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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아닌 몸으로 소통하는 기후위기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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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아닌 몸으로 소통하는 기후위기 대안 [초록發光]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414 기후정의파업
그간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데 언어는 중요한 무기로 간주되어 왔다.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는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를 비전문가들도 이해하게끔 전달해 대중이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하도록 이끌 방안을 연구한다. 사람들이 에너지 절약 행동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캠페인 메시지를 만들고, 복잡한 에너지 문제를 몇 가지 주장으로 쉽게 요약해내고,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들을 모아나가는 데 언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간 언어라는 무기는 생각보다 효과적이지 못했다.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개인들은 자신을 압도하는 문제 앞에서 기후 우울에 빠지곤 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기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향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언어에 기반한 공론장이 좁아지는 와중에 정부와 기업은 생태파괴를 녹색성장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기후위기를 전달하는 말(텍스트 또는 기호)들은 혼란스럽게 제멋대로 배치됐다. 누군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말들이 보이지 않는 정치 담론에 의해 배치됐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담론을 기획하여 담론 투쟁에 나서야 한다. 나도 이러한 주장에 십분 동의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어쩌면 우리가 사용하던 언어 및 이성 중심의 사회과학 언어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진 것은 아닐까? 나를 비롯한 뭇 생명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되는 새로운 조건에서 기존 세계의 언어가 힘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당신의 몸을 미래에 데려간다면

언어의 위기 시대에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행동경제학적 전략이 유행이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배달앱은 "첫 구매 시 99% 할인", "첫 구매 시 1만 원 할인" 등의 파격 혜택(?)을 제공한다. 합리적 소비자인 나에게 이는 굉장한 이득일 것 같다. 그렇다면 쇼핑몰은 손해일 텐데 왜 이런 프로모션을 하는 걸까? 예상할 수 있다시피, 이는 상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인혜택을 받으러 앱 회원에 가입하고 해당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경험은 머리뿐 아니라 신체에 각인되어 휴리스틱(Heuristic) 경로를 만든다. 첫 번째 구매는 어색했지만 머릿속에도 몸에도 경로가 이미 생겼으므로 두 번째부터는 굉장히 쉽다. 이러한 전략은 당신의 몸을 미래에 데려다 놓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준다(이 문단에서 언급한 행동경제학, 휴리스틱, 신체에의 각인 (또는 체현), 체험의 효과는 각기 뿌리가 다른 이론에서 빌려온 것임을 밝힌다.). 기후위기가 도래한 미래에 가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엉뚱한 질문에 답하기에 이달 7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전 세계 현대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예술 축제이다. 이번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본 전시 이름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다. 생태적인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전시된 현대 미술 작품들은 그동안 사회과학자들이 말로 다투어왔던 주제들을 감각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제3세계가 인식하는 식민주의, 우리가 몸의 언어를 잃어온 이유, 자연과 사회의 분리가 의미가 없는 이유 등 환경사회학 연구자들이 끙끙대는 지점을 작품들은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들을 수 있는 ‘몸’의 언어로 바꾸어놓았다. ‘예술알못’인 나도 개막일에 들렀다가 그 재미에 이끌려 사흘을 광주에서 보내고 왔다. 기후위기를 몸에 새길 수 있는 대표적인 전시는 '세대 간 기후 범죄재판소 : 멸종전쟁'이었다. 세대 간 기후 범죄재판소(CICC, Court for 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는 '세대 간 기후범죄법'에 근거하여 설치된 재판소다. 한반도의 동지들은 멸종한 동식물 동지들과 함께 기업과 정부를 기소한다. 기업과 정부는 멸종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다. 관람객은 전범재판이라는 상상적 경험 속에 참가한다.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미리 가본 것 같다. CICC라는 이름에서는 세계 유일의 전범 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연상된다. 예술 퍼포먼스에서는 참호, 모래주머니, 철조망의 전쟁 설치물, 재판을 진행하는 법학자(라다 드수자), 국내 생태기후투쟁 현장에 참여한 증인들의 현재성 등이 뭉개진다. 기후위기 거버넌스가 모두 실패하는 경우 결과적으로 우리가 전쟁 상태에 가까워질 것임을 직면하게 만드는 이 힘의 정체는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미술관의 찬 공기와 모의법정의 엄숙한 분위기이다(이미 2019년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전쟁기의 대응수준에 준하는 전지구적인 자원 동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하는 또 다른 사례는 이번 4.14 기후정의파업이었다. 4.14 기후정의파업은 세종정부청사 건물들 주위를 도는 행진으로 진행되었다. 세종정부청사에는 수십 개의 건물이 연이어져있다. 정부청사관리본부는 "과거의 관료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시위대의 눈에는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관료집단처럼 느껴질 뿐이다. 금요일 오후에 모인 4000명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건물을 충분히 에워쌀만한 규모였다. 산자부 울타리에 피켓을 붙이며, 환경부 앞에서 연기를 피우며, 경찰들이 정한 선을 넘으며 "사람들이 더 모이면 정부관료체제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온한 상상이 시위대 사이에 피어오른다. 4.14 기후정의파업에서 그 어떤 주장보다 파괴적이었던 지점은 정부청사를 따라 걷던 참가자들의 몸에 새겨진 경험과 건물 사이에 피어난 상상력에 있지 않을까.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몸의 역할

많은 기후위기 연구논문은 서론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어떻게 언급해야 기후위기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현 상황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는 것이 앞으로도 가능할까? 언어에는 문법과 지식체계에 맞아야 한다는 규율이 작동하기에 상상을 구체화하는 힘이 부족하다. 언어가 학식자 계층과 기존 질서에 유리한 것도 상상력을 제한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진지한 대응을 하자고 언어로만 대중을 설득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몸의 역할에 주목한다. 존재의 위기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현실인식을 위해서는 몸으로, 함께,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상이 절실하다. 이성의 언어와 복잡한 사회과학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 제시하는 데에 난항을 겪고 있는 이 때에, 예술과 시위는 우리가 언어의 함정에서 나와야 한다고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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