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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가 땅과 세상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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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가 땅과 세상을 살린다 [기고] 쓰노유킨도의 <소농>·안철환의 <토종농법의 시작>

도시의 흙을 살리는 도시농업

요즘은 누구나 기후위기를 말하면서 슬쩍 멸종위기를 빠뜨리는 것이 나는 우려스럽다. 기후위기 그러면 또 따라 붙는 것이 탄소중립인데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하는 토양에 대해선 정작 별 관심들이 없는 것도 더욱 우려스럽다. 도시농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건물 옥상에서 화분 같은 상자에다 인공 흙 담아 농사짓는 걸 떠올린다. 그게 아니면 잘해야 상업적인 주말농장에서 농장주가 땅 갈아주고 거름 다 준 밭에다 모종만 심고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주말농사를 떠올리는 정도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스마트팜, 식물공장 같이 인공양액과 인공 LED 조명으로 농사짓는 걸 도시농업이 추구해야할 첨단 미래농업이라는 얘기를 쉽게 한다. 우리나라의 도시농업은 민간단체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다. 바로 (사)전국귀농운동본부라는 단체가 2005년 처음으로 도시농부학교를 열고 2007년 상자텃밭을 개발해 대중화시킨 것이다. 2009년엔 최초로 도시농업 조례인 경기도 광명시 시민농업 육성 조례 제정을 지원했다. 2010년에는 경기 수원의 생태도시농업 조례 제정에 이어 서울에서 최초로 친환경도시농업 조례 제정을 지원했으며 2011년 도시농업 육성법 제정에도 참여했다. 이런 노력으로 농림식품부 추정 200만명에 육박하는 도시농부가 양성되었다. 도시텃밭 면적은 서울의 경우 2011년 29ha에서 2020년 210ha로 급증했다. 귀농운동본부가 도시농업을 시작할 때 제안한 경작 철학은 이른바 4원칙 3지향이었다. 비닐멀칭을 하지 않는 무비닐, 화학살충 살균 제초제를 쓰지 않는 무농약,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무비료, 기계로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 등 4원칙과, 토종씨앗을 복원하고, 자가 거름을 만들어 쓰며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 농사 등 3지향이 그것이다. 귀농운동본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 철학은 친환경 도시농업 조례와 법률에 반영되었고 그 성과로 도시농업에선 비닐멀칭 하지 않고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 쓰지 않는 게 일반화되었다. 아쉬운 것은 무경운 원칙이 아직까진 일반화되지 않은 점과 더불어 3지향에서 토종씨앗 복원 운동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반면 자가 거름 만들기와 공동체 경작운동은 기대에 많이 못 미친 것이 크게 아쉬운 점이다. 도시에서 농업활동, 곧 경작활동을 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콘크리트로 덮여 죽어버린 도시의 흙, 토양을 살리는 일과 무관치 않다. 물론 베란다, 옥상, 식물공장 등 인공기반 경작활동도 도시농업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경작활동이지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농업의 중심활동일 수가 없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토종 씨앗을 심자

