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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밥상' 예산, 소비자와 생산자가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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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밥상' 예산, 소비자와 생산자가 바꾸자 [복지국가SOCIETY] 찻잔 속 태풍과 같은 농산물 가격 안정 정책은 그만!

국민의 기본적 먹거리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먹거리 보장 정책'은 중요한 국가 과제이다. 이상 기후 및 국제적 식량 위기에 대응하는 식량안보 대책은 밥상 농산물의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는 최저가격보장, 채소가격안정제,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 등 찻잔 속 태풍과 같은 정책을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생산자 및 소비자 단체는 식량안보의 기반인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참신한 정책을 요구하는 한편, 정책 실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운동을 펼쳐야 한다.

먹거리 문제는 개인적 문제 아닌 국가적 이슈

이상 기후에 따라 국제 곡물의 가격이 급변동하고 수급은 불안해진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식량 위기에 대비하려면, 식량안보에 대한 점검과 기준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 먹거리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이슈가 되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먹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먹거리 보장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국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먹거리 보장 정책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소한의 소비생활을 보장하는 '소비자 복지'를 증진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소비자 복지 향상과 함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보장을 위해선 안정적인 공급체계와 안정적인 가격이 요구된다. 농업정책연구소와 GS&J 인스티튜트가 주최한 '농업・농촌의 길 2022' 토론회에서 제기된 식량안보 대책의 핵심은 '밥상 농산물의 안정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비자 밥상에 오르는 농산물만큼은 안정적으로 공급하자는 제안이다. 즉 가격 불안정을 해소하여 소비자에게 가격 급등락이 없이 적정하고 안정적인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하는 한편, 농업인의 경영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 급등락을 부채질하는 경매, 국내산 배추 소비자 외면

지난 9월 배추 도매가격은 10㎏ 한 망에 2만 원 선까지 올랐다. 그 전달 가격(1만 4650원) 보다 36.5% 상승한 값이다. 배추가격 상승으로 김치 가격이 오르자 값싼 수입 김치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고, 급기야 10월에는 김치 수입액이 1701만 8000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10월 상순에는 배추 도매가격이 10㎏에 1만 7090원으로 하락했고, 10월 중순에는 9400원, 10월 하순에는 7600원으로 떨어졌다. 가락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올해 배추 소비가 사상 최악이라고 한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대아청과에서 거래한 11월 배추 물량은 1만 9277톤(t)으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량 2만 2951톤보다 16%나 감소한 수치다. 생산지 현장에서는 겨울배추 가격의 하락세가 오래 지속될 수 있으므로 선제적으로 산지 폐기 등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11월 30일에 7000톤 규모의 '2022년 겨울배추 긴급 정부수매비축 구매' 공고를 냈다. 어처구니없게도, 농산물 기준가격 역할을 하는 가락시장 경매가격의 급등락은 해마다 반복된다. 공영도매시장은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생산자에게는 든든한 판로로 기능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공영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경매회사) 외에도 허가받은 시장 유통인 누구나 정가・수의거래를 할 수 있도록 거래규제를 풀어 경쟁체제를 구축하면 농산물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된다. 경매가 사라지면서 농산물 가격이 안정된 사례는,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정부기관인 아그리메르(AgriMer)의 프랑크 르메이트르 국장은 지난 2016년 5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매가 사라지면서 전체적인 농산물 가격이 안정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배추 도매가격은 10㎏ 한 망에 2만 원 선까지 올랐다. 그 전달 가격(1만 4650원) 보다 36.5% 상승한 값이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부산 사상구 엄궁농산물도매시장에서 열린 '사랑의 김장배춤나눔 행사' ⓒ연합뉴스

