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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러 온 게 아닌, 마치 놀러 온 사람처럼 대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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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하러 온 게 아닌, 마치 놀러 온 사람처럼 대하더라" [인터뷰] 화물차 운전기사 김지나 씨

1908년 미국 뉴욕 한 피복회사의 열악한 작업장에서 146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불에 타 죽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분노한 여성노동자 1만5000명이 1908년 3월8일 뉴욕 한복판에 모여 여성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쳤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 바로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입니다.

현재를 사는 한국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요.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의 통계를 살펴보면, 2021년 여성 고용률은 51.2%, 남성 고용률은 70%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61%)보다 한참 낮은 수준입니다. 또한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OECD 가입을 했던 1996년부터 26년째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 9000원을 받는 셈입니다.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노동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편견과 차별까지 견뎌야만 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특히 여성 노동자가 적은 '남초 직군'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은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일터는 각기 달랐지만, 이들이 느낀 차별과 편견은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철도 정비원, 화물차 기사, 타워크레인 기사, 조경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추레라'. 트레일러라고도 불리는 25톤(t)짜리 화물차다. 실제로 보면 높고 큰 트럭의 중압감에 압도된다. 몇 개의 발판과 손잡이를 밟아야만 올라갈 수 있는 높은 운전석, 그 자리에 여성 화물 노동자가 있다. 부산에서 수·출입 컨테이너 운반을 하고 있는 김지나 씨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 신항 근처 화물차 주차장에서 김 씨를 만났다. 화물차에 탄 그는 누구보다 크고 강인해보였다. 화물연대 부산서부지부의 지부장이기도 한 그는 마초적인 화물차 특유의 남성중심문화를 "'내가 낸데' 하는 마인드로 돌파했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그가 속한 부산서부지부 400명의 화물 노동자 중 여성 노동자는 3명에 불과하다. 직장을 가져본 적 없는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는 2016년 집안의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자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 기술이 없어 고민하던 김 씨는 유일한 기술이었던 운전을 활용했다. 그는 "가진 기술이라고는 운전밖에 없어서 운전 쪽을 막연히 생각했는데, 내 친구 남편이 화물차를 하고 있었고 내 사촌동생도 막 화물차를 시작했다"며 "다들 화물차 운전을 하니 자연스럽게 '나도 화물차 운전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큰 차를 몰고 싶었다"고 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현실은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다. 화물차 운전면허를 막 딴 초보에다 여성이라는 이유가 붙었다. 같은 초보여도 남성이면 취업을 했지만, 여성은 조작이 미숙할 거라는 편견이 따라왔다. 그는 "정말 취업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운이 좋게 고용기사(차를 구매하지 않고, 차주에게 고용되어 운행하는 형태)로 두 달 정도 일을 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동료 기사로부터 '옷 그렇게 입지마라', '머리 풀고 다니지마라' 등 '선 넘는' 참견을 들어야 했다. 그는 "마치 내가 자기 소유물인 것처럼 내게 명령을 했다"고 했다.

한 번 시작된 '참견'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은 급여가 너무 적어서 차주에게 임금을 올려달라고 말하며 협상을 했다. 차주는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오히려 다른 동료가 김 씨에게 "이 새끼야 네가 뭔데 임금 얘기를 하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건 내 권리인데, 그 사람이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자꾸 부딪혔다"고 김 씨는 말했다. 결국 고용기사로의 일을 그만두었다. 자기만의 방처럼, 자신만의 트럭이 갖고 싶었다.

결국 김 씨는 빚을 내 그간 가정형편이 어려워 구매할 수 없었던 '추레라'를 구입했다. 자신만의 트럭을 몰면서 김 씨는 당당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추레라'가 김 씨에게는 "일터이자 무기"였다.  여전히 차별과 편견은 남아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어려움이 따라왔다. 느닷없는 프로포즈를 받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 남자 동료들이 똑같이 일하러 나온 사람이 아니라, 마치 놀러 나온 사람처럼 대했다"며 "아무 때나 '툭툭' 가볍게 대해서 진짜 자괴감이 들었다"고도 했다. 여성 화장실조차 존재하지 않던 일터의 문제도 있었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동료들이 다른 남자들과 똑같이 '동료'로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 씨는 "참 희한하다. 나는 다른 동료들이 이성으로 안 보인다"며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밖에 생각이 안된다. 그런데 남자들은 나의 존재를 '여자'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하겠나? 그는 '선 넘는' 동료들의 차별과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거 성희롱이다"라고 지적해주기도 했고,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김 씨는 "그 사람을 계속 봐야 하는데 계속 불편한 상황이 연출 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며 "남성중심의 문화에서 남자들이 여자의 이야기를 안 들어봤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일터를 지켜낸 김 씨는 화물연대 부산서부지부 지부장으로 당선됐다. 화물연대 부산서부지부 최초의 여성 지부장이다. 남성 조합원들이 400명인 가운데,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는 "내가 하는 걸 보고, 열심히 하니까 인정해 준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여성 화물노동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김 씨는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냥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부산 신항에서의 여자 화장실 문제도 그렇고, 꾸준히 요구하니 바뀌고 있다"고 했다.

