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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파업’ 이후의 길을 밝혀주는 이름, 치코 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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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후정의파업’ 이후의 길을 밝혀주는 이름, 치코 멘데스 [장석준 칼럼] '빈자(貧者)의 환경주의'를 위하여
작년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노동자당 룰라 후보가 승리하길 염원한 지구인들의 가슴 속에는 검붉게 타오르는 아마존 열대 우림의 처참한 모습이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야금야금 파헤쳐지던 숲을 기후위기 와중에 더욱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한 보우소나루 정부는 단지 먼 타국의 미친 극우 정치 세력만은 아니었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을 위해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재앙이었다. 다행히 대선 2차 투표에서 룰라가 승리했고, 새 정부의 첫 번째 약속은 열대 우림 보호였다. 그리고 이 역사적 순간에 브라질 안팎의 많은 이들은 새삼 벅찬 감회로 한 이름을 떠올렸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와도 긴밀히 얽힌 그 이름은 치코 멘데스(Chico Mendes)다. 치코 멘데스는 아마존 밀림의 고무 채취 노동자였고, 동료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해 고무 채취 노동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열대 우림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숲을 태워 기업형 농장이나 목장을 만들려 하는 대지주들에게 이런 멘데스와 동지들은 눈엣가시였고, 결국 총탄으로 답했다. 1988년 12월 22일 멘데스는 자기 집에서 부인과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암살당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낯설기만 하지도 않다. 미국 영화감독 존 프랑켄하이머가 연출한 멘데스의 전기영화 <버닝 씨즌(The Burning Season)>(1994년)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치코 멘데스'라는 이름까지는 몰라도 유명한 배우 라울 줄리아가 맡았던 고무 채취 노동조합 지도자의 이미지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만이 아니다. 노래도 있다. 폴 매카트니는 때로 존 레논도 깜짝 놀랄 법한, 직설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곡을 내놓곤 했는데(예를 들면, 1972년에 발표한 '아일랜드를 아일랜드인에게 돌려줘라(Give Ireland Back to the Irish)'), 1989년에 낸 앨범 <쓰레기 속의 꽃들(Flowers in the Dirt)>에 실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How Many People)'도 그런 곡이다. 매카트니 특유의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노래이지만, 가사는 바로 1년 전에 살해당한 멘데스의 삶을 노래한다. 그런가 하면 벨기에의 트로츠키주의 혁명가, 이론가 에르네스트 만델은 1992년에 잇달아 사망한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설적 지도자 빌리 브란트와 녹색당 창당 주역 페트라 켈리를 기리는 글을 뜻밖에도 멘데스 이야기로 끝맺는다.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녹색 정치의 한계를 짚으면서 만델은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의 운동과 숲을 지키는 운동을 하나로 결합시켰던 멘데스의 삶이 대안의 실마리를 보여준다고 적었다(“Petra Kelly and Willy Brandt”, <New Left Review> 1992년 11-12월). 그리고 이제는 우리말로도 이런 찬가와 풍문의 주인공을 생생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멘데스 자신의 회고를 동지였던 토니 그로스가 기록한 <나, 치코 멘데스: 숲을 위해 싸우다>(이중근, 이푸른 옮김, 틈새의시간)가 최근에 출간된 것이다.
