 지휘소훈련(CPX) 만으로도 충분하다. 연합훈련이 필요하면 좀 더 영역을 넓혀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실시할 수도 있다. 연합 군사훈련을 없애는 대신 한국군의 훈련은 강화해야 한다. 대부대나 전면전 대비 훈련은 CPX로 하되 대대급 정도에서는 실질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11)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을 중단하고 단계적 감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변화에 대한 것은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고 두려워했다. 거의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정답만 외웠다. "한미동맹 강화" "주한미군 불변."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 아니, 오래 되었다. 주한미군을 전반적으로 감축하거나 지상군을 철수시키거나 역할을 변경하거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우리의 국력과 군사력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은 이미 전략적 차원으로 격상되어 있다. 최근 우려되고 있는 주한미군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 가능성이나 사드(THAAD) 업그레이드 활동 등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증폭시키고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끼여 사활적 국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2)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조속히 완결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이다. 군사적으로는 한국의 국방비가 북한의 전체 GDP보다 크고 한국군이 세계 6위의 화력(북한 25위, 출처 : 글로벌 파이어)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마당에 아직도 작통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국민도 군대도 부끄러워할 일이다. 따라서 정치가 할 일은 국민에게 사실을 알리고 안보불안을 해소하고 강력히 추진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두 번의 국군의 날을 더 맞을 것이다. 올해엔 어렵더라도 2021년 10월 1일은 특별한 국군의 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3)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위협이 있을 것이다. 겁먹지 말고 그런 협박에 쿨(cool)하고 나이스(nice)하게 응대해야 한다. "그럼 방위비 분담금은 일단 동결하고 감축과 철수에 대하여 협상을 시작하자"고 웃으면서 제안해 보라. 위 작통권 환수 문제 관련 정치가 할 일을 이 문제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야 한다. (14) 국방비를 적정 수준으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 최근의 코로나 19 사태로 어려워진 경제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50조 원 이상이 되는 국방비가 과연 우리의 국력에 적절한지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한다. 일본의 2020년 방위비는 58조 원 규모이지만 GDP 대비 1%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인구 대비 국방비는 우리의 절반 정도인 셈이다. 능력에 비해 과도한 국방비 지출은 국가의 전체적 자원 배분을 왜곡하여 국력이 약화하고 국방을 오히려 위태롭게 하는 '국방 딜레마'를 초래할 수 있다. 내년부터 당장 감축하는 것이 어려우면 현 8% 수준의 증가율을 우선 2% 대 정도로 낮추고 이후에 0% 대를 유지하면서 국방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국민은 돈 때문이 아니라 우리 국방부와 군대의 정신을 보고 한층 더 큰 신뢰와 존경을 보낼 것이다. (15) 고가의 첨단 공격 무기와 탄약의 해외 도입을 재검토하여 국방 딜레마뿐 아니라 '안보 딜레마'에도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보 딜레마란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면 상대국도 따라 하게 되어 결국 자신의 안보가 더 위태로워지는 현상이다. 한마디로 군비경쟁이다. F-35A 전투기 도입의 경우 북한이 극렬히 비난하지만 이미 계획된 것이라 취소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일정 수준의 대응 전력을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추가적인 첨단 전투기 도입이나 고가의 미사일과 각종 탄약의 해외 도입은 가능하면 중지하고 철저히 국내 연구개발을 위주로 한 무기 획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16) 일본에 대하여는 수출규제 조치의 철폐를 시한을 정하여 요구하고 그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하게 보류해 놓은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를 폐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과 사전에 협의하거나 조율하지 말고 '통보'만 해야 한다. 한국은 단 한 번이라도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본에게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17) 중국은 단지 무역관계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번영의 든든한 지지 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단은 이미 계획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코로나-19 '종식' 후 최단시일 내에 실행하도록 하고 이를 계기로 한중관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사드배치 문제로 인한 중국의 대한국 규제 조치들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드에 관한 우리 정부의 3불(不) 약속(추가 배치하지 않음,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음, 한미일 군사동맹 결성 않음)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면 사드도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는 점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18) 한러관계도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계기로 더 높은 단계로 격상해야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서 다른 주변국에 비해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남북한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강대국이다. 거의 모든 면에서 무궁한 잠재력을 가진 러시아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번영의 더 적극적인 파트너로 만들 수 있는 국가가 한국 밖에 더 있겠는가. (19) 외교의 다변화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 세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신남방 정책'의 주된 협력 대상국인 동남아 국가들과 인도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인식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의 북한 인식은 관심의 우선순위가 매우 낮을 뿐 아니라 오래된 고정관념 속에서 사실상 미국이 그려준 그림을 그대로 받아 보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주의와 인권 측면에서 당연한 평가이지만 북한을 절대악으로만 생각하면 평화에 대한 접근 방식은 극히 제한된다. 한반도의 특수성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이해를 증진시켜 평화에 대한 진지한 지지자가 되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다. 밖에 나가 북한 비방하는 버릇은 우리 외교에서 오래된 전통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을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의 사정과 입장을 알리고, 예컨대,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단계적 이행과 같은 합리적 방안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위의 제안들은 현실적 수용 가능성이 제한될 수 있다. 다른 중요한 사안도 많고 세부적 사항까지 고려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한꺼번에 단시일에 실천할 수도 없다. 정부뿐 아니라 공동체의 안위와 행복을 걱정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 결정이 현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급반전시킬 수 있는지 아직은 예단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이번 남북관계 위기를 계기로 외교안보통일 관련 전반에 대한 성찰과 혁신, 그리고 실천의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면 코로나-19 위기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K-방역이 나왔듯이 'K-평화'로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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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렬
문장렬 교수는 198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91년 미국 퍼듀(Purdue)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비확산정책 담당, 청와대 NSC 사무처 전략기획 담당 등을 역임했으며 1999년부터 20년 동안 국방대학교 군사전력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북한 핵미사일 : 위협과 대응>(공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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