일단 우리의 도시는 콘크리트 피복율이 너무 높다. 2013년 기준 서울시의 콘크리트 피복율은 52.8%를 넘었고 도심지역으로만 보면 이는 80%가 넘는 심각한 지경이다. 시민 1인당 녹지율을 보면 서울은 2020년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4.38㎡에 불과한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인 9㎡보다 낮고, 영국 런던 27㎡, 미국 뉴욕 23㎡, 프랑스 파리 13㎡, 일본 도쿄 11㎡ 등에 비해서도 부족한 수치다. 서울시민은 세계보건기구가 권하는 최소한의 토양 면적에 반 밖에 되지 않는 땅에서 산다는 얘긴데, 이런 사정만 봐도 도시농업은 콘크리트로 숨 막힌 도시를 살리는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WHO가 제시한 최소한의 녹지비율이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토양의 면적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그 필요성이란 크게는 탄소 저장고 복원으로 기후위기 대처와 도시의 온실효과 예방, 최소한의 빗물투수 면적 확보를 통해 홍수 예방, 지하수 보존, 그리고 미세먼지 막아줄 깨끗한 자연환경 유지를 위한 것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작게는 콘크리트를 밟고 사는 시간보다는 흙을 밟고 녹색의 공기를 마시는 시간을 늘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빡빡한 경쟁 사회인 도시에서 텃밭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시민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충전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미 유럽에선 도시농업 경작활동이 시민의 건강을 증진시켜주어 질병의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켜준다 해서 건강보험공단에서 도시농업 활동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공원을 늘리면 되지 거름 냄새나는 텃밭을 늘려 도시 위생환경을 더럽힐 필요가 뭐에 있느냐 하고 따진다. 물론 공원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공원보다 텃밭이 녹지를 늘리는 데에는 장점이 많다. 일단 공원은 조성비가 많이 든다. 다음으로 공원은 탄소 저장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핵심은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 처리에 있다. 낙엽은 나무가 탄소를 사냥한 결과인데 그것을 땅에 저장하지 않고 태워서 대기로 돌려보내면 공원의 탄소저장 기능은 무력해진다. 가을이면 쏟아지는 도시의 무수한 낙엽은 포대자루에 담아져서 대부분 소각처리되고 일부만 농촌으로 보내진다. 반면 텃밭은 조성비가 매우 적게 드는 장점도 있고 자투리 땅, 임시 토지(미집행부지) 등 다양한 토지에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가 있어 녹지면적을 늘릴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다. 나아가 텃밭은 거름을 만드는 자원순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시농업은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를 살릴 매우 효율적인 대안이 되는 것이다. 죽은 도시의 흙을 살리는 일을 외면한 채 베란다, 옥상, 식물공장과 스마트팜 등 인공기반 중심으로 도시농업을 이끌어간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역행하는 것일뿐 아니라 자연의 공간을 추구하는 시민들로부터도 외면받을 것이며 결국은 관련 기업체 이윤만 불려준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도시농부는 소농 예비군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외면해선 안되는 것은 지역의 소멸이다. 도시의 토양도 중요하지만 역시 토양의 근본은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 소멸의 배경에는 소농 붕괴가 있다. 대농은 지역을 지키기에는 농산물 수입개방 시대에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대농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대부분 몰락할 위험이 매우 커졌으니 대농이 지역을 지킬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대농 위주의 농정과 도시만 키우는 국정으로 소농은 대농보다 먼저 몰락해버릴 지경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농이야말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대안이며 지역소멸을 방어할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농을 단순히 작은 농부(small Farmer)라고 보지 않는다. 미국 같은 광대한 나라에선 10만평의 농부도 소농이겠지만 우리에겐 엄청난 대농이다. 그래서 소농과 대농을 면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지역(local)이란 개념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우리 한반도보다 큰 주(州)도 지역이겠지만 우리에겐 그렇지가 않다. 그럼 지역과 소농을 규정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할까? 나는 그것을 순환(recycling)으로 본다. 말하자면 지역은 순환 가능한 공간을 말하고 소농도 순환적인 농사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지역이 소멸하는 것은 순환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은 이미 도시에 종속되어 버렸고 도시조차 국제화 시스템에 종속되었다. 물론 도시와 국제화 시스템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순환시스템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앞에서 WHO에서 1인당 최소한의 녹지면적을 제시한 것처럼 지역이 살려면 필요한 최소한의 순환시스템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도시에 대한 종속관계, 세계무역 시대에 대한 종속관계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으니 위기에 대비한 자체 순환시스템을 구비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환가능한 소농은 무엇을 말하나? 거름과 땅의 순환, 작물과 땅의 순환, 작물과 종자의 순환,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순환, 나아가 도시와 지역의 순환을 실천하는 농부를 말한다. 문제는 이미 지역에선 이런 농부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는 수없이 외부로부터 수혈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도시농부를 소농예비군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라지는 지역과 달리 도시는 인구 과밀로 터져버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토종종자를 지켜 멸종위기를 대비하는 도시농업

사라진 토종씨앗을 지키는 데 앞장 선 것도 도시농부들이었다. 그것은 도시농부들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지역에선 순환을 실천하는 소농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여성 농부들이 아직 남아 지역을 지키고 종자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토종씨앗은 도시농부들과 여성농부들이 지켜왔다는 것이다. 아무튼 상업농으로부터 자유로운 처지가 도시농업을 토종 지키기 선구에 나서게 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시사가 들어있다. 상업농을 하되 순환농을 포기해선 안된다는…. 지역소멸만큼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바로 멸종위기다. 당장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이에 도시양봉을 실천하는 도시농부들이야말로 지구지킴이의 선구자들이다. 어디 뿐인가? 태풍과 가뭄에 취약한 개량 벼들을 대비해 토종 벼를 지키는 선구자도 도시농부 출신들이다. 여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지역의 소농들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귀농한 분들이다. 이 사례만 봐도 명확하다. 도시농부와 소농이 멸종위기를 막을 것이라고. 요즘은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판매하는 씨앗값이 무게로 치면 금값보다 비싸졌다. 불임종자(F1)인 주제에. 이런 씨앗들은 가임능력을 제거했기 때문에 한 번에 멸종되어버릴 수 있다. 이에 소농여성농업인, 귀농한 소농들, 그리고 도시농부들이 도시와 지역 곳곳에서 토종 씨앗을 지켜가고 있는 것이 작지만 큰 희망이 되는 것이다.

*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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