▲<나, 치코 멘데스 - 숲을 위해 싸우다>(치코 멘데스토니 그로스 지음, 이중근이푸른 옮김) ⓒ틈새의시간

노동자의 삶과 숲을 동시에 지키다

<나, 치코 멘데스>는 멘데스가 초등학교도 못 다닌 평범한 농촌 노동자에서 사회운동 지도자로 성장한 과정을 상세히 전한다. 그런데 멘데스의 유년 시절을 고백하는 대목을 읽다 보면, 어떤 기시감이 든다. 어디에선가 이미 본 듯한 이야기. 그렇다. 룰라의 전기도 첫머리가 거의 비슷했다. 이것은 룰라와 멘데스만의 묘한 인연은 아니다. 둘이 속한 브라질 민주화운동, 사회운동의 한 세대가 살아온 공통의 삶이다. 태어난 해도 거의 비슷하다. 멘데스는 1944년생이고, 룰라는 1년 뒤인 1945년에 태어났다. 멘데스는 아마존 밀림 깊숙이 자리한 아크리 주에서 났고, 룰라는 대서양 연안인 페르남부쿠 주 출신이다. 거리로 따지면, 페루와 인접한 아크리와 동부 해안 지역인 페르남부쿠는 대륙의 양 끝이라 해도 좋을 만큼 멀다. 그러나 두 주 다 가난한 저개발 지역과 동의어인 '북부'로 분류된다. 고무를 채취하던 멘데스 가족, 빈농이던 룰라 가족 모두 브라질 사회의 최빈층이었다. 다만, 룰라 가족이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남부 대도시로 이주한 것과 달리 멘데스 가족은 고향에 남았다. 그리하여 청년 룰라가 상파울루 인근 공업지대에서 금속 노동자로 일하게 된 그 무렵에 멘데스는 아버지를 이어 고무 채취 노동자가 됐다. 고무 채취 노동자는 노동자이기는 하되 참으로 특이한 형태의 노동자였다. 겉으로만 보면, 이들은 산림 자원을 채취하는 자영업자에 가까웠다. 본래는 거대한 고무농장들이 있었고, 노동자는 농장주에게 부채 노예 형태로 예속돼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국제 시장에서 동남아시아산 고무에 밀리자 농장주들은 고무농장을 직접 경영하길 포기했다. 더 이문이 남는 작물을 재배하거나 육우를 사육하는 목장으로 전업하려 했고, 이를 위해 숲을 불태웠다. 지금도 계속되는 밀림 파괴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고무농장은 사라지더라도 고무 채취 노동자는 남았다. 그들은 농장이 문을 닫은 뒤에도 밀림을 떠나지 않고 고무나무들과 함께 남았다. 그들은 가족 단위로 고무를 채취한 뒤에 중개상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일정 지역에서 고무를 채취하는 대가로 해당 지역의 지주(대개 전업을 추진 중이던 예전 고무농장주)에게 지대를 바쳤다. 중개상과 지주는 도시의 고용주와 별반 다르지 않게 체계적으로 고무 채취 노동자의 피를 빨아 부를 축적했다. 1990년대 어느 때에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접했다면, 아마 금속 노동자 룰라의 투쟁담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만큼이나 이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마존 밀림의 고무 채취 노동자가 살았던 삶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플랫폼 노동자가 살아가는 삶과 무척 닮았다.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 겉은 자영업자에 가깝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플랫폼 소유업체가 직접 고용주와 다를 바 없이 이들을 착취하고 감시, 억압한다. 멘데스와 동지들의 투쟁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고무 채취 노동자와 아마존 선주민의 관계도 흥미롭다. 고무농장에서 일하던 시절에 고무 채취 노동자는 농장주와 마찬가지로 선주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고무 채취 노동자들이 가족 단위로 작업하게 된 뒤에도 한 동안 둘 사이의 관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교류가 늘고 문화가 섞였으며 함께 가정을 꾸리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숲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간 공동체였다. 처음에는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숲은 이 성가신 잡음조차 품어 화음으로 탈바꿈시켰다. 누구보다도 멘데스야말로 이런 만남과 대화, 연대를 평생의 원칙으로 삼아 사회운동을 일군 인물이었다. 그는 도시에서 도망쳐온 좌파 활동가들과 만나며 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서며 공업지대에서 새롭게 성장하던 노동운동과 발맞춰 농촌 노동자들의 운동을 조직했고 그 일부로서 고무 채취 노동자들의 조직을 결성했다. 1980년에는 노동자당 창당에 참여하여 노동조합운동과 정당 활동을 병행했다. 그리고 동료 노동자들에게 선주민과 연대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숲을 불태우며 기존의 모든 생명을 제멋대로 추방하려 드는 지주의 공격 앞에서 그들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종국에 연대의 품은 열대 우림 자체로까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 사회가 한창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며 헌법도 새로 만들고 1년 뒤에는 오랜만에 대통령 직접선거(이 선거에서 룰라가 처음으로 바람을 일으킨다)도 실시하기로 한 격랑의 해 1988년에 멘데스는 대지주들에 맞서 숲을 지키는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투쟁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둘은 하나였다. 