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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여성 점검노동자들의 생애 첫 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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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여성 점검노동자들의 생애 첫 외박 [시민권 없는 시민들-서울도시가스 여성 안전 점검노동자] ①

"여보, 오늘 나 집에 못 들어가!"

5월 24일, 서울도시가스 여성 점검노동자들은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런 통화를 이어갔다.

"너도 신랑한테 전화해."

결혼 후 외박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40~50대의 기혼 여성인 그들이 난생처음 배우자에게 '외박'을 선언한 날이었다. 망설임도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동료들이 패대기쳐지고, 질질 끌려가고, 사지가 들려 나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떼먹힌 임금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러 왔는데 난데없이 폭행당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도둑 좀 잡아달라고 왔더니 신고자를 도둑 취급하며 때려잡은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은 울분에 차 외쳤다.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2022년 5월 24일, 용역업체 관리감독 책임을 방기하는 서울시 규탄 서울지부 집중 결의대회에서 서울도시가스분회 조합원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폭력과 비명이 난무했던 야만의 하루

김윤숙 서울도시가스분회 분회장이 먼저 쓰러졌다. 서울시가 책정한 임금 그대로를 받게 해달라고, 급여 산정을 담당하는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담당자를 면담하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경찰이 그들을 막아섰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공중에 떴다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경찰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그를 에워싼 채 무려 20여 분 동안이나 고립시켰다. 다른 동료들이 그의 부상 정도를 확인만 하게 해달라고 호소하자 경찰은 폭력으로 응수했다. 겹겹이 둘러싼 경찰들 너머로 부상당한 동료가 뙤약볕 아래 고립되어 누워있는데 얼굴도 볼 길이 없고, 119 구급차도 도착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경찰이 분회장 배낭을 낚아채고 휘둘러 바닥에 내팽개쳤다."

바로 곁에서 분회장이 폭행당하는 것을 지켜본 정진화 예스코도시가스분회 분회장의 증언이다. 김윤숙 분회장의 머리가 돌바닥에 부딪히고 팔이 꺾이는 것을 보면서 정진화 분회장은 놀라 함께 주저앉았다. 너무 순식간에 당한 폭력이라 김윤숙 분회장은 잠시 정신마저 잃었다. 정진화 분회장은 경찰들에게 구급대가 올 때까지 부상자가 안정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경찰들은 이마저 거부했다.
"저는 거인이 나를 잡아채는 줄 알았어요. 제 배낭을 뒤에서 잡아당겼는데 제 몸이 공중에 붕 떴어요. 팔이 꺾였어요. 그리고는 기억이 안 나요. 눈 떠보니 동료가 제 머리를 무릎에 얹고 "언니 괜찮아?"하고 묻고 있었어요."
▲김윤숙 서울도시가스분회 분회장이 경찰의 폭력으로 뇌진탕 등의 부상을 입고 119로 후송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병원에서 확인한 그의 부상 정도는 짐작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뇌진탕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 가라앉질 않아 링거로 진통제를 두 통이나 맞았다. 인대가 손상된 팔은 깁스를 해야 했다. 목이 꺾여 생긴 뒤통수의 부종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동료가 실려 나가는 것을 본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대화하자고 들어왔는데 경찰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자 한 노동자는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내 피도 거꾸로 솟는 것 같다"고 했다. 동료의 몸이 고꾸라지던 순간, 자신들의 정당한 목소리가 바닥에 패대기쳐진 그 순간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생애 첫 외박 투쟁을 결의했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간

