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청소년 대상 '성 인권 교육' 사업을 내년부터 폐지하기로 한 것이 확인됐다. 여성계에선 '지금도 성평등 교육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져온 가운데, 성평등 전담부처인 여가부가 "오히려 성평등에 반하는 정책과 예산을 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가부에서 제출받은 2024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여가부는 올해 5억 5600만 원 규모였던 성 인권 교육 사업 예산을 내년부터는 전액 삭감, 해당 사업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성 인권 교육 사업은 학생 스스로 성적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성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초·중·고교 장애 및 비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2013년 시작된 사업이다. 교육을 희망하는 학교에 교육 강사를 파견하는 방식의 사업으로, 정규교육과정은 아니지만 청소년·장애인 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네스코가 국제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포괄정 성교육(CSE)과도 그 취지가 맞닿아 있다. 여가부는 교육 대상 인원의 감소와 다른 부처 사업과의 유사성을 사업 폐지의 이유로 든다. 여가부는 7일 발표한 해명자료에서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 인권 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학교보건법에 따른 의무교육으로서의 폭력예방교육과 분명하게 구분되지 못하고 있다는 외부 지적이 있었다"라며 "현재에도 일부 시·도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었으나, 지자체 수요 감소가 더해져 내년도 예산을 감액하게 됐다"고 밝혔다. 여가부는 또한 장애 학생에 대한 교육과 관련해서는 "보건복지부에서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유사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으며, 앞으로의 교육 대안으로는 "찾아가는 폭력예방교육 등을 통해서 관련 교육이 계속되도록 추진하고, 교육부 및 보건복지부와도 협력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현장에선 '성평등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만큼, 여가부 측이 대안으로 제시한 폭력예방교육이 성 인권 교육 폐지의 이유가 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7일 성명을 내고 여가부의 예산 삭감 결정에 대해 "성 인권 교육은 학생들이 성적 주체로서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하거나 받지 않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라며 "성 인권 교육을 강화해도 모자를 판에 사업 폐지와 예산 삭감이 웬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육계, 여성계 등은 피임·상호동의·안전·위생 등을 포괄하는 '성'에 대한 논의와 교육이 현재 교육현장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해왔다. 현행 교육과정이 △개인의 자기결정권 등 성적 권리 △성별 혹은 성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과 폭력의 방지 등을 적극적으로 교육하지 못하고 '남녀 신체에 대한 생물학적 특성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치거나 "순결 혹은 폭력예방에만 치중"하는 교육에 멈춰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7일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위한 총선 젠더정책'을 발표하고 "(현행 교육체계에서) 성평등 교육은 교육부의 여러 부서에서 나누어 담당하고 있어 이를 총괄하는 전담기구가 부재해왔다"라며 △인권· 성평등 교육의 의무화 △초·중등교육법 등에 성평등 교육 총괄 추진 기구 설치 법제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및 교육 관련 제도 내 차별금지 관련 항목 신설 △학생인권기본법 제정 △유네스코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근거한 성교육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2024년 정책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또한 지난해 5월 '안전하고 성평등한 학교를 위한 10대 요구안'의 첫 번째 조건으로 "포괄적 성교육의 도입"을 꼽았다. 유네스코가 2018년 도입한 '포괄적 성교육(CSE)'은 △성평등에 기초한 교육과 △성과 관련된 의사결정, 소통, 협상 등 '건강한 선택'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교육하는 것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측은 성명에서 "(여가부가 제시한) '찾아가는 폭력 예방 교육'은 대상이 전 국민이고, 내용상 왜곡된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교육이나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 다양한 성적 권리를 담기 어렵다"라며 "그동안 일부 동성애혐오세력이 성 인권 교육사업을 공격한 바 있다는 점에서, 성 인권 교육 사업 폐지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인권을 방치할 우려도 크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여가부 측의 이 같은 '성평등 교육 약화' 움직임이 "윤석열정부가 출범부터 현재까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성차별을 외면하고 여성가족부마저 없애려 한 연장선에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정부 부처 곳곳에선 성별, 성정체성에 따른 '구조적 차별'을 강조하는 성평등 교육이 "약화되고 있다"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고 있다. 지난해 국가교육위원회는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권 등 성평등 교육의 주요 키워드가 삭제된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안을 심의·의결하고, 그 과정에서 '섹슈얼리티' 등의 용어를 추가로 삭제하면서 성평등 지우기 논란을 일으켰다. 서울시의회는 주민발의에 의해 청구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검토, 지난 3월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는데, 당시 주민발의를 주도한 단체들은 해당 조례가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 방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7일 젠더정책 토론회에서 "일련의 상황들은 그간 성평등 교육·가치를 주변화해왔던 총체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한다"라며 "성평등 교육의 의무화와 함께 이를 추진·확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프로세스 마련, 조례의 한계를 넘어 상위 규범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 제·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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