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집단해고, LG는 관련 없다?
LG그룹 측은 그룹 본사가 입주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에 대해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 밝힐 입장이 없다"는 입장이다. LG그룹이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있지 않은 것은 맞다. 하지만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해고를 단행한 주체는 모두 LG그룹의 영향력 아래 있다. LG트윈타워 건물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스앤아이)은 LG그룹 지주회사 (주)LG의 100% 출자 자회사다. 에스앤아이와 지난달 31일까지 청소용역 계약을 맺었던 지수아이앤씨(지수)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 구훤미 씨가 50%씩 지분을 나눠 소유한 LG그룹의 '친족 회사'다. 청소노동자 집단해고는 10년간 LG트윈타워 청소용역 계약을 맺어왔던 에스앤아이와 지수의 계약이 지난달 31일부로 종료되며 일어났다. 에스앤아이는 이에 대해 '고객사의 불만족'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때 고객사는 LG트윈타워에 입주한 LG그룹 본사와 계열사를 뜻한다. 요컨대, 이번 집단해고는 LG그룹이 불만을 제기하고 LG그룹 자회사인 에스앤아이가 이를 받아들여 LG그룹 '친족 회사'인 지수와의 계약을 종료하며 일어난 일이다. LG그룹이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할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집단해고의 이유, 청소 품질 때문?
집단해고와 관련해 언론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는 회사는 에스앤아이다. 앞서 짚었듯 에스앤아이는 '고객사의 불만족'을 계약 종료 이유로 들며 "이번 집단해고가 노조 결성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초부터 LG트윈타워에 입주한 LG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되어왔다는 것이다. 에스앤아이의 해명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지수는 지난 10여 년 간 LG트윈타워의 청소용역 업무를 별문제 없이 수행해왔다. 청소 방식이나 노동자의 인적 구성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번에 해고된 청소노동자 중에는 여러 차례 우수사원 표창을 받은 이도 포함돼 있다. 바뀐 점이 있다면, 2019년 10월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것이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2019년 10월 노동조합을 결정한 뒤 노동조건을 두고 지수와 협상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근무시간 꺾기, 관리자 갑질과 같은 일이 멈췄다.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장은 "일하다 다치면 마음 놓고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박 분회장은 "용역업체와의 계약만료를 통한 해고는 지난해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이를 없애려고 벌인 일"이라며 "그간 참아온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그게 보기 싫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에스앤아이가 불만이 제기되었다고 이야기한 시기가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이기도 하다.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다른 한편, 에스앤아이는 "노조가 지수와의 교섭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주장한다. 에스앤아이가 대표적으로 문제 삼는 요구사항은 '정년 70세'다. 이에 대해 박 분회장은 "노조가 생기기 전 회사 관리자는 건강하기만 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고 했다"고 증언한다. '정년 70세'는 그간 회사가 말로 해온 내용을 명문화하는 것에 불과한 요구였다는 뜻이다. 2018년 통계청 발표를 기준으로 한국사회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중위소득의 50%인 97만 1000원 이하를 벌어 생활하는 상대적 빈곤 인구가 44%에 이른다는 점에 비춰보면, 65세 이상 노인 일자리는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액도 지수나 에스앤아이, LG그룹의 경영에 부담을 준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 명은 최저임금을 받아왔다. 지난 8월 교섭에서 노조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시급은 9400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LG가 부담해야 할 돈은 2억 원 정도다. LG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분기에만 9590억 원이었다. 지수의 지분을 소유한 구미정, 구훤미 씨가 2019년 주식 배당으로 받은 돈이 60억 원이었다. 게다가 노조 관계자는 "정년 및 임금 요구, 쟁점이 되던 단협 조항 등과 관련해 양보할 의사가 있었다"며 "집단해고를 앞둔 11월 교섭에서 회사에도 이를 전달했다"고 밝혔다.용역업체와의 계약이 끝났으니 노동자 해고해도 괜찮다?
끝으로, 에스앤아이는 이번 집단해고에 대해 '지수와 계약종료를 합의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용역회사와 계약을 종료했으니 이전에 일하던 청소노동자를 모두 내보내도 괜찮다는 함의를 지닌 주장이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노사 분쟁이 있었다. 2011년 1월 홍익대학교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뒤 이들 전원을 해고했다. 이때도 용역업체와의 계약해지가 이유였다. 이에 홍익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은 49일간 본관 점거 농성을 벌였고 결국 복직했다. 홍익대학교 사태의 여파로 2012년 이명박 정부가 '용역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내기도 했다. 매년 개정되고 있는 이 지침에는 '용역계약 체결 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 승계' 내용이 담겨있다. 이후 공공기관 대부분은 해당 지침을 준수하고 있다. 민간 영역에서도 노조와의 협상 등을 통해 업체 변경 시 용역노동자의 고용승계를 명문화하는 사례가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를 공약했다. 한국사회에는 '용역업체 계약 해지를 이유로 노동자를 집단해고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이미 있었던 셈이다. 그 합의가 대기업 LG를 상대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이번 농성의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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