찻잔 속 태풍과 같은 농산물 가격 안정 정책은 그만

경매의 속성은 가격 급등락의 반복이다. 가락시장의 독점권 수탁체제인 경매 거래를 손보지 않고는 농산물 가격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가격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거래 제도를 도입할 생각은 하지 않고, 경매제를 그대로 둔 채 국회와 정부는 실효성 없는 법률과 정책만 내놓고 있다.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도입을 골자로 국회가 추진 중인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이 일례다. 최저가격보장에 대한 기준가격은 직전 5개년 도매시장 평균가격 또는 최저 생산비・경영비 등이고, 농산물 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하락했을 때 하락분의 70~80%를 보전해준다는 내용이다. 정부 또한 농가 경영위험을 방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채소가격안정제 확대와 품목의무자조금단체를 통한 자율수급조절 정책만 추진하고 있다. 한편, 물가 관리를 위해 농식품부가 실시한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 정책은 소비자 지향적 정책이지만, 소비자 후생에 부합하는 정책은 아니다. 소비자에게 농축산물 구입비의 20~30%를 할인해주는 이 할인 쿠폰 정책 예산은 올해 590억 원이었고, 내년 예산으로는 1690억 원이 편성되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 정책이 진정 소비자를 위한 것일까?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1회계연도 결산보고서'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설문 조사 자료를 보면, 해당 사업은 추가 소비를 유발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와 사업의 혜택도 일부 대형 마트에 집중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즉 농식품부의 할인 쿠폰 사업은 대형 마트가 벌이는 미끼상품 판촉 행사와 같은, 농축산물을 싸게 팔면서 소비자로 하여금 다른 상품을 구매하게 하는, 기업의 소비자 기만 전략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다.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참신한 농업정책 필요

2023년도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 정책 예산은 1690억 원이나 편성된 반면, 올해 158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던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사업'과 72억 원 예산으로 추진됐던 '초등돌봄교실 과일 간식 지원사업' 등은 2023년 정부예산안에서 '전액 삭감'의 결말을 맞았다. 소비자 지향적 정책인 동시에 국민건강, 환경보전 등 사회적 가치구현과 미래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지원됐던 사업들이다. 이 두 사업에 대한 정부의 내년 예산이 아예 사라진 것이다.

(해당 예산 삭감 건으로 논란이 일자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9월 23일 “초등학생·임산부 농산물 지원사업은 농식품바우처 사업과 통합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편집자.)

이 뿐만이 아니다. '농식품바우처 실증연구 사업'은 정부가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에서 올해와 같은 89억 원을 배정받았다. 해당 사업은 소비자 복지(인간다운 최소한의 소비생활 보장)를 향상시키고 소비자 중심의 농식품 정책이 확대될 수 있는 기반 사업임에도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배정받았다. 정부가 복지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복지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형태가 '바우처'다. 바우처 지급은 소비자의 먹거리 보장은 물론 시장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선택권도 보장하는 정책이다. 식량안보 지수를 높이고 먹거리 보장과 소비자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선 농산물 가격 안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생산 중심 일변도에서 벗어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이익 보호를 위한 정책으로 농정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생산자 및 소비자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면, 당연히 공영도매시장의 농산물 거래 제도부터 먼저 손을 봐야 한다. 다양한 유통 주체에 의한 경쟁적인 거래체계만이 가격 안정 정책에 부합할 수 있다. 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9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여야정이 모여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관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추경호 경제부총리,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김성환 정책위의장,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밥상 농산물 안정화, 생산자 및 소비자 운동의 방향

식량안보 대책의 핵심은 밥상 농산물의 안정화고, 농산물 공급 및 가격 안정은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따라서 정부는 농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심의의결권을 가진 위원회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참여도를 높이는 한편,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소비자 운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의 시책만 기다릴 수는 없다. 생산자 및 소비자 단체도 직접 나서야 한다. 구체적으로, 도매시장관리운영위원회에 생산자와 소비자 참여 보장을 요구하고, 농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책을 공론화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또한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 정책을 소비자 커뮤니티형 공동구매 지원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주요 소비자 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동체지원농업을 소비자 커뮤니티형 공동구매 사업과 연계하여 새로운 생산자 및 소비자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소비자 커뮤니티형 공동구매는 가격 안정에 대한 정보 공유는 물론, 소비자 복지 증진, 생산자에게 안정적인 판로 제공, 계약재배 및 가치소비와 연계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지역 소비자 커뮤니티는 대개 꾸러미 단위로 식재료를 주문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과정에서 계약재배 당사자인 생산자와 소비자는 농산물 적정가격은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 서로 생각을 나누게 된다. 아마도 생산비(경영비) 기준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유통단계를 줄이고 지속적인 계약재배 및 농산물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생산자 및 소비자 단체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간역할을 하는 이들 단체에게는 공영도매시장 내 물류 공간이 제공될 필요도 있다. 생산자에게는 물류비를 지원하고, 소비자에게는 공동구매한 금액의 20%를 지원하는 등,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정책을 촉구해야 한다. 참신한 정책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요구하자.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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