서울시청 별관 내부에서는 현수막을 펼치고 항의행동을 진행하던 8명의 도시가스 점검노동자들에게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폭력적으로 현수막 탈취를 시도했다. 그리고 곧 노동자들은 경찰에 의해 고립되었다. 더 이상의 폭력 피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로비 바깥의 노동자들은 고립된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 저녁 6시경, 로비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경찰이 대거 로비 안쪽 문을 막아서서, 현관 바깥문과 로비 안쪽 문 사이에 15명의 노동자가 고립·감금되었다.  경찰은 양쪽 출입문이 모두 잠겨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공간에 갇힌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려고 시도하거나 압박했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을 방어하던 노동자들은 극심한 호흡곤란과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온몸이 금세 식은땀으로 뒤덮였다. 그러고 있는 사이, 로비에서는 경찰이 여성노동자들의 사지를 들어 무자비하게 끌어내기 시작했다. 남성 경찰이 여성노동자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과도한 신체접촉마저 발생했다. 왜 여성노동자에게 남성 경찰이 신체접촉을 하느냐고 항의하자, 남성 경찰은 사지가 들려 끌려 나가던 여성노동자의 두 다리를 공중에서 그대로 놓아버렸다. 여성노동자의 몸은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한쪽에서는 한 노동자가 동료가 끌려 나가는 것을 막으려다 경찰에 두 팔을 붙들렸다. 경찰은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두 팔만 잡고 두 다리를 바닥에 질질 끌며 그를 끌어냈다. 서울시청 별관 로비에 비명이 난무했다.
▲경찰들이 서울시청 별관 로비에 있던 여성 노동자들의 사지를 들어 끌어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몇 명의 노동자들이 로비에 남았다. 고립된 노동자들이 찬 바닥에서 잠들지 않도록 연대를 온 이들이 물과 김밥 몇 줄을 넣으려고 했을 때도 서울시 청원 경찰은 이를 막는 것도 모자라 생수를 빼앗아 여성노동자들에게 흩뿌렸다. 이후 구호물품을 문틈으로도 넣지 못하도록 서울시는 출입문에 대형 펜스를 설치했다.  서울시 담당자를 만나 떼먹힌 임금을 받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전하고서 삼삼오오 모여 동료들과 저녁식사라도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던 도시가스 안전 점검노동자들은 온몸에 피멍이 든 채 경찰에 의해 질질 끌려 나오거나 서늘한 대리석 바닥에 침낭도 없이 다친 몸을 뉘고 잠을 청해야 했다. 그날, 서울시청 별관엔 최소한의 인권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버텼다

염순란 씨는 로비 진입 과정에서 중간 문에 팔목이 낀 동료가 다칠까봐 문 사이로 자신의 다리를 밀어 넣었다. 다리가 중간 문에 끼어있는데 경찰이 팔을 잡아당겼다. 산재로 다쳐 통증이 심한 팔이었다. 경찰은 그의 발을 밟으면서 팔목과 손을 꼬집어 억지로 몸을 중간 문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거기서 빠져나오면 동료의 팔목이 골절될까 봐 비명을 지르면서도 버텼다. 온몸이 피멍으로 뒤덮인 것은 끌려 나오고서야 알았다.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다쳤다. 옆의 동료가 경찰에 의해 다치는 것을 막으려다 경찰이 팔을 내리쳐 순식간에 팔이 부어올랐다. 질병이 있어 통증이 있는 손가락이 경찰에 의해 하나하나 꺾였다. 하나둘 동료가 바닥에 나뒹굴고 그 동료들의 안위를 확인하기도 전에 사지가 들려 끌려 나갔다. 어느 여성노동자가 동료를 바닥에 내팽개친 경찰을 향해 외쳤다. "당신들은 맡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삶이 달린 문제"라고, "우리는 지금 처절하다"고.  스스로를 처절하다고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은 뇌진탕으로 머리가 부은 채로, 팔에 깁스를 한 채로, 또 붕대를 감은 채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왔다.
"병원에서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가지 못하게 하는 걸, 제가 울며 사정했어요. 가야한다고, 그 사람들과 함께 앉아만 있어도 힘이 될 거라고요."
김윤숙 서울도시가스분회 분회장은 링거로 진통제를 두 병 맞고서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을 견디며 누워있으면서도, 몸을 다치면서까지 버티고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해 견딜 수 없었다. 4년 전, 울산에서 가스 점검 중에 성폭력 피해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동료의 소식에 더 이상의 성폭력 피해를 막고자 고공에 올랐던 노동자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버텨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노동자들은 서로를 보며 울었다.
"우리 언제 만나."
다음 날, 노동자들은 로비 안팎에서 붕대를 감은 팔로, 깁스를 한 몸으로, 곳곳에 피멍이 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연대를 온 이들이 야만의 밤을 버틴 노동자들의 손을 꼭 붙들고 울었다. 그들은 서로를, 서로의 삶을 그렇게 지켜냈다.
▲난생 처음 서울시청 별관 로비에서 한뎃잠을 자는 서울도시가스 안전 점검 노동자들. 별관 바깥에서도 연대대오와 조합원들이 함께 밤을 지새웠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한 달 몇만 원 가지고 이러냐고요? 살려고 이러는 겁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전, 노동자들은 제 급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지 못했다. 주면 주는 대로 받았다. 하루 3만 보를 걸으며 일을 헸지만 한 달에 고작 120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조금 더 벌어보겠다고 "미친 듯이" 일했던 한 조합원은 한 달에 6800가구를 돌았다고 했다. 회사는 그에게 고생했다며 선심 쓰듯 10만 원을 더 쥐여줬다. 정말 열심히만 하면 잘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고객의 협박과 감금, 성폭력을 수없이 견딘 시간은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족저근막염을 견디고 고객의 폭언을 견디고 한여름 폭염을 견디고,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새는 소변을 말리면서 뛰어다녔던 날들은 옷이 찢긴 채 쓰러져 사망했다는 동료의 이야기에서, 성폭력을 경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한 도시가스 점검노동자의 뉴스 앞에서 문득 멈춰섰다. 이대로는 살 수 없었다.
"노동조합 가입하고 나니까 월급이 200만 원으로 올랐어요."
실상은 오른 게 아니었다. 용역업체가 50~60만 원이나 되는 임금을 떼어먹고 있다는 것을 노조에 가입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월급 올랐다고 좋아했지만,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그마저도 주지 않았다"면서 노동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도 그렇다. 매년 떼먹은 임금을 달라고 싸우지 않으면 회사는 내놓지 않는다. 훔쳐 간 돈으로 뭘 했을까? 서울도시가스(주) 주주들은 올해 3월, 무려 68억 9400만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서울시 산정수수료로 주주배당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작년 한 해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돈은 9억이 넘는다. 서울시는 시민이 내는 가스요금이 항목에 맞게 사용되었는지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권한이 없다는 말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사이 회사는 눈앞에서 빙글빙글 웃으며 노동자들의 월급을 훔쳐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 소리소문없이 도시가스 요금이 인상되었다.
"당신들이 야금야금 떼어먹는 그 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죠? 우리는 그 돈으로 아이들 밥도 해 먹여야 하고, 자식들 학교 보내야 하고, 늙으신 시부모님도 모셔야 합니다. 우리에겐 그런 돈입니다, 그 돈."