"여자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가 여자라는 걸 숨길 수도 없지않나. 당당하게, 여자답게 살자."

아래는 김 씨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다들 화물차 운전을 하니 자연스럽게 '나도 화물차 운전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김지나 : 최대 26.5톤까지 실을 수 있는 트렉터, '추레라'를 몰고 있는 김지나라고 한다. 수출입 컨테이너를 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 화물차 중에서는 가장 큰 트럭에 속한다. 화물연대 부산서부지부의 지부장도 겸하고 있다.

프레시안 : 몇 시에 하루를 시작하나.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김지나 : 아침 7시 쯤 출근한다. 차가 크다 보니, 시동을 건다고 바로 갈 수 없다. 그래서 한 시간 정도 워밍업을 해줘야 한다. 더구나 차가 연식이 좀 되어서 장거리도 어렵고, 추위를 많이 타서 윗 지방에는 못 간다(웃음). 부산 내에서 수출입 컨테이너를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화물차 운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지나 : 2016년, 집안의 경제사정은 안 좋아지고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내가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 전까지는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고민했다. 가진 기술이라고는 운전밖에 없어서 운전 쪽을 막연히 생각했다. 내 친구 남편이 화물차를 하고 있었고 내 사촌동생도 막 화물차를 시작했다. 다들 화물차 운전을 하니 자연스럽게 '나도 화물차 운전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큰 차를 몰고 싶었다.

프레시안 : 자녀들은 엄마의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을 때 가족의 반응이 어땠나.

김지나 : 다들 아들이어서 어릴 때는 화물차를 몬다고 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현장에 와서 큰 화물차를 보니까 '엄마가 이 큰 차를?'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프레시안 : 화물 운전을 하는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가. 비율이 궁금하다.

김지나 : 부산 서부지부에는 그래도 여자가 있는 편이다. 저희 지부에만 총 400명 정도의 화물 노동자가 속해있는데, 여자는 3명이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1%밖에 안 될 것 같다. 그래도 이게 좀 많은 편에 속하고, 우리 지부에 속하지 않은 분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이전에는 진짜 찾아보기 어려웠다. 부산 신항 안에서는 저보다 오래 일한 여자 분이 계셨는데, 그분하고 저 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명, 한 명씩 보이기 시작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똑같이 일하러 나온 사람이 아니라, 마치 놀러 나온 사람처럼 대했다"

프레시안 : 장거리 운전을 하는 화물 노동자의 고충은 그래도 알려진 편이라면, 부산 신항 내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일을 하면서 고충은 없었나.

김지나 : 장거리 한 탕은 운전을 오랫동안 해서 컨테이너를 하루에 한 개만 옮기는 일이라면, 우리는 수출신항에서 수출입용 컨테이너를 하루에 열 몇개 씩 옮긴다. 운전 말고도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화주 쪽에서 수출하는 컨테이너, 그리고 다시 반납하는 빈 컨테이너의 문을 우리가 일일이 다 열어봐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갖다줄 때도 확인하고, 갖고 가서도 확인하고, 부두에 반납할 때도 검사하는 과정이 있다. 또, 반납 할 때는 세척을 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 내 기름, 내 노동, 내 시간을 내서 야적장으로 공짜로 옮겨주는 셈이다.

프레시안 : 택배 노동자들도 본인의 업무가 아닌 택배 분류 작업을 '공짜노동'으로 시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고,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 차원의 문제가 화물에서도 반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지나 : 맞다. 내 일이 아닌 걸 해야 하니까 답답했다.예를 들어 두 탕 뛸 수 있는 시간에 한 탕도 못 뛰기도 한다. 컨테이너가 더럽거나 해서 문제가 생기면, 한 시간 걸려서 실은 컨테이너를 내리고 새로운 컨테이너를 다시 적재하기 위해 또 한 시간을 써야 한다. 그 시간은 아무도 비용을 책정해주지 않는 시간이다.

프레시안 : 화물노동자들이 고질적으로 겪는 문제 중 화장실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부분은 여성이라서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김지나 : 요즘에는 그래도 여자 화장실이 생긴 편이다. 과거에는 신항 부두 내에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 몇 천평 되는 큰 부두 안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화장실은 멀리 있으니 남자들은 노상방뇨를 하기도 했다. 보고 싶지 않은 장면도 봐야 할 때도 있었다. 부두 쪽에서 상하차 대기를 할 때는 화장실이 없다. 긴급한 경우를 대비해서 플라스틱 통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화장실이 해결돼야 하니까 항상 그 스트레스가 있다.

