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윤석열 정부에서 과연 노동이나 고용 정책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윤석열 후보의 노동 부분 대통령 공약에는 근로시간 유연성을 확대하고,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내용들이 있다. 현재의 근로기준법은 <20세기 공장법> 방식으로 확일적이며 경직된 근로시간 및 임금 규정을 하고 있어,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적 근로시간의 정산 기간을 현재의 1~3개월에서 1년 이래로 확대하고, 연간 단위의 근로시간저축 계좌제를 도입하며, 정규직을 유지하면서 풀 타임을 파트타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신청권을 부여하고, 신규로 설립된 스타트업 분야를 연장근로시간 특례업종과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도 현재의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가치와 성과를 반영하는 "세대상생형" 임금체계로 개선하는 등 이미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 중심의 노동 개혁을 천명하였으니, 취임 1년 뒤에 구체화해서 발표한 정책들이 후보 시절에 약속한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이해 해야할까? 아니면, 그 공약들이 주당 69시간을 일하도록 하는 것인지는 모르고 윤석렬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스스로에게 자책해야할까? 사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나 취임 초기부터 의심스러운 징조들이 다수 있었다. 대통령은 갑자기 미래노동시장연구회라는 자문조직을 급조하여 노동계를 배제하고 편향된 전문가들과 관료 중심으로 노동개혁을 준비하더니, 지금까지 반노동의 전면에 서 있던 김문수 전 지사를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노동계와 사회적 대화를 포기하는 선언을 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를 상징하는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과, 2차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포장한 강경 대응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자 노동개혁의 방향을 노조 때리기로 전환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당 69시간 노동이라는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노동계를 적으로 규정하는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전쟁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근로시간 연장 가능하기는 한가?
수출 규모 세계 7위를 달성하고, 한때 코로나19 판데믹 시기에는 이탈리아와 영국을 능가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이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근거하여 유지되지 않는다. 고도화한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는 주 40시간이 아니라, 주당 35시간 근무를 포함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노동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는 해외 선진국들의 발전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고, 학자들의 주장이다. 현재도 주당 52시간 연장근무가 가능하고, 아이스크림 공장과 같이 계절별 특수성을 가진 직종의 경우에는 하계 성수기를 앞두고 3개월 연속 근무를 해야 할 경우에는 11시간 의무 휴식제를 적용하여도 이미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이 제도는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재인 정부가 도입했다. 2020년 2월 경사노위에서 합의하여 2021년 입법이 된 탄력근무제와 R&D부분의 경우 특수성을 인정하여 3개월 동안 연장근무를 허용한 선택근로제도의 도입, 그리고 일본의 소부장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연장근로 신청에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등 우리나라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유연근로시간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용자들도 윤 대통령의 주 69시간 근무에 대해서는 "뜬금없다"는 입장이다. 유연 노동 도입 논의는 게임개발자나 프로그램 개발회사 등 마감 시간에 쫓겨 '크런치 모드'라고 불리는 시기에 장시간 집중 근무가 필요한 특수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산업 분야에서 산업혁명 초기인 1800년대 영국에서나 적용되던 주당 69시간 근무를 도입하겠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특히 각종 조사와 연구에서 청년 세대들은 승진이나 연봉보다도 워라밸을 더 중시하고, 재택근무를 더 선호하며, 수입이 줄어들어도 짧은 노동 시간과 안전한 근로 환경을 선택한다는 것이 이미 알려져 있는데, 정부가 일부 사용자들의 요구를 과도하게 증폭하거나 확대해석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노동계를 제물 삼아 보수 세력 내부 단결을 꾀하고, 노동운동 억압과 비난으로 중산층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적 목적을 지녔다고밖에는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없다. 지금의 국회 의석 상황에서 주당 69시간에 이르는 근로시간 연장 관련 법이 통과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주말 표출된 노동계의 집단 행동에서 보듯 앞으로도 정권 유지가 힘들 정도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이미 흘러간 대처주의나 레이거노믹스와 같은 신자유주의 부활을 지금 꾀하는 이유도 궁금하지만, 그러한 정무적 판단을 하고, 효용성 없는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핵심 세력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철 지나간 근로시간 연장 주장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만큼 여유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는 노동시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해마다 2000개 넘게 문을 닫고 있는 어린이집 문제에 당면했다. 