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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정신건강까지 '돌보는' 디지털 정신통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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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는 지금 정신건강까지 '돌보는' 디지털 정신통치 시대에 살고 있다 [서리풀 연구通]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 차원의 대응으로 떠넘긴 채 국가 책임은 경감?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 블루(우울)'와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블랙(절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이러한 정신건강의 '위기' 국면에 대응하고자 정부는 여러 '심리방역' 정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대면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어려운 팬데믹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온라인 심리지원 서비스가 주요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그 일환으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운영하고 있는 모바일 앱인 '마성의 토닥토닥(마음성장 프로그램)' 이용이 권장되고 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정신건강의 '위기'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코로나19는 이미 진행 중이던 '위기'를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불확실'과 '불안전', '불안정'의 시대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불안과 우울, 울분과 무력감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스스로 마음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시장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여러 정신건강관리 앱들이 출시되어 상용화되고 있었다. 분명 이러한 앱들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심리치료를 통한 위로뿐만 아니라 개인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며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역량을 키우게끔 돕는다. 디지털 기술의 '선용' 사례로 볼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유용성의 이면에는 개인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과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 생활습관을 비롯하여 매일의 심리상태와 음주, 흡연, 운동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 일상이 샅샅이 파악(감시)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찝찝함과 불쾌감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혹자는 이러한 우려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생각이라며 반박한다. 지금은 어차피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빅데이터로 수집되고 있는 '포스트-프라이버시' 시대라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해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전용되는 것을 막아야겠지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해 얻는 이득이 그에 따른 손실보다 크다고 한다면 기꺼이 그 위험을 수용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태도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정신건강관리 앱을 이용함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받기 원한다면 그만큼 내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개인정보 통제권이 안전하게 확보될 수 있을지, 또 존엄성의 근간이 되는 프라이버시가 그렇게 쉽게 포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정신건강관리 앱이 가진 또 다른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러한 앱이 이용자들에게 정신건강에 관한 특정한 이해를 형성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건강'이라고 하는 개념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사회문화적 규범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건강' 역시 우리를 둘러싼 외부 요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역동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성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신건강관리 앱이 결코 순수하게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앱들에는 어떤 정신상태와 사고, 행동, 습관들이 바람직하고 정상적인지에 대한 이념적 가치판단이 전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건강이 무엇을 의미하며 이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예방하고 개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특정한 관점이 부지불식간에 스며들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정신건강관리 앱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습관을 특정한 방식으로 형성시키는 '정신통치(psychological governance)'의 매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인구집단의 정신상태를 통제하려는 '정신관리권력'(박승일, 2021)의 한 개입방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과 정신건강관리에 대한 요구가 급증함에 따라 모바일 앱을 통한 정신적 개입의 문제를 고려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이러한 정신통치의 '모바일화' 현상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되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가기 : ) 이 논문은 뉴질랜드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상용화되었던 모바일 앱인 '멘테미아(Mentemia)'가 정신적 웰빙을 어떻게 프레이밍하고 다루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2020년 4월, 코로나19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 모든 국민이 멘테미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원래 민간 기업에 의해 개발되었던 이 앱은 이로써 정부의 공식인증을 받은 정신건강정책의 일부가 되었다. 