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미국 뉴욕주 의회는 '공공 재생에너지 건설법(Build Public Renewables Act)'을 통과시켰다. 2023-24년도 예산에 반영된 이 법은 뉴욕주의 전력 공기업인 뉴욕전력청(New York Power Agency)에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등을 건설, 소유, 운영할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공 부문에 대한 재생에너지 공급 목표, 나아가 뉴욕주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달성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이 법 제정으로 뉴욕주가 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하고 전력산업을 사적 소유에서 공적 소유로 전환하는 주요 단계를 확보했다고 평가하면서 "뉴욕은 '역사적' 기후 승리에서 재생에너지를 향한 큰 발걸음을 옮겼다"고 기사 제목을 뽑았다. 뉴욕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수력을 제외했을 때 크지 않은 상황이다. 2020년 현재 뉴욕주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가스(40.1%)과 핵(29.1%)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개발해온 수력의 비중(23.8%)은 비교적 크지만, 풍력과 태양광은 각각 3.8%와 2.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은 뉴욕주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달성에 회의감을 야기했다. 뉴욕주 의회는 2019년에 '기후 리더십 및 공동체 보호법'을 제정하면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70%, 그리고 2040년까지 100%로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의무화한 바 있기 때문이다. 뉴욕주의 시민들이 나섰다. 이 법 제정을 위해서 20개 이상의 기후, 공동체, 시민 단체들과 수 천 명의 자원활동가들이 모여서 '공공 전력 뉴욕(Public Power New York: PPNY)'이라는 캠페인 기구를 만들어 캠페인을 펼쳤다. 특히 지역 환경정의 단체뿐만 아니라, DSA(미국민주적사회주의자)와 같은 정치단체의 활발한 활동도 있었다. 또한 공공서비스산업, 교사와 대학 교원, 자동차산업 노조들의 지지도 있었다. 이들은 재생에너지 개발을 공공 부문이 맡아야 빠른 속도로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좋은 녹색일자리 창출과 저렴한 에너지 요금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따라 PPNY는 공적으로 소유된 100% 재생에너지 전력, 녹색 노조 일자리, 증가하는 에너지 요금 저감을 목표로 하는 미국 내 "가장 큰 기후 및 녹색일자리 법안"을 마련했다. 이 법안을 지지하는 의원을 통해서 의회 내 입법 논의를 진행하면서, 4년간의 대중 설득, 노조의 지지 확보, 선거 참여, 거리 시위 등 지속적인 캠페인 끝에 법 제정에 성공했다. 제정된 법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짚어야 할 점이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들이 그렇듯, 1990년대 말 뉴욕주도 전력시장이 자유화되어 여러 민간 발전사들과 전력 공급업체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도 전력도매 시장이 자유화되어 민간 발전사가 존재하지만, 송배전과 판매 부문은 여전히 한전에 의해서 소유·운영되고 있는 상황과는 대비된다. 뉴욕전력청은 주정부가 1931년에 세운 전력공기업으로 주로 수력발전을 중심으로 발전설비를 소유운영하면서 주 전체 전력의 20%를 생산하고 주정부 공공건물 등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민간 발전사들 및 전력공급업체들과 경쟁하고 있고, 그들의 견제와 압력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확대하고 더 많은 전력 공급 소비자에게 저렴한 요금을 제공하려는 시도들이 가로막혀 있었다. 이 법이 뉴욕전력청에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건설과 일반 가정에도 전력 공급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의미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민간 전력사들의 외면과 태만을 비판하면서 공기업에게 적극적인 역할과 권한을 맡기겠다는 뜻이다. 이 법안의 제안자들은 사익 추구에 맞서 공익을 지키려 설립했던 뉴욕전력청의 역사, 전력산업 건설․운영의 경험과 역량, 그리고 민주적 통제될 수 있는 지배구조를 이용하고 싶어 했다. 뉴욕전력청은 현재 가장 저렴한 전기요금을 제공하는 공기업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또한 건정한 재정에 따른 높은 신용도로 저렴하게 자금을 동원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공기업이라는 지위로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공적 자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평가하였다. 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뉴욕전력청은 2030년까지 자신이 공급하는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한다. 2031년부터 모든 주정부의 건물들에, 그리고 2036년부터는 산하 모든 지자체 건물에 재생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또한 기후 리더십 및 공동체 보호법의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 현황을 점검하여, 민간 기업들의 투자가 부족할 경우에 뉴욕전력청이 직접 투자하여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확대해서 이를 메우도록 했다. 이런 내용을 포함하여, 2년마다 업데이트하는 '10개년 기후 및 회복력 계획'을 수립하고 주감사관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연례보고서를 발간하도록 규정했다. 한편 뉴욕전력청이 피크 부하에 대응하기 위해서 소유․운영하는 천연가스 발전소는 2030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온실가스 뿐만 아니라,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이 발전소들은 유색인종 등의 사회적으로 차별되는 지역에 위치해 환경부정의 시설로도 인식되었다. 이 천연가스 발전소를 포함하여 폐쇄되는 비재생 전력설비의 노동자들은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교육․훈련받으며, 뉴욕전력청의 새로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고용될 기회를 얻는다. 뉴욕전력청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와 공공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 프로그램을 위해서 고용된 노동자들은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적정한 임금의 일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법은 뉴욕전력청이 초과되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일반 가정과 집단적 구매자(CCA 공동체)에게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중에 중저소득 가구에는 시중 요금의 50% 이하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에너지 효율화 프로그램, 재생에너지 인력 개발 등에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지역에 우순선위를 부여하고, 전력청의 이사회를 비롯하여 여러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들을 대변하는 이들의 참여를 보장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서 노조의 참여도 강조하고 있다. 법 제정 이후, PPNY는 이사회가 제대로 구성되도록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뉴욕주의 공공 재생에너지 건설법 제정은 코로나 재난을 겪으면서 주목받고 있는 '국가의 귀환', 혹은 '공공성 확대'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시장과 기업 중심의 기후위기 대응책에 매달리는 한국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동시에 해결하는 '공공 경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발전노동자들에서부터 청소년기후 활동가까지 한국에서도 '공공 중심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한 연구팀도 구성되어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도 뉴욕과 같은 승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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