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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에 페미니스트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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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에 페미니스트가 왔다 [조금 특별한 '페미' 연대]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
중고령 청소노동자들의 고통은 노동 문제일까, 여성 문제일까? 두 해전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했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기숙사 건물 곳곳을 쓸고 닦고, 음식물과 재활용 쓰레기 600~700리터를 매일 계단으로 운반했다. 게다가 억압적 노무 관리 속에 관리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밝혀졌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생산성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 중심의 노동환경을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중고령 여성 노동자'의 몸에 맞게 재구성된 노동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잘 상상되지 않는다. 작년 초부터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 휴게실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해당 내용을 기사로 보고 요구 조건이 너무 소박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신임 총장의 입장이 너무나 강고해서 저 소박한 요구안조차 관철시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소식이 이어서 들렸다. 사회는 청소노동자들의 주요 정체성을 노동자가 아니라 엄마, 아내, 며느리로 소환한다. '반찬값 버는 노동'이라며 이들의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게다가 청소노동자의 업무 역량이나 숙련도는 제대로 존중받지 못해서, 10년을 일해도 호봉이나 승진이 사실상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시에 우리사회는 '공부 안하면 청소부 된다'는 말이 통용되는 사회다. 그만큼 청소노동자는 직업 위계가 낮은 직군이다. 종일 먼지와 땀범벅 속에서 쓸고 닦은 대가로 임금을 받지만, 청소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부끄러워하며 주변에 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평생 전업주부로 살며 청소, 요리, 육아부터 집안 대소사를 다 치르는 노동을 하고도, '집에서 노는 사람'이나 '남편 돈을 쓰는 사람'이라며 부끄러워하는 것과 약간 닮았다.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을 찾은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의 현장 활동 모습.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서울지부
주지하다시피,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성별분업 체계는 더욱 강화됐다. 가사·돌봄 노동(청소, 요리, 육아, 간병 등)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져 왔다. 억압적 현실을 '자연화'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이 모성을 여성의 '본능'으로 규정하고 자연화했듯, 여타 가사·돌봄 노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노동은 특별한 기술이나 훈련이 요구되지 않는 단순한 일이라고 평가 절하되어왔고, 임노동 시장에서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 임노동 시장 내의 가사·돌봄 노동자들은 '청소아줌마', '주방이모', '육아도우미', '간병아줌마' 등으로 불리며, 거의 대부분 60대 이상 빈곤층 중고령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평가는 임금으로 환산된다. 반대로 말해 저임금을 지급하기 위한 자본의 필수적 전략은 해당 노동에 대한 저평가다. 청소, 요양, 간병, 가사 노동자 직군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소위 재생산 노동에 대한 저평가, 중고령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와의 전면적 싸움이 필요하다. 그 싸움의 과정에서 코로나19 이후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향한 디딤돌이 놓여진다. 다시 청소노동자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현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2019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의 여성비율은 70.5퍼센트, 평균연령은 59.7세, 평균근속년수는 3.4년, 월간노동시간은 150.1시간, 월 급여는 187만 5천원이다. 청소노동자 중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20% 정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조사가 있는데, 이는 여성은 실내 청소, 남성은 건물 외벽이나 실외 청소로 직군을 정해놓는 '성별 직무분리'를 통해 여성에게 임금을 더 적게 주기 때문으로 추측된다는 보고도 있다. OECD 성별임금격차 부동의 1위는 이렇게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강고히 자리하고 있다. 동시에 부당한 현실에 맞선 청소노동자들의 투쟁도 끊임없이 있어 왔다. 언론에 자주 보도된 투쟁만 대충 떠올려 봐도 △2007년 광주시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나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투쟁 △2014년 신라대 청소노동자투쟁 △2021년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 그리고 일부 학생들이 학습권 침해라며 민사소송이 일어났던 △2022년 연세대 청소노동자 투쟁까지. 청소노동자들은 쉼 없이 부당함에 맞서 저항해왔다. 한편,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해석되고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으로 더 적극적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연대를 만들어 왔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모금에 참여하거나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힘겨운 현장을 함께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에 비해, '페미니스트 이름으로' 더 깊고 오래토록 확산되는 연대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작년 가을, 다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소식을 들었다. 노동자들이 총장실 앞에 농성장을 만들고, 몇 달 째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해결하면서 밤을 새우며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덕성여대 분회가 소속된 민주노총 서울지부 담당 활동가로부터,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너무 현실을 몰랐던 것일까, 속으로 좀 놀랐다. 나는 덕성여대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이기도 하다. 일단 지역의 페미니스트 단체들에게 연락을 했다. 긴 제안서를 써서 보냈는데, 요약하면 '페미니스트로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뭐라도 해보자'는 내용이었다. 즉각적으로 강북여성주의 문, 동북여성민우회 그리고 성산업뿌셔뿌셔서울연대 등의 단체들이 함께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이어서 소식을 들은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여성운동위원회와 플랫폼씨 페미니즘 책읽기 모임도 결합했다.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을 찾은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의 현장 활동 모습.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서울지부
우리는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이하 페미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각자의 색깔과 속도에 맞춘 활동을 펼쳤다. 사측의 탄압과 부당함을 알리는 선전전이나 기자회견을 함께하고, 집회를 조직했다. 청소노동자들에게 굳이 페미니즘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 하기보다는,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것을 느슨하게 하나씩 해나갔다.

