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피해와 회복 가능성은 모든 국가, 지역, 사람에게 같지 않다. 한국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으니, 팬데믹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불평등의 시대'를 열어젖힐 전망이다.
"근로소득보다 재산소득 증가가 가팔라지면서 소득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평균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2천만원을 50년간 모아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저소득층은 지갑을 닫았다."(☞ 관련 기사 : <매닝노동뉴스> 7월 13일 자 '')
엄청난 젠더 불평등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팬데믹 이후 남성 취업자 수는 최대 2.4% 줄어든 수준이었으나, 여성 취업자 수는 최대 5.4%까지 감소했다. 여성 취업 감소 중 기혼 여성의 기여율이 95.4% 수준이라는 불평등의 '구조' 분석이 나온 지도 석 달이 넘었다.(☞ 바로 보기 : 한국은행 5월 6일 자 '')
우리는 불평등을 사회적 의제로 삼고 이에 대응하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서리풀 논평] 2014년 7월 21일 자 '폭주하는 의료 영리화, 피케티라면?', 2017년 3월 20일 자 '대선에서 '불평등' 이슈가 사라진 이유', 2018년 5월 28일 자 '야만적 수준으로 진입하는 소득 불평등') 스스로 평가하건대, 코로나19 유행으로 불평등이 정치화할 필요성이 더 커졌는데도 사회적 관심과 논의는 지지부진이다. 특히, 사회적 불평등을 우선 해결 과제로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가 전혀 살아나지 못하는 상황은 예상 밖이다.
정치가 현실에 '해방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그들만의 리그에 머문 것이 하루 이틀 묵은 일은 아니지만, 불평등에 대응하는 정치의 무력함은 정도를 넘는다. 젠더, 지역, 비정규, 장애, 돌봄(책임과 필요), 섹슈얼리티, 국적 등에 따른 차별과 격차(불평등)가 매일 드러나지만, 정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가장 정치적인 것, 지금 대선 주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하나로 이런 말을 하는 근거는 충분하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불평등과 팬데믹 대응이 맞물려 자칫 정치공동체가 파국으로 치닫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책 당국과 책임자들이 코로나 시대의 불평등과 위기, 전망을 모를 리 없음에도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국가들보다 실업률이 낮고 국내총생산 감소도 적어 재정 여력이 높다는데, 서민 경제 활성화와 재난지원금으로 사용한 비용이 G20 국가 중 가장 적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나? 한 마디로 정치적 과제로서 불평등의 '탈정치화'로, 이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행보와 전혀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낙수 효과(trickle down economics)'가 허구임을 지적하며 대규모 투자와 재정확장 정책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참고하자. 국민 1인당 1400달러 수준의 현금 지원을 포함하는 코로나19 대응 정책, 2조 3000억 달러 규모의 고용 확대 계획, 그리고 1조 8000억 달러 규모의 가족 계획까지, 총 6조 달러 규모의 사회재건계획(Build Back Better)은 말 그대로 역대급 투자 정책이다.(☞ 바로 가기 : ) 재정 확대를 위한 연방소득세와 법인세, 자본이득세율 인상까지 보태면 대응 정책이 아니라 구조 '개혁'이라 할만하다.
솔직히 말해, 한국에서는 미국이 내세운 구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나 이를 위한 '틀 바꾸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재난 시기에 소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기본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아서? 아니면 각 기업이 알아서 유급병가제도를 만들고 고용 안정에 애쓸 것이므로? 우리는 대책과 정책 이전에 넓은 의미의 정치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등에 대처하는 구조와 국정 철학 그리하여 '정치적 의제'는 없고, '일자리 늘리기' '세금 감면' '주택 공급' '공기업 유치' 등 중립을 가장한 언어만 유행하는 현실이 아닌가. 정치적 의지의 문제든 정치적 역량 문제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우리는 지금 불평등을 선택하는, 아니 불평등을 부추기는 정치와 그 결과를 살아내고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가 경제와 사회 불평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운, 능력, 취향과 지향에 무관하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정치공동체(polity)에 대한 열망은 이를 대변하는 세력과 정치를 통해 드러나고 강해진다. 많은 이가 겪는 괴로움과 불안의 원인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분석하고 의미화하는 활동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것이든, 우리의 사회적 실천이 불평등을 직면하는 정치와 적극적으로 만나야 하는 시기에 정치의 무책임과 불능이 우려스럽다. 대선을 앞두고 지금부터라도 불평등을 방치하거나 선택했던, 아니 강화하고 부추겼던 정치를 밀어내고, 불평등과 그에 대한 대응을 의제로 세우는 정치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실천과 참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팬데믹이 초래한 더 큰 건강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삼는 ""이나 여성의 위치에서 정의로운 회복을 요구하는 ''처럼 교차하는 불평등과 다양성을 고려하는 계획까지는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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