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고 청년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다. 성공회대학교에 다니는 우리들도 청년이다."
대학교 캠퍼스 광장에서 작은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무지개 팔찌를 차고 광장에 나온 학생들이 '청년·청소년 회복 콘서트'를 이유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서울시의 '차별행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청년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있다." 국내 최초로 기획된 대학교 교내 퀴어퍼레이드가 20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나눔관 광장에서 개최됐다. 행사를 주관한 성공회대 미니퀴어퍼레이드 조직위원회는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나에게 광장을 내놓지 않는다면,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이 축제를 기획했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우리의 광장을 보고 배우십시오."
차별행정 논란을 일으킨 서울시에 대해 이날 학교 광장에 모인 학생들이 내놓은 전언이다. 서울시는 앞서 지난 5월 서울시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회의를 통해 2023 서울퀴어문화측제 측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리던 서울퀴어문화축제는 해당 조치로 인해 서울광장을 포기, 내달 1일 을지로에서 열릴 예정이다.
차별을 규탄하고자 기획된 행사였지만, 이 행사조차 비슷한 차별에 부딪히기도 했다. 학내 광장에서의 집회·결사의 권리는 학내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유롭게 열려있는 권리지만, 막상 성소수자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부 학생들은 반대의사를 표하고 혐오성 공격을 퍼부었다.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익명 게시판엔 "(퀴어 행사는) 더럽고 역겹다", "퀴퍼 날에는 (원숭이)두창 걸릴까봐 학식을 못 먹겠다"는 등 혐오표현 게시물이 600여개나 올라왔다. 일부 학생들은 '(퀴퍼 반대는) 혐오가 아니라 다수결'이라는 논리를 들어 교내 퀴퍼 개최에 대한 찬반 총투표 발의 서명을 모았다. 학교 측은 중재를 명목으로 '행사를 보류하라'는 총장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추후 철회하기도 했다. 최보근 성공회대 인권위원장은 이날 행사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최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라며 "그럼에도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총학생회 비대위가)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집담회를 준비했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행사를 지지했으며 반대하던 소수 학우들도 당위성을 공감했다"고 행사 개최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번 미니퀴어퍼레이드에 주관단위로 참여한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학생회 '닿음'의 윤영우 회장은 "미디어콘텐츠 학부 학생회가 퀴퍼에 연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소수자는 미콘 학부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퀴퍼 개최는) 학생 권리보장과 복지라는 익숙한 권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역시 주관단위로 참여한 성공회대 실천여성학회 '열음'의 오은송 씨는 "학교 구성원 누구라도 이용이 가능한 광장에서 퀴퍼가 허용될 수 없다면, 그건 학교가 성소수자를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고, 성소수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란 뜻"이라며 "오늘의 행사를 시작으로 (성공회대는) 차별과 혐오가 없는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학교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축제는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후 부스행사, 수다회 및 공연을 거쳐 저녁 광장 행진까지 긴 시간 이어졌다. 학내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만큼 규모는 지역 퀴어문화축제보다 작았지만, 대부분의 행사 구성은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주최 측은 외부인 혹은 취재진들을 대상으로 입장 카드를 발급해 연대나 취재 목적의 외부인 방문도 허용했다. 이에 현장엔 장애인 이동권 시위 등을 주제로 서울시의 차별행정을 규탄하고 있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참여해 연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장애는 치료의 문제가 아닌 차별철폐의 문제고, 성소수자의 문제도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 철폐의 문제"라며 "혐오와 차별에 맞서 당당한 연대 투쟁으로 살아있는 권리를 쟁취하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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