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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임금 삭감' 항의하니 "선 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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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세훈 시장, '임금 삭감' 항의하니 "선 넘지 마세요" [기고] 유권자 그 너머의 존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서울 시민이 아닌가요?
묵직한 철문이 열리고,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무언가 번쩍이고 있다. 문을 열던 여성은 잠시 움찔 하지만, 심호흡을 한 뒤 나머지 반을 열어젖힌다. 그 집의 내부에는 한 남성이 도마에 식칼을 꽂은 채 여성을 노려보고 있다. 끼이익, 쿵. 여성은 깜짝 놀란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의 눈을 바라보지는 못하고 도마 위에 꽂힌 식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그맣게 이야기한다.

"금방 하고 나갈게요."

이 기괴한 장면은 도시가스 안전점검노동자 정진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예스코도시가스분회 분회장이 몇 개월마다 반복해 마주하는 장면이다. 정진화 분회장은 처음에는 고객이 칼을 들고 휘둘렀지만, 이제는 칼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위안 삼는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안심되지 않아 딸에게 전화해 "1분에 한 번씩 엄마에게 전화해달라"는 부탁을 하고서야 그 집에 들어설 수 있다. 회사는 일시적으로 남성 안전점검원을 투입했지만, 그 고객이 격렬하게 항의하자 정진화 분회장을 다시 그 고객에게 보냈다.
"언제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데도 계속 그 집을 방문해야 하는 거예요. 할당 분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도시가스 안전점검노동자들에게 고객의 살해 협박은 일상적이다. 그의 구역에는 그를 감금하고 가족에게 해를 끼치겠다고 협박한 고객의 집도 포함되어 있다. 20분 동안 나가게 해달라고 고객에게 빌고서야 그 공간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그는, 정기적으로 탈출한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 한 노동자는 "아침부터 여자가 와서 재수없다"는 이유로 살해협박을 당했다. 그 고객은 협박을 하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죽이겠다"고 하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위층으로 도망쳤다. 마침 문이 열린 빈집이 있어 그리로 들어가 화를 면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어떤 일을 당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서울시가 도시가스 안전점검노동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출입구에 쳐놓은 삼중 바리케이트. 바리케이트에는 쇠사슬에 자물쇠까지 채워져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운 좋게 살아남기

도시가스 안전점검노동자들의 노동기는 이러한 '생존기'의 연속이다. 그 '남성' 고객들은 닫힌 공간에서 '여성' 노동자와 둘이 남게 되면 희롱하거나 살해 협박을 한다.  돈을 줄 테니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 달라고 제안하는 고객, "예뻐해 달라"고 조르는 고객, 매번 나체로 문을 열어주면서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고객 등 성희롱의 방식은 다양하고도 끔찍하다. 방문 시간 안내 문자에 대한 답으로 남성 고객이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와도 그 집을 들어가야만 한다. 회사는 그런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하거나, 오히려 노동자의 '행실'을 탓하기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늘 공포 속에서 그 고객 집의 문을 열 수밖에 없다. PDA(디지털 단말기)를 쓰기 전 개인 핸드폰을 사용했을 때는 새벽에 고객에게 전화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한 번은 새벽에 고객에게 온 전화를 남편이 받았어요. 그 고객이 자신이 샤워를 한 뒤 발가벗고 있으니 지금 점검을 하러 오라고 한 거예요. 남편이 난리가 났죠."
가스 안전점검노동자들은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안전을 포기해야 한다. 그들은 수많은 위험이 산재해있는 현장에서 매일 운 좋게 살아남는다.

