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 않은 죽음
3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공과대학 302동 휴게공간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학내 노동자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학생들이 사건을 기억하는 과정에는 단순히 안타까움만 작용하지 않았다. 같은 공동체 구성원의 노동환경에 무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2019년 청소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 대학의 책임 인정과 총장 명의 사과,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1만4000명의 시민이 서명했고, 그중에 서울대 재학생은 8000명에 달했다. 학생들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자책이 번져있던 2019년의 여름으로부터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는 학내 노동자를 떠나보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의 학생들은 상상도 못 했겠지만, 2022년의 서울대는 두 건의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이 발생한 학교가 되어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사소하지 않은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은세가 바로 그들 중 한 명이다. 은세는 여러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3주기 추모 기자회견을 계획했다. 전날 애꿎은 비가 쏟아졌지만, 기자회견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 간 무책임한 대학의 태도, 그리고 하나의 학교의 문제가 아닌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목소리 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은세는 당일 몇 분을 남겨두고 기자회견을 취소한다는 공지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소하지 않은 죽음이 딱 3년째 되는 8월 9일, 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잔재들을 서울대 노동자들이 쓸고 닦았다. 침수 복구사업으로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내가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
은세는 2020년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불행히도 그녀는 흔히 부르는 '코로나 학번'이었다. 1년을 거의 대학생활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2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뭐라도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노동권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고, 학내에 꾸준히 있었던 노동문제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노동문제를 취재하는 학내 동아리에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은세는 우연한 기회로 국정감사에 참여했다. 학내 고용구조 문제에 대해 서울대 총장을 지적하는 질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경험이 없이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어쩌다보니 팀장이라는 책임을 맡게 된 점도 부담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스스로를 바꾼 계기가 되었다. 인터뷰를 하겠다고 응할 때, 은세는 자신보다 더 적절한 인터뷰 대상을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무언가 확고하고 확실한 계기 없이 자연스럽게 운동을 시작하게 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가 한 선택의 가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깨달음을 계기로 은세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학내 노학연대 동아리인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에 가입했다.나의 운동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에 대하여
2021년도 6월, 두 번째 청소노동자 사망사건 소식을 듣고 은세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 1학년 때 자신이 거주하던 기숙사 바로 옆 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은세는 깨달았다. 그 구관 기숙사는 계단이 없어 불편했고, 많은 양의 배달 쓰레기가 쌓이는 곳이었으며, 샤워실 환경이 열악한 곳이었다. 원래도 그 기숙사의 상황을 알았지만, 청소노동자분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죄송스럽고 후회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은세가 느낀 자책감과 달리, 사건에 대응하는 학교의 태도는 그야말로 무책임했다. "외부 정치세력의 간섭", "피해자 코스프레 우려"를 이야기한 당시 학생처장이나 "노조 측의 허위 주장이 일방적으로 보도"된다고 말하는 기숙사 부판장의 담화문 등. 학교가 대학 노동자들의 노동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은세는 분노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분노가 은세를 투쟁의 주체적인 위치로 이끌었다. 은세는 자신이 비서공의 대표가 된 것이 '어쩌다보니 제안을 받아서’'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그녀와의 대화에서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학교의 태도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온라인을 통한 학생들의 혐오표현이었다. 학내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 고인을 애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입에 담지 못 할 말로 비하하며 고인의 사망을 학내 노동조건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주장 역시 많이 올라왔다. 또 많은 댓글이 고인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노동조합이 그것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비난하는 견해를 내비치는 것을 보았다. 은세는 현실에서 이런 혐오표현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혐오표현은 실제 그녀가 맺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요즘 뭐하고 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은세는 자신의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려는 운동이 '정치색'으로 비추어지는 이 시대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내가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도 않다. 누구보다 주체적인 운동을 하려고 하지만 겉으로는 가끔 자신의 운동을 숨겨야 하는 모순은 그녀가 겪는 운동의 고민 중의 하나이다. 수많은 고민과 걱정을 떠안으면서도 그녀는 노학연대 활동을 막중한 책임감으로 이끌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