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무서웠니? 어린 시절 공원에서 길을 잃었던, 그때의 그 공포만큼 힘들었니? 서서히 사그라졌던 너는 얼마나 외로웠니? 너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너무 당연해서 말하지 못했던 그 말... 사랑한다. 아가야."
편지가 낭독되자 유족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희생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몇몇 유가족이 그를 안고 달래봤지만 울음은 그보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눈을 감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남성, 이윽고 고개를 젖히고 오열하는 여성.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손으로 써 붙인 피켓 속 자필문구가 이들 눈물의 경위를 설명했다. 작별조차 못하고 아이를 떠나보낸 지 200일이 지났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촛불 하나 들고 유족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울고 있었다.
16일 저녁,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00일 추모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같은 날 1박 2일간의 '양회동 열사 정신 계승, 민주노총 건설노조 총파업 결의대회'에 돌입한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의 건설노동자들도 촛불을 나눠 들고 추모제에 함께 연대했다. 지난 노동절 정부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끝에 사망한 고(故) 양희동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열사정신 계승' 머리띠를 두른 건설 노동자들이 유가족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날은 지난해 10월 29일 참사 발생일로부터 200일, 그리고 지난 2월 유가족들이 서울광장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설치한 날로부터 100일이 지난 "두 번째 100일"이다.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된 지 200일"이 지났지만, 거리 위 유족들은 여전히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그 골목에서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고 있다. 영정과 위패를 갖춘 합동분향소는 서울시의 철거 계고 대상이 되어 변상금을 요구 받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독립적 진상규명 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정쟁을 위한 도구"라며 그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차례의 면담 요구는 모두 묵살되었고, 그렇게 유족들의 요구가 정치에서 '패싱' 당한 사이 그들을 향한 일부 세력의 혐오와 조롱은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희생자 고(故) 송채림 씨의 아버지 송진영 대행은 "단 10일 만에 국회 국민동의청원 정수 5만 명을 달성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21대 국회 사상 최대 다수 의원의 동의로 발의된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그것이 '정쟁법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단 1명도 (법안 논의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라며 "정말로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정쟁으로 삼는 건 누구인가, 바로 여당 국민의힘 아닌가" 되물었다.
이 같은 정부의 '패싱' 속에서 200일의 시간을 거리에서 버텼다. 유족들은 "시민들과 또 다른 참사 피해자들의 연대"가 그럴 수 있는 힘을 줬다고 강조해 말했다. 송 대행은 특히 이날 건설노동자들이 추모하고 있는 양희동 열사의 유가족들을 언급하며 "지난 3일 양희동 열사의 가족 분들이 국민의힘 당사 앞 우리 농성장을 방문해 연대의 말씀을 나눠주셨다"라며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방문이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서 지난 2일엔 송 대행을 포함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양 열사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과 위로를 전한 바 있다. 송 대행은 또한 "4.16 세월호 참사, 5.18 광주 민주화운동, 그리고 다른 많은 참사의 피해자들도 찾아뵙고 함께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가협 측 30여 명의 유가족들은 제43주년 5.18 기념행사의 주최 측 초대를 받아 오는 17일부터 1박 2일간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송 대행은 "정부의 무책임을, 그 몰염치와 탄압을 이겨내고 정의를 찾아내는 길에 있어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미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던 건설노조 측에서도 연대의 말을 나눴다. 박만영 건설노조 강원건설기계지부장은 "지난해 10월 29일 서울한복판에서 159명의 안타까운 젊은 우리 국민이 죽임을 당하는 참사를 당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 국민이 이에 분노하고, 의리를 지키며 잘못됐다고 (제대로) 싸워봤나" 물으며 "이제는 우리가 싸울 때다. 의리 있게 힘 있게 싸워보자"고 제안했다. 앞서 같은 날 오후엔 이태원 유가족협의회가 참사 희생자들에게 올리던 159배에 고인이 된 양 열사를 위한 1배를 더해 '애도와 진실의 160배'를 진행하기도 했다. 연대로 키워진 힘은 책임을 방기하거나 책임 이상의 힘을 휘두른 '국가'를 겨누고 있다. 박석운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대표는 "이태원 참사 당시엔 경찰, 검찰이 응당 발휘했어야 할 공권력을 방기함으로써 결국 159인의 아까운 생명이 희생됐다. 그런데 건설노조의 경우, 경찰과 검찰이 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공권력 남용하고 왜곡하여 결국 고 양희동 동지와 같은 억울한 죽음 만들었다"라며 "정반대의 방식으로 '잘못 행사된', 극히 모순적인 공권력이 두 참사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슬픔과 절망에도 하루하루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멈추지 않고 이렇게 우리 앞에서 맞서 싸워주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결국 함께 연대하며 살아야 한다는 배움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유가족 여러분을 결코 홀로두지 않겠습니다."
이날 문화제는 시민 합창단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꾸민 30분간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유가족이 떠나간 희생자에게 보내는 답장 받을 수 없는 편지, 건설노조 측이 유가족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연대의 편지 등이 합창단의 노래와 함께 현장에서 낭독됐다. 많은 유족들이 공연 중 눈물을 터뜨렸지만, 눈물을 나눈 그들은 공연이 끝나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수를 치며 감사를 전했다.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건설노동자들의 편지에는 "양 열사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이 자리 있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추모제를 진행한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이날의 촛불을 이렇게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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