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내려 내년 총선 출마를 막았다. 반면 징계 심의 전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한 태영호 의원에게는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내렸는데, 총선 출마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는 수준의 징계라는 점에서 '솜방망이 징계'라는 뒷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황정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장은 10일 오후 윤리위 전체회의가 끝난 뒤 이같은 의결 결과를 밝혔다. 징계 사유는 김 최고위원과 태 의원 공히 당 윤리위 규정 제20조 제1항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제20조 2항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윤리규칙 제4조 제1항 "당원은 사리에 맞게 행동해야 하며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에 대한 위반이다. 태 의원은 앞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김일성이 시킨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편 데 이어 4.3 관련 단체들의 비판에도 개인적 소신이라며 이같은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지난 1일 문화방송(MBC) 보도로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과의 '공천·당무개입 대화 녹취록'이 보도되며 큰 파장이 일었다. 태 의원은 자신이 이 수석이 실제로는 하지 않은 말을 보좌진과의 대화에서 지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황 위원장은 태 의원 징계 결정 이유에 대해 "이 정무수석이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대통령 대일정책을 옹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발언해, 마치 대통령 비서실이 국회의원 공천에 개입하고 당무에 속하는 최고위원 모두발언 방향까지 지시하는 것으로 오인하도록 잘못 처신했을 뿐 아니라, 이런 발언이 녹음돼 외부에 알려지게 하는 등 관리·감독을 소홀히해 당의 위신과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설명했다. 태 의원의 4.3 관련 실언에는 "4.3 사건이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주장은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결과와 유족의 명예를 보호하는 법률의 취지에 반하고, 4.3 희생자 유족을 모욕해 국민 통합을 저해했다"고, 그의 'JMS 민주당' 발언에 대해서도 "공당을 중대한 문제가 있는 특정 종교인이 속한 종교단체와 연관지어가며 부적절한 표현을 섞어 비난했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에 대해서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국민의힘 정강정책임에도 당 지도부 일원으로서 정강정책에 반함은 물론, 품격 없는 발언을 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국민 통합을 저해했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전당대회 직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예배에 나가서 했던 '5.18 정신 헌법전문 반영 반대'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데 이어 '전광훈 목사가 우파를 천하통일했다', '제주 4.3은 격이 낮은 기념일' 등 연이은 설화를 일으켰다. 황 위원장은 또 김 최고위원의 '전광훈 목사 우파진영 천하통일' 발언에는 "당이 마치 특정 종교인의 영향 하에 있다거나 그의 과도한 주장에 동조한다는 인상을 줘서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당원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줬다"고 했다. '4.3은 격이 낮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4.3이 소홀히 다뤄진다는 오해를 초래, 유족회와 관련 단체 등에 상당한 모욕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국민 통합을 저해했다"고 징계 결정 이유를 밝혔다. 황 위원장은 "이번 사안과 같이 반복되는 설화는 외부적으로 심각한 해당(害黨)행위이고, 내부적으로는 당 지도부 리더십을 스스로 손상한 자해 행위"라며 "새 지도부 출범 직후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지는 못할망정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행위를 반복해 전당대회로 심기일전을 하려는 당이 국민 지지와 신뢰를 잃게 했고 1년도 남지 않은 총선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악재가 됐다"고 중징계 불가피 사유를 밝혔다.
황 위원장은 "당의 최고위원이라면 그에 걸맞는 높은 품격을 갖추고 일반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그렇기에 당원이 직접 선출한 최고위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윤리위는 합당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민심이라는 물 위에 떠 있는 정당은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선거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윤리위 규정' 21조에 규정된 징계의 종류는 △ 제명 △ 탈당 권유 △1개월 이상 3년 이하 당원권 정지 △ 경고다. 내년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윤리위가 열린 만큼, 이번 심의의 관건은 총선 출마를 불가능하게 할 '당원권 정지 1년 이상' 징계가 나올지였다. 형식상 당원권 정지는 기간을 막론하고 중징계에 해당하지만,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는 '진짜 중징계'로, 태 의원에 대한 징계를 '사실상 경징계'로 볼 수 있는 이유다. 태 의원은 "당 윤리위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반면 김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서 "저를 지지해 주신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다. 앞으로도 당과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서 계속하겠다"고 했을 뿐 징계 수용 의사를 뚜렷이 밝히지는 않았다. 국민의힘 윤리위 규정 26조에 따라 징계 재심 청구는 징계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해야 하고, 윤리위는 30일 이내에 재심 의결을 해야 한다.
태영호의 3개월 정지가 '정치적 해법'?…太 '녹취록' 파장 우려했나
당초 여당 주류인 친윤계에서는 김 최고위원과 태 의원에 대한 강한 비토 분위기가 있었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4일, 8일 최고위를 연달아 취소하며 이들을 공개 석상에서 사실상 '격리'시켰다. 특히 대통령실에 부담을 지운 태 의원에 대해 '윤핵관'으로 꼽히는 이철규 사무총장은 지난 4일 기자들에게 "본인이 있지도 않은 말을 함으로써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선캠프 대변인 출신인 김병민 최고위원도 지난 7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태 의원에 대해 "공천에 대한 모든 권한이 대통령실, 이른바 용산에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발언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도 태 의원이 총선 출마에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의 징계를 받은 데는 그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저는 더 이상 당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한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황 위원장은 지난 8일 윤리위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 해법이 등장한다면 거기에 따른 징계 수위는 여러분이 예상하는 바와 같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주혜 윤리위 부위원장도 이날 기자들에게 태 의원의 최고위원 사퇴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오늘 징계 수위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 의원이 총선 출마까지 막히는 등 궁지에 몰릴 경우, '공천·당무개입 대화 녹취록'에 담긴 이진복 수석 발언이 사실이라며 '같이 죽자'고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징계 양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8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기가 너무 심한 징계를 받아서 내년 총선에 출마를 못 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면, 자기가 보좌진들한테 했던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문제 발언이 사실이라고 뒤늦게 고백을 해버리면 문제"라고 했었다. 어떤 이유에서 비롯됐든, 태 의원 징계를 두고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치권 원로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전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최고위원, 태 의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1년 징계가 나올 것 같다'는 전망에 "총선을 그나마 치르려면 그 정도도 안 해서 될까"라며 "그 정도도 안 하면 국민들이 징계했다고 받아들이겠나"라고 했다. '공천·당무개입 대화 녹취록'의 실체에 대한 추가 조사 없이 '녹취록에 담긴 말은 지어낸 것'이라는 태 의원의 주장에 기초해 징계가 내려진 점도 논란의 불씨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태영호 의원의 최고위원직 사퇴는 대통령실의 공천개입 의혹을 덮으려는, 눈 가리고 아웅하겠다는 작태"라며 "잘못을 뒤집어쓰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되, 윤리위 징계는 내년 총선 공천의 길을 터주는 정치적 거래로 보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했다. 향후 지도부 구성도 국민의힘에 숙제로 남았다. 김 최고위원이 끝내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그의 최고위원 자리는 1년 동안 비었다가 징계 기간이 끝난 뒤 다시 김 최고위원에게 돌아간다. 태 의원의 최고위원 자리는 '궐위' 상태가 됐다. 국민의힘 당헌 27조 3항에 따라 선출직 최고위원 궐위 시에는 사유발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전국위원회에서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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