프레시안 :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보니 외국에서는 여성 화물 노동자들이 쓸 수 있는 '여성 소변기'같은 것을 팔기도 하더라.

김지나 : 저도 그것을 검색해 봤다. 남자처럼 서서 용변을 볼 수 있게 돼있더라. 그것을 써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웃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못 쓸 것 같아서 구매는 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겠지만, 남초 집단인 '화물판'에서 마초적인 분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일터에서 만난 편견과 차별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지나 : 처음에 남자 동료들이 나를 좀 가볍게 대했다. 똑같이 일하러 나온 사람이 아니라, 마치 놀러 나온 사람처럼 대했다. 본인들도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러 나왔고, 나도 똑같이 내 생계 때문에 일을 하러 나온 건데. 아무 때나 '툭툭' 가볍게 대해서 진짜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내가 그렇게 노는 여자 같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프레시안 : '가볍게' 대했다는 게 어떤 식이었나.

김지나 : 제가 원래 잘 웃는 편이다. 모든 동료들에게 똑같이 인사하고 그랬는데, 느닷없이 프러포즈가 쑥 들어온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이런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뭘 한 것도 없다. 그냥 동료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을 하더라. 그래서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왜들 그러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제가 화물연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니까 그런 일들은 끊어졌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내가 낸데' 이런 마인드로 돌파했다. 여자인 내가 나인데 어떻게 하겠나."

프레시안 : 이번 기획을 통해 철도 정비를 하는 여성 노동자도 인터뷰를 했는데, 그 분도 자신을 '동료'로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는 점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지나 : 그러니까. 참 희한하다. 나는 다른 동료들이 이성으로 안 보인다. 주변에 동료라곤 남자밖에 없는데, 내가 이성으로 봤으면 사고가 났겠지.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밖에 생각이 안된다. 그런데 남자들은 나의 존재를 '이성'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처음에 '고용기사'(차를 구매하지 않고, 차주에게 고용되어 운행하는 형태)로 한두 달 정도 생활했다. 차주한테 고용되어서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당시 동료 기사가 제게 '옷 그렇게 입지마라', '머리 풀고 다니지마라'며 마치 내가 자기 소유물인 것처럼 명령했다. 일하면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급여가 너무 적어서 차주랑 임금협상을 했다. 차주가 흔쾌히 임금을 더 올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이 새끼야 네가 뭔데 임금 얘기를 하냐'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건 내 권리인데, 그 사람이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자꾸 부딪혀서 그만 두었다. 내가 지 마누라도 아닌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였다. 

프레시안 : '마누라'여도 그렇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짜증날 것 같다. 견디기 힘든 순간이 많으셨을 것 같다. 기억나는 순간이 있나.

김지나 : 사실 돈이 없어서 처음에는 화물차를 사려고 하지 않았다. 고용기사로 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초보에다가 여성이라는 편견이 겹쳐 차주들이 나를 고용하지 않았다. 똑같이 화물차 면허를 땄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작이 미숙하다고들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취업을 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육아도 장애물이 됐다. 나는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해야하니까 장거리 운전은 어려웠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차를 찾는데 그런 조건에 맞는 일자리는 구하기 더 어려웠다. 취업 자체가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화물연대 국보지회장님이 자신의 차를 두 달 정도 탈 기사를 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일 자체를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빚을 내서 차를 샀다. 남자 초보도 있지만, 여자 초보는 특히나 일 구하기가 어렵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마주쳤던 차별이나 불평등을 어떻게 대했나.

김지나 : '내가 낸데' 이런 마인드로 돌파했다. 여자인 내가 나인데 어떻게 하겠나. 대놓고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스타일이다. 한 번은 '그거 성희롱이다' 이렇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무슨 중범죄자 취급을 받은 것처럼 되게 기분 나빠했다. 그게 아니라 내 입장에서는 그 사람을 계속 봐야 하는데 계속 불편한 상황이 연출 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혹시나 그 분이 내 기분을 모를까봐 불쾌감을 표시하고 성희롱이니 하지 말라고 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분은 즉시 그 자리에서 '몰랐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분들도 있었다. 계속 동료로 지내고 싶어서 조언을 해주는 건데 반응들이 제각각이다.

프레시안 : 참 어려운 부분이다. 동료로 계속해서 봐야 하는데, 성희롱이나 부적절한 표현들을 지적해주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했나.

김지나 : 어쩌겠나. 화물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따로 일하기 때문에 괜찮은데, 다른 일로 같이 봐야 하는 순간이 생기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한다. 업무는 업무대로 해야 하니까.

