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인 한 드라마에는 유명한 고래 사냥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포식자 인간이 던진 작살을 새끼가 맞고 죽어 가면 어미는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죽은 새끼를 버리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진다. 여전히 인간은 동족의 죽음에 추모와 애도를 표하는 대표적인 동물 종이다. 죽은 새끼를 17일 동안 품고 헤엄치는 모습이 관찰되어 비인간 종의 '애도'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켰던 범고래의 사례도 있다지만, 애도와 추모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다. 이는 개인적 수준의 정동에 그치지 않는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말처럼, 누가 인간으로 간주되는지, 누구의 삶이 애도할 삶으로 여겨지는지, 누구의 죽음이 공적 애도의 대상이 되는지는 한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근래 발생한 대학 내 성폭력·사망 사건은 공적 애도를 둘러싼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정치는 사건이 알려지는 시점부터 시작됐다. 피해자의 사망은 애도나 추모와는 거리가 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 경쟁을 통해 알려졌다. 여성의 몸을 성적 포식의 대상으로 여기는 분별없는 말들도 여과 없이 언론 지면을 장식했다. 사건의 정황이 어느 정도 알려진 이후에는 살릴 수 있었던 목숨에 대한 애도와는 거리가 먼, 가해자의 시선과 입장에 공감하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리고 얼마 전, 여성가족부 폐지를 임무로 조직의 장을 맡은 김현숙 장관은 인터뷰를 통해 쐐기라도 박듯 사건을 단순한 '안전 문제'로 축소했다. 그에 따르면, "젠더 갈등의 증폭"을 억제하기 위해 피해자의 사망은 모종의 불운이자 안전 사고가 "되어야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가지 더. 늦은 시간 두 명의 대학생이 함께 술을 마시다 한 사람이 사망한 다른 사건(2021년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과 비교해 이 사건을 둘러싼 여론의 반응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는 이 사건이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자, 만연한 대학 내 성폭력이 드러난 사례라고 판단한다. 신고 기반 집계가 고작인 한국에서는 제대로 조사된 바 없지만 많은 국가에서 대학 내 성폭력은 중대한 사회 문제로 여겨진다. 관련한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강압, 폭력, 약물·술 등으로 인한 무력화 상태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여학생이 26.4%, 남학생이 6.8%였다.(☞ 바로 가기 : ) 한국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본다면, 이 사건은 널리 퍼져 있는 대학 내의 성적 강압과 착취 문화가 극단적인 결과로 노출된 사례다. 이를 단순한 안전 문제 취급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가릴 뿐만 아니라, 미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처사다. 정부가 대책으로 제시한 학교 내 CCTV 설치와 야간 출입 통제는 만연한 성폭력을 예방하는 조치가 아니라 그 성폭력이 학교 내에서 발생하지 못하게끔 하여 책임을 개인화하기 위한 대책에 불과하다. 어떤 폭력을 예외적·극단적 사건으로 여기며 문제가 내포하는 더 넓은 의미와 맥락을 못 본 체하는 것은 억압적인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들의 오랜 전략이다. 그렇게 유지되는 억압의 구조는 계속해서 다음 희생자를 만들어 낸다. 작년 군대 내 성폭력으로 이예람 중사가 목숨을 잃었던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최근 또 다른 여군이 사망한 것처럼, 가해자 개인에 대한 처벌만으로 폭력의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의 해결 역시 일상의 성평등과 상호존중을 전제로 하는 관계와 존재의 전면적 재구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청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정치는 어쩌면 2022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장면일지 모른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회에서 피해자의 죽음은 불운한 사고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 사고는 계속해서 반복되며, 전혀 평등하지 않은 방식으로 더 약한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위협한다. 다만 조금 달라진 풍경은 강남역 살인사건 6주년을 맞는 지금, 많은 이들이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을 젠더기반폭력으로 인지하며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조적 폭력의 결과를 개인적 불행이자 일탈로 오도하며 피해자를 적확하게 애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나쁜 정치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 성폭력에는 반대하지만 '남자되기'를 장려하는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역시 뜻깊은 진전이다.(☞관련기사 : <세계일보> 7월 24일 자 ') 우리는 성폭력과 착취로 부당하게 잃은 생명에 대한 추모의 공간을 더 넓혀 나가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의 죽음과 고통을 깊이 고민하고 애도하자.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했을 삶을 위한 정치를 수행하자. 그녀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예상치 못했던 죽음에 슬퍼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긍지를 지키기 위한 애도의 행렬을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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