시민권 없는 시민들

노동자들을 이런 극한의 위험으로 내몬 도시가스 고객센터가 임금마저 도둑질해갔다. 노동자들의 울분은 이렇게 터져 나왔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서울시에서 공문을 내려주면 그대로 집행하겠다"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그래서 찾아간 서울시에서 노동자들은 패대기 쳐지고, 팔이 꺾이고, 사지가 들린 채 끌려 나왔다. 임금 착취 등 노동현장의 폭력을 해결해달라고 찾아간 곳에서마저 그들의 목소리는 폭력적으로 배제당했다. (관련 기사☞ 시민권 없는 시민들-서울도시가스 여성 안전 점검노동자 )

"우리가 아줌마라서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날,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이들이 서울시 담당자와 면담을 요구할 적에 사방에선 여성노동자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아줌마"라는 말들이 날아다녔다. 서울시청 공무원들도, 경찰도 노동자들을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날은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그들에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유권자가 아닌 '아줌마'였을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유세장 바깥으로 내몰렸다.
▲2022년 7월 5일, 도시가스 안전점검노동자 임금을 삭감한 서울시에 면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바리케이트와 경찰에 가로막히자, 김윤숙 서울도시가스분회 분회장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바리케이드 뒤의 대화

5월 24일의 폭력 진압 후, 서울시는 '전향적인 답변'을 준비하겠다더니 돌연 22년도 산정임금을 삭감했다. 딱 21년도에 떼먹힌 임금만큼 삭감된 안이었다. 7월 25일, 노동자들은 '제12회 캠퍼스타운 정책협의회'에 참여한 오세훈 시장을 만나기 위해 고려대학교를 찾아갔다. 오세훈 시장은 선뜻 '대화하자'고 했고, '약자와의 동행'이 그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실제 노동자들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도와달라는 이야기가 터져나오던 초반과는 달리 대화 중반부터는 노동자들의 긴 탄식과 한숨이 이어졌다. 형식적으로는 '대화'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내용상으로는 '통보'에 가까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은 '시각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만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시각의 차이란 이런 것이었다. 실제 받는 임금이 삭감되었다는데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삭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도 '시장의 업무 방해'라는 것이다. 혹서기 격월검침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데도, '권고' 이상은 비상식적인 요구라는 것이다. 도둑맞은 임금을 되돌려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인데도, 무턱대고 요구를 들어달라면 어떡하느냐며 화를 냈다. 오세훈 시장은 말했다.
"선을 넘지 마세요."
▲ 7월 25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제12회 캠퍼스타운 정책협의회’에 참석한 오세훈 시장이 서울도시가스분회, 예스코도시가스분회 조합원들과 면담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음과 목소리

7월 25일의 또 한 번의 '대화'에 앞서 오 시장은 7월 5일 임금 삭감을 항의하기 위해 면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앞에 삼중 바리케이드를 준비해두었다. 그 단단한 바리케이드 앞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던 노동자들은, 오 시장의 바리케이드의 실체를 그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큰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오 시장은 큰 틀에서 회사(서울도시가스, 도시가스 고객센터)의 권한을 강화해놓았다. 산정임금의 집행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서울시에 없으므로 산업통상자원부에 지침 개정을 건의해 해결하겠다더니, 고객센터 지분의 80% 이상을 가진 공급사인 서울도시가스가 관리감독하게 해달라고 건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22년도 산정임금 항목에 '기타급여'라는 항목을 만들어, 고객센터가 재량껏 지급하도록 권한을 부여해놓았다. 지급해야 마땅한 임금도 떼먹는 회사가 자신들의 재량에 맡겨진 임금을 주겠는가? 오 시장의 해결책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들이었다. "해결되지 않았다"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해결했다", "해결될 것이다"라는 오세훈 시장의 답변은 서로 닿지 못했다. "여러분의 사정을 살피겠다"는 말 뒤에는 그저 "기다리라"는 말과 "여러분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는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행'을 기대했던 노동자들은 삼중의 바리케이드를 앞에 두고 또다시 주저앉아야 했다. 최근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청소노동자의 시위를 '소음'으로 규정하고 청소노동자들을 업무(학습) 방해로 고소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오 시장 역시 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시장의 업무 방해'로 규정했다. 오 시장의 말에 목숨을 걸고 일하는 도시가스 안전점검노동자들은 무턱대고 떼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노동자들이 물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해도 안 되니,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바리케이드를 앞에 두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소음으로 여기는 태도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또한 해결이란 단어는 노동자들이 열어야 할 문 너머의 일터가 안전한 공간이 될 때, 제대로 된 임금을 보장받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진정한 대화는 시작되지 않았다.

※ 이 원고는 격월간 '비정규노동'과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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