책임 있는 답변 대신 바리케이드를 준비한 서울시

다짜고짜 칼을 들고 쫓아온 고객을 피해 3층까지 올라가 도움을 요청했던 적이 있다고, 나체로 나온 고객을 맞닥뜨리거나 그 고객에게 끌려들어가 감금당했던 적이 있다고, 또 계량기 검침을 하기 위해 붙들어 줄 이도 없는 사다리를 위태롭게 올라야 했던 날들도 수없이 많았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의 1박 2일은 그렇게 밤새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쏟아내는 시간이었다. 서울시청 별관 내부에서는 23명의 노동자가, 외부에서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기나긴 밤을 함께 지켜냈다. 25일 11시경, 서울시는 결국 노동자들과의 면담에 임했고, 17시 20분, 서울시로부터 27일까지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받았다.  그러나 27일 받은 공문에서는 전향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고, 책임이 모호한 단어들만 빼곡히 들어있었다.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이야기 대신 "고객센터 지급수수료가 용역결과에 따라 집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책임이 모호한 답변 말고, 구체적 약속을 제시해달라는 서울도시가스 안전 점검 노동자들의 요구는 6월 22일, 다시 한번 약속된 면담 자리에서 또 다시 내쳐졌다. 서울시는 노동자들에게 책임 있는 답변은 준비하지 않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바리케이드를 준비해두었다. 면담 장소에 대해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퇴짜가 반복되자 노동자들은 서울시청 별관으로 달려갔지만 굳게 닫힌 문 앞으로 놓인 커다란 바리케이드에 이중으로 가로막혔다. 서울시에 의해 문전박대당하고, 폭력적으로 끌려 나온 노동자들은 그 날, 차가운 바닥에 앉아 "우리가 아줌마라서 이렇게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노동자들이 끌려 나온 날은 지방선거 일주일 전이었다. 시민의 민원에 폭력과 억압으로 답하는 곳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폭력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여성노동자들의 빼앗긴 임금을 돌려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서울시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유권자로 생각하지 않는 곳,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으로 회자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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