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일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했다. 원전을 '친환경' 사업으로 분류함으로써 신규원전 건설 및 원전 수출에 금융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확보 시점이 제시되지 않았고,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적용 시기 또한 유럽연합(EU) 녹색분류체계 시기보다 늦다. "국내 원전건설의 명분 쌓기용 지원제도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환경부는 이날 원전 건설과 운영을 녹색분류체계 내 '전환부문'에 포함한 녹색분류체계 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지난 7월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켜 금융권의 녹색투자를 유인할 것"이라며 개정 방침을 밝힌 이후 원전이 포함된 개정안이 나온 것이다. 작년 12월 첫 발표된 녹색분류체계에는 원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방침과 EU가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면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또한 개정이 추진됐다. 환경부는 개정 계획을 밝히며 "녹색분류체계 포함 시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EU가 부여한 안전기준을 토대로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환경부는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 원자력 기술과 사고저항성핵연료 사용 등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은 녹색부문에, 원전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에 포함했다. 녹색부문은 온실가스 감축 등 6대 환경목표에 직접 기여하는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이며 전환부문은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활동'을 의미한다. 2045년까지 신규건설 허가 또는 계속운전 허가를 받은 원전이 대상이며 환경피해 방지와 안전성 확보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처분 계획과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등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의 원전 포함 조건은 EU가 제시한 조건보다 후퇴했다. 고준위방폐물 처분 부지 확보 및 운영할 시기를 2050년으로 명시한 유럽 녹색분류체계와 달리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는 고준위 방폐물 부지 확보 및 건설 시점을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환경부는 "고준위 방폐장은 민간이 아닌 정부가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국내의 경우 정부 계획이 존재하여 구체적 연도제시는 불필요"하다며 기준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환경부가 말하는 정부 계획이란 작년 12월에 발표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다. 환경부는 정부의 기본계획의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법률제정)을 조건으로 추가했다. 그러나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도 고준위방폐장 설립 연도나 부지 등이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입지 선정 과정부터 난항을 겪는 고준위방폐장 건설,운영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없이 환경부가 원전을 '친환경'으로 분류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전환포럼은 20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고준위방폐물 기본계획은 부지확보 및 건설에 3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술되어 있을 뿐 언제, 어떤 부지에서 추진할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 행정절차 및 공학적 전망일 뿐"이라며 "고준위방폐물 처리나 처분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건설과 운영에만 관심을 둠으로써 미래세대에 필요 비용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기 또한 EU의 기준보다 늦다. EU 녹색분류체계는 고온에서도 화재·폭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시기를 2025년으로 지정했다. 반면에 이번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시기는 2031년으로 EU의 기준보다 6년 늦게 적용된다. 환경부는 "국내에서는 31년이 상용화가 가능한 가장 빠른 시기로 판단된다"라며 적용 시기를 늦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지금 기준대로라면 향후 9년간 다른 녹색분류체계 기준을 만족한 원전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친환경' 투자에 포함될 수 있게 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윤석열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신규원전(신한울 3·4호기)와 수명연장에 대한 심사 및 허가는 2031년 이전인 현 정권 임기 내에 모두 진행될 예정"이라며 환경부의 기준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준으로 남게된다"라고 지적했다.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대신 확보해야할 안전성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녹색' 사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등 EU에서 제시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원전은 해외 수출 및 해외투자유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환경부는 초안 공개 이후 10월 6일에 공청회를 진행하는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환경부는 초안 공개 브리핑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라는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