교육부는 학령기 인구 감소로 초, 중, 고등학교의 교사가 남아도는 상황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어떻게 개편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국방부는 병력 자원 확보에 실패해 일부 사단과 군단 축소를 넘어 60만 대군 전력을 모병제와 획득사업 강화를 통해 20만 명으로도 유지 가능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당연히 산업계에서도 노동력 감소라는 노동력 양적 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조선산업은 30년 치 선박 건조 물량을 수주하고도 배를 만들 인력을 구하지 못하여 수주를 포기하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물량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산업 부문에서 로봇 도입 수준이 2위 보다 한참 앞선 탁월한 세계 1위를 달성한지 오래지만, 외국인 노동력의 도입은 아직 3D 분야와 농업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도 코로나19로 급감한 상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력은 아직은 저임금의 단순생산직과 서비스직에 한정되어 있어, 선진국들이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고급 노동력의 국내 유치 정책은 노동부와 법무부 모두 생각을 못하고 있다. 노동의 질적 문제는 더 심각하다. 4차 산업 혁명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산업현장에서 이들을 적용할 기술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네, 카, 라, 쿠, 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라고 하여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IT기업군들은 자신이 필요한 전문인력들을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끌어들이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성과 중심의 연봉 체계, 재택근무 도입, 엄청난 사내복지제도 등 각종 보상체계와 유연한 근무 체제를 자랑해 Z세대가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당근마켓, 토스, 직방, 야놀자를 합친 '당토직야'도 인기라고 한다. 반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많은 직장인이 해고되면서 고용 불안정 위기감이 커진 1990년대 후반부터 신의 직장으로 떠올랐던 공무원 인기는 사라지고 있다. 올해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31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정도로 최근 공무원 인기는 시들해졌다고 한다. 임금이 적더라도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요구가 워라밸과 삶의질에 대한 요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당면한 노동 문제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중간급 관리자들은 회식도 싫어하고, 야근도 않겠다는 신입사원들이 낯설겠지만, 이사급 이상의 경영진들은 낮은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창조적 제품을 개발하는 근로자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로 경직된 기업 문화가 지적된다. 업무 집중도가 낮고, 단순 반복 작업은 익숙하지만 창조적 노동은 해본적이 없는 근로자들이 구글이나 아마존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이 입주한 건물 내에 직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당구대와 전자오락 시설을 갖추고, 업무 시간 중에 명상수업을 받으러 가거나 요가와 헬스를 권하는 직장 문화는 그저 수입이 남아돌아 돈질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연간 3만 개의 특허를 생산해내는 기업,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신기술 기업들의 경영은 다른 세계의 일이 될 뿐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노동 문제는 기업 내부 노동 문화의 문제다. 업무 정의서(job description)나 업무 절차서도 없어 담당 직원이 바뀌면 업무의 연속성이 사라지는 회사에서 고도의 노동생산성은 기대할 수 없다. 출퇴근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실적을 어떻게 올리는지가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업무 평가는 상사와의 친밀도나 동료 직원들의 세평으로 이루어지는 승진과 보직 발령은 능력 있는 직원을 나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위험은 외주화가 아니라 정규직 숙련 노동자를 배치하여 오히려 내주화해 해결하는 경영이나, 하청은 2차 밴드 이상은 못하도록 하는 법이 있는 나라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자동차의 4차 밴드 임금 수준은 원청의 40% 수준이다. 4차 밴드까지 무조건 원청 근로자의 80% 수준의 연봉을 보장하는 원-하청 관계를 정립하여 부품 회사로 하여금 원청 기업뿐 아니라 해외 동일 업종의 기업에도 납품하도록 하는 상생관계를 정립하는 다른 나라의 기업문화를 남의 나라 사례로 생각한다면 더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않을 것이다.차기 정부 노동분야의 정책과제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는 최저임금 인상에만 매몰되어 있다가, 후반부에는 코로나 19 대응으로 시간을 모두 보내면서 산적한 노동계의 과제가 해결되지 않고 현 정부로 넘어왔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는 명확하다. 소모적인 근무시간의 문제를 가지고 시간과 국력을 낭비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정년 연장을 넘어, 기업 아카데미 등을 10만 개 만들어 기존 2700만 명의 경제활동 인구들을 재교육해서 새로운 산업분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중소기업에서 근무해도 기업복지가 아니고 국가복지를 통해 대기업 수준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복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가장 높은 여성 고등교육 이수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서도 안전하게 고수입이 보장되도록 하는 방안, 외국의 고급 노동력을 국내로 모셔오는 방안 등 노동 부분에서 국회와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뭐가 중한데? 라는 영화 <곡성>에 나오는 대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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