우선 지난겨울 총장실 앞 농성장 문턱을 낮추기 위해 조합원, 학생, 교수, 지역주민들과 함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필자의 책) 북토크를 열었다. 나는 책 내용에 기반해 여성·노동자와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노동자의 건강은 헬스장보다는 부당함에 맞서는 싸움과 연대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덕성분회와 페미연대가 콜라보 집회 '여성노동자 말하기 대회'를 열었고, 덕성여대청소노동자 뿐 아니라 요양보호사, 가스검침원 등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이 이 자리에 나와 현장의 경험을 발언했다. 특히 이날 자리엔 '성산업 뿌셔뿌셔 서울연대'를 통해 새로운 직업을 모색 중인 지역의 성매매여성들도 참여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이 대회를 통해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게 됐다며, 연대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전해왔다. '강북여성주의 문'에서는 노동으로 몸이 뭉치고 휜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몸살림 수업을 열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수업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동북여성민우회'에서는 지역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덕성여대 졸업생들에게 투쟁 소식을 알렸다. 졸업생들은 개인적 지지를 넘어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졸업생 연서명을 조직하고 활동을 확장해 갔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여성운동위'는 지난겨울 한파에도 덕성여대 캠퍼스 앞 거리 선전전을 함께 하고, 덕성청소노동자들과 38비정규직여성노동자대회를 함께 했던 경험 위에서 내년 38여성파업을 제안하고 준비하고 있다. '플랫폼씨'는 페미연대 이전에도 덕성여대 선전전 등에 함께하고 있었는데, 특히 페미니즘 책읽기 모임에 함께하고 있는 다양한 학교의 대학생들은 덕성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해나갔다. 내가 속한 '다른몸들'에서는 주로 돌봄노동노동자 생애사 모임 구성원들이 연대에 함께 했는데, 60대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며 열의를 보였다. 그 외에도 작년 겨울 페미연대 회의에 참여했던 덕성여대 인근의 대안학교 교사는 몇 달 뒤 다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개최한 성평등교실에 참여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삼각산 재미난학교의 중등부 1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였다. 학생들에게 이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밥 차려주는 따뜻하고 희생적인 할머니가 아니라, 붉은 조끼를 입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하는 노년 여성의 모습이 그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을 찾은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의 현장 활동 모습.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서울지부
지난 2월, 덕성여대 투쟁 상황을 공유하고 방향을 모색하는 페미연대 회의를 덕성분회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윤경숙 분회장님이 캠퍼스를 걸으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몇 년 전 학내에 미투와 페미니스트 단어가 쓰인 대자보가 한참 붙은 적이 있어서, 그때 많이 접했어요.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페미니스트들이 잠깐 와서 힘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지속적으로 함께 연대해 주어서, 정말 고맙고 힘이 많이 되고 있어요. 그런데 조금 궁금했어요. 왜 우리 투쟁에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하는 걸까?"

그 질문을 우리는 함께 기억하면서 지난 6월 청소노동자들과 페미연대가 함께 간담회 '우리 모두의 투쟁'을 개최했다. 청소노동자 조합원들은 이 투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고, 어떤 것을 배우거나 고민하게 됐는지 이야기했다. 페미연대 참여 단위들은 각자 단체와 활동을 소개하면서 덕성 투쟁이 어떤 의미였고 이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발표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몇몇 청소노동자들은 페미연대가 함께한 이후 페미니즘 관련 뉴스를 눈 여겨 보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난 8월, 덕성여대분회와 페미연대가 함께하는 회의에서 청소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워크샵을 진행하기로 했다. 가제는 '나 60대 청소노동자, 페미니즘을 말하다!' 윤경숙 분회장님이 직접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신문 기사를 찾아 읽고 자료를 보며 준비하고 있다. 이 투쟁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시급 400원 인상과 휴게실 개선 요구로 시작되었고, 그것을 쟁취했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투쟁은 언제나 적과의 싸움뿐 아니라, 서로를 통해 변화하고 연결되며 확장되는 축제의 장이라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리고 덕성청소노동자들과 페미연대는 함께 즐거운 연대의 '판'을 확장하고 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페미연대'는 기존의 전형적 운동 방식에서 본다면 조금 이상하고 어색한 구성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어떤 운동보다 중앙과 지역이라는 위계나 이분법에 적극적으로 거리를 둔다. 중앙집중적 방식이 아닌 자율적이고 수평적 연대를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덕성여대청소노동자투쟁을 지지하는 페미연대는 이렇듯 '이상하고 특별한 연대'를 만들어 왔다.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을 찾은 '덕성여대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대'의 현장 활동 모습.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서울지부

(※다음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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