프레시안 : 성적으로 불쾌감을 준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지내야 한다는 일이 참 괴로운 일이다. 화물일도 고될텐데….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노동자들 중 여성으로서 책 잡히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한다거나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여성들도 있었다. 지부장님은 어떤가.

김지나 : 나는 오히려 더 나를 드러내는 편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나만의 표시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오빠'라는 호칭도 저는 잘 쓰는 편이다. 남자들은 형, 형님이라는 호칭을 다 쓰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여자도 옛날엔 형이라는 호칭을 썼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여자인 게 좋고 형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한데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몇 년 동안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 오빠라고 하니까 지금은 괜찮아졌는데, 처음에는 남자들도 좀 어색해 하는 게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오빠라고 부르면 '둘이 무슨 사이냐'고 묻기도 했다.

프레시안 : 여성으로서 나의 모습을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를 나대로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김지나 : 일부러까지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나를 나대로 드러냈다. 살아남으려고 센척하고 남자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여자처럼 행동하지마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뭘로 보이냐. 나 여자다. 여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 그럼 나보고 지금 위선적으로 살라는 거냐. 받아들이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프레시안 : 주변에서 한 마디씩 할 때마다 힘들거나 외롭진 않았나.

김지나 : 계속 스트레스는 받는다. 잊어버리려고 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니까. 여자라는 걸 계속 의식하는 것 같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바꾸진 못하지만, 그냥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설명해줘야지.

프레시안 : 이런 스트레스를 함께 풀 공동체나 상대가 있나.


김지나 : 지금은 없다. 혼자 스스로 해결한다. 워낙 성격이 솔직한 편이라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푼다. 뒤끝 없이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프레시안 : 그래도 일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김지나 : 항상 자부심을 느낀다. 남자밖에 없는 곳에서도 이렇게 살아남았다. 어느날 터미널에서 우연히 두 명의 젊은 화물차 기사를 마주쳤는데, 그들이 화물차 기사를 할까 고민을 했는데 내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뿌듯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안전운임제가 사라지자마자 곳곳에서 운임을 깎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편견과 차별을 뚫고 화물연대 부산서부지부 지부장으로 당선됐다.

김지나 : 획기적인 일이다. 내가 하는 걸 보고 열심히 하니까 인정해 준 거라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이 선거를 통해서 뽑은 거니까. 그만큼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믿는다.그리고 제가 복이 있다고 해야하나. 열심히 일하는 제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프레시안 : 지난 화물연대 파업 이후 조합원들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하다. 그 이후 윤석열 정부는 노조에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김지나 : 실망을 많이 했다. 저도 그때 총파업을 접으면서 조합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얻은 게 아무것도 없어서. 고생을 그렇게 했는데 안전운임제가 폐지됐다. 조합원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울면서 큰 절을 했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후유증이 오래가더라. 저도 그런데 조합원들이야 오죽하겠나. 실망한 나머지 이탈자도 발생했다. 정부가 갈수록 강경하게 나오니 현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

프레시안 : 안전운임제가 사라진 현장은 어떤가.

김지나 : 안전운임제가 사라지자마자 곳곳에서 운임을 깎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미 계약을 끝낸 물량의 운임을 10퍼센트(%) 깎자고 한 적도 있다. 수수료를 올리기도 했다. 부산 서부권에 있는 한 운송사는 총파업 직전부터 운임을 깎으려 했는데, 화물연대가 버티고 있으니까 손을 못 대고 있었다. 그런데 총파업이 딱 끝나자마자 운임을 깎아버렸다. 조합원들도 총파업이 그렇게 끝나버리니,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 정부가 화주 처벌 조항을 뺀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지나 :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최소 10년 이상 통일성이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3년 해서는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당당하게, 여자답게 살자"

프레시안 : 일터는 평등하다고 생각하나.

김지나 : 평등하지 않다.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다.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형성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평등한 일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지나 : 여성 화물 노동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냥 주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부산 신항에서의 여자 화장실 문제도 목소리를 내니 바뀌었다. 꾸준히 요구하니 조금씩 바뀌고 있다. 화물 운송 문화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게 느껴진다. 서로 몰랐던 부분을 대화를 통해 알아가게 되기도 한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남자들이 여자의 이야기를 안 들어봤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설명을 해서 이해를 시키면 '맞네' 이렇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여자가 여자의 권리를 위해서 계속 얘기를 해야한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김지나 : 내가 원하는 만큼의 노동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는 게 목표다.

프레시안 : 그걸 가능하게 하는 화물차는 지나 씨에게 어떤 존재인가.

김지나 : 나의 일터이자 무기다. 화물차 덕분에 든든하고 당당하다.

프레시안 :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김지나 : 여자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가 여자라는 걸 숨길 수도 없지않나. 당당하게, 여자답게 살자.

▲<프레시안>은 지난 2일 부산을 찾아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지나 씨를 만났다.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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