연구진은 멘테미아를 디지털 기술이 정신적 웰빙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탐색하는 데 유용한 사례로 판단하고, 앱에 포함된 자료와 누리집 게시글, 언론 기사 등을 수집하여 '주제 분석'을 수행하였다. 분석 결과, 멘테미아 속에서 정신적 웰빙의 추구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활동으로 묘사된다. 또 스트레스와 불안, 슬픔의 감정은 '정상'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정신건강 문제를 탈낙인화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매일의 생각과 기분, 정서를 정신요법의 개입영역으로 확립함으로써 정신적 웰빙을 하나의 보편적 관심사로 프레이밍한다. 또한, 멘테미아는 정신적 웰빙을 '능동적'이고 '일상적'인 관심사로 구조화하였다. 이 앱은 매일 멘테미아를 이용하는 것이 더 행복하고 생산적인 자아가 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의미한다는 점과, 이를 통해 미래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멘테미아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도구로서 포지셔닝하며, 정신적 웰빙의 긍정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용자들의 지속적 노력을 요청한다. 이어서 연구진은 멘테미아가 정신적 웰빙을 다루는 접근 방식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로 멘테미아는 개인 '맞춤형' 접근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멘테미아는 이용자의 선호도와 개선하고 싶은 문제점 등을 파악한 다음 이에 맞춰 다양한 조언들을 제시한다. 매일 이용자에게 추천되는 읽을거리와 기분일기, 교육프로그램(예: 호흡법) 등은 개인 맞춤형 앱 페이지에 '할 일 목록'으로 제시된다. 이용자는 항상 앱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의 제한된 조건 속에서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멘테미아는 심리적 변화를 '맞춤화'하고 '너 자신의 웰빙을 통제하라'고 주문함으로써 이용자가 스스로를 자신의 웰빙을 향상시키는 주체적 전문가로 인식하게끔 구성한다. 두 번째로 멘테미아는 이용자가 자신의 정신적 웰빙과 관련된 상태를 직접 정량화된 지표로 수집하고 '모니터링'하도록 권장한다. 이렇게 측정된 정보는 시각화되어 이용자로 하여금 정신적 개선이 필요한 영역을 확인하고 인지행동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끔 이끈다. 마지막으로 멘테미아는 '알림' 서비스를 활용하여 이용자에게 매일의 목표와 정신적 개선의 잠재적 이점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알림은 참여의 습관화를 장려하기 위해 마치 사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표현 방식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앱 이용을 규칙적이고 습관적인 활동으로 만들면서 이용자와 앱 사이의 친밀성과 근접성을 높인다. 또한, 개인의 행동가능성에 주목함으로써 정신적 웰빙의 위기를 항상 '해결가능한 것'으로 규정한다. 즉, 정신적 웰빙을 '돌보고', '학습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프레이밍함으로써 디지털 기술을 통한 정신적 개입을 필수적인 해결책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든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연구진은 멘테미아가 이용자 개개인을 자신의 정신적 웰빙을 책임지는 주체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개인화' 담론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멘테미아는 이용자를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로 인정하며 권한을 부여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회복탄력성 부족에서만 찾으려 하는 편향성을 드러내며, 문제의 책임을 오롯이 개별 당사자에게 전가시킨다. 그 결과 경제적 곤경이나 사회적 소외, 불충분한 복지서비스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집중하기 어렵게 된다. 즉, 단지 개인 차원의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함으로써 정신건강의 위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경감시키면서 정신통치의 '탈집중화'를 이끈다는 것이 이 연구의 주요결론이다. 비록 국외 사례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지만 국내에서 사용 중인 정신건강관리 앱들도 이와 비슷한 특성과 문제를 가질 것으로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더욱이 모바일 앱뿐만 아니라 웨어러블 디바이스이나 가상현실(VR) 등의 기기를 활용하여 인지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디지털 치료제'들도 대부분 예외일 수 없다. 이것들 역시 '회복탄력적' 주체를 목표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건강관을 우리 내면 깊숙이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정신통치의 도구로 활용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듯이,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삶의 토대가 붕괴되는 구조적인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 회복탄력성만으로 건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 모두 건강한 정신으로 살 수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말한 바 있다(<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인디고연구소 기획, 궁리 펴냄, 2014).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첫 걸음은 불평등 구조를 강화하는 논리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될 수 있다. * 서지 정보 - Neil Lindsay, Tom Baker & Octavia Calder-Dawe. 2021. Mental coaching through crisis: digital technologies and psychological governance during COVID-19, Critical Public Health, 32(1): 104~115. //doi.org/10.1080/09581596.2021.1965543 - 박승일, <기계, 권력, 사회>, 사월의책,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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