이 무렵 멘데스의 비전은 공유지(커먼스)로서 고무 채취 보존 지역을 확보하고 고무 채취 노동자들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여 보존 지역의 관리를 맡게 하자는 데까지 나아갔다. 단지 중개상과 지주에게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는 수준을 넘어 노동자와 선주민 그리고 숲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기득권 세력이 도저히 참아줄 수 없었던 게 바로 이런 구상이었다. 그들은 브라질 우파가 빈민가의 으슥한 곳이나 밀림에서 즐겨 사용해온 해결 방식, 즉 암살을 선택했다(불과 5년 전인 2018년에도 사회주의자유당 소속 시의원이며 성소수자인 마리엘 프랑코가 암살당했다). 대지주 일가가 고용한 총잡이들이 치코 멘데스를 쓰러뜨렸다. ― 이것이 <나, 치코 멘데스>에 실려 40여 년만에 우리에게 도착한 아마존의 거대한 서사시다.

가난한 자들의 환경주의를 위하여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많겠지만, 노르웨이 정부가 2004년부터 시상하는 홀베르그상은 인문사회과학계의 노벨상이라 할 만한 권위 있는 상이다. 위르겐 하버마스, 고(故) 브뤼노 라투르, 마사 누스바움 등이 역대 수상자다. 올해 이 상은 스페인의 생태경제학자 호안 마르티네즈-알리에르에게 돌아갔다. 마르티네즈-알리에르는 1960년대부터 선구적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환경 파괴의 긴밀한 연관 관계를 파헤쳐온 학자다. 현재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펼치는 탈성장 연구 그룹(요르고스 칼리스 외, <디그로쓰>, 우석영 외 옮김, 산현재, 2021)이 대개 그의 제자뻘 되는 인물들이다. 그런 그의 대표작 제목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주요 개념이 '빈자(貧者)의 환경주의'다. 마르티네즈-알리에르는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저서 <빈자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of the Poor>(2002년)에서, 가난한 이들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는 일이 환경 보호와 충돌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결합될 수밖에 없는 과제임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서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난개발에 맞서는 '빈자의 환경주의'야말로 가장 완강하며 효과적인 환경운동 세력이라고 지적했다. 빈자의 환경주의는, 말하자면 치코 멘데스가 걸었던 그 길이다. 이제 2주일 뒤면 4월 14일(금), 기후정의파업의 날이다. 각지에서 정의로운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릴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수만 명이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섰던 작년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에 이어 이번에도 각성한 기후 시민들이 서로의 존재를 더 많이, 더 활기차게 확인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위가 끝난 그 다음부터일 것이다. 기후 시민들의 다음 과제는 무엇인가? 기후재앙의 가장 심각한 잠재 피해자들과 함께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 스스로 구상하고 추진하며 관리하는 재생에너지 협동조합들이 곳곳에서 생겨나야 한다. 한 여름 폭우가 지나간 뒤에야 눈길을 받는 기후재앙 피해자들을 미리 조직하여 대책을 요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운동들이 가시화되어야 '기후악당' 대한민국 정부도 꿈쩍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빈자의 환경주의가 시급히 필요하다. 한국 풍토에 바탕을 둔, 가난한 이들의 기후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수많은 '치코 멘데스'들이 아마존 열대 우림만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도 부활해야 한다.
▲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 ⓒ프레시안(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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