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트라우마 대처 위해 특별법 제정해야
이 위원장은 "당연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안전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 이 참사를 기억해 달라"며 "그 기억이 조금씩 모여 커진다면, 다시는 대한민국에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고 더 이상의 유가족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당일 참사 위험은) 명확히 예측됐고, 사전계획과 경고가 있었다"며 "그 예측과 경고를 인지하고 계획을 실행했다면 우리가 유가족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억울하고 분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밥 한 숟갈,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마실 수 없었"다며 "일상이 멈춰버린 하루하루는 악몽 그 자체가 되었다"고 이 위원장은 밝혔다. 이어 이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분들은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들"이라며 이 같은 한국 사회 트라우마 대처를 위해 여전히 제정되지 않은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힘줘 말했다.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윤 대통령에게 이날 오후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으나, 대통령실은 '정치 집회'라는 이유를 들어 불참하기로 했다. (☞관련기사: 尹대통령, 이태원 참사 추모집회 참석 대신 따로 추모 예배 드려)
유가족 "참사 1년 지나도록 참사의 개요, 원인, 책임, 대안도 몰라"
추모대회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었다. 2부에서는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무대에 선 이들은 눈물과 함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희생자들을 기렸다. 2부 시작으로 참사 생존 피해자인 이주현 씨가 무대에 올랐다. 이 씨는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운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그 159명은 운이 나빠서 죽어야 했느냐"며 "이게 운으로 생사가 갈려야 했던 일인가. 공공안전의 유무가 왜 운으로 바뀌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저라도 그 당시를 누구보다 선명히 계속 기억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저는 이 자리에서 항상 그분들과 함께 하겠다. 외면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저는 여기 항상 계속 서 있을 것이고 생존자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계속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씨는 한편 다른 생존자들을 향해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그 자리 그대로 계셔주셔서 감사하다. 저처럼 상황을 마주봐야 치유되는 분이 있지만 거리를 두면서 치유되는 분도 있을 것"이라며 "나중에 언젠가 조금 더 용기낼 기회가 된다면 저를 찾아와주시면 좋겠다. 저도 그분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어 참사 피해 유가족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해외에서의 연대 발언도 나왔다. 발언대에 선 시모무라 세이지 일본 효고현 아카시 불꽃축제 참사 유족은 "1년 전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피해 규모에 마음이 얼어붙었고, 현장 영상을 보았을 때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며 "다음날부터 취재진들의 취재를 통해 여러 정보들을 알게 되었고, 저희가 겪었던 사고와 너무도 유사한 부분이 많아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시모무라 씨는 "유족분들과 지원자분들과의 교류를 통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공유하게 되어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오늘 그 악몽 같은 사고로부터 1년을 맞이하며, 유족분들, 피해자분들과 이 자리에 서서 다시 한번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시모무라 씨는 지난 2001년 7월 21일 일본 아카시 불꽃축제에서 당시 2살이던 둘째 아들을 잃었다. 이 참사는 아카시시 아사기리역 남쪽 출구 방면 육교에 사람이 몰리면서 사망자 11명 포함 총 194명의 사상자가 나온 압사 사고다. 좁은 길목에 사람이 몰린 점, 경비가 소홀했던 점 등 이태원 참사와 닮은 꼴의 인재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 곁에 섰다. 김종기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9년전 1주기 추모대회를 이곳에서 했다. 9년이 지난 지금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를 하고 있다"며 "이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현실에 참담함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참사 유가족께) 힘내시라는 말조차 하기 죄송스럽다. 지난 1년의 시간이 너무나 힘든 시간임을 잘 알고 있"고 "그 길이 꽃길이 아닌 울퉁불퉁 자갈밭이고 가시밭길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그것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되지 않는 세월호 참사 10년도 그러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 정권이 유가족과 희생자를 두번 죽이는 행태를 벌이면서 뻔뻔하게도 '미리 대비했어도 못막았을 것'이라는 천인공노할 망언을 일삼고 2차 가해를 일삼고, 피해자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떠넘긴다"며 "과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맞느냐는 의심이 드는 행태를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벌이고 있다"고 분개했다. 김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여러분 곁에 저희 세월호 엄마 아빠가 있다. 다른 재난 피해자 유가족이 함께 하고 있다"며 "비록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하늘에서 지켜볼 별들을 생각하며 용기와 희망을 갖고 함께 힘내자"고 권유했다."참사 1년 되도록 시민 연대와 지지만…정부는 없어"
시민대책회의 대표단은 이날 참사 1주기를 맞아 공동선언문을 낭독했다. 추도사는 대표단의 강새봄 진보대학생넷 전국대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태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이 공동 낭독했다. 이들은 '기억, 추모, 진실을 향한 다짐'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참사 당일, 그리고 이후 그곳에는 "정부가 없었"고 "재난안전책임도, 인파관리대책도, 질서유지방안도, 응급조치대처도, 경찰도, 소방도, 지방자치단체도 그 시간 그 곳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거듭되는 사회적 재난과 참사를 겪으면서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재난 참사에 대응할 법과 제도 하나 만들지 못한 국회도 그 시간 그 곳에 없었다"고 밝혔다. 참사 이후 "159명이 하늘의 별이 되었고, 1년째 눈뜨지 못하는 부상자가 병상에 있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고, 수천 명이 심리치료를 받았고, 참사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는 와중에 "혐오와 모욕의 언어가 인터넷을 떠돌았지만 온전한 애도도, 진심어린 사과도, 도의적인 책임도, 진실을 향한 노력도, 재발방지 대책도, 희생자들의 명예회복도 지금 여기, 유가족들 곁에 없다"고 선언문은 지적했다. 다만 "그날 그 자리에는 서로를 구하고 지키려 애쓴 사람들만 있었다"며 선언문은 "그들은 지금 희생자, 생존자, 목격자, 구조자, 지역 주민과 상인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만이 지금까지 유가족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선언문은 이어 △참사의 근본 원인을 찾아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이 나올 때까지 할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정치권서도 참석…"윤석열 대통령 자리 비어" 비판
이날 추모대회에는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당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남인순 이태원 참사 특위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권은희 의원, 인요한 혁신위원장, 유승민 전 의원, 이언주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배진교 원내대표와 국회의원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가 참석했다.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에서도 당 수뇌부가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와 올가 아파나시에바 주한 러시아 대사관 영사 등 해외 인사들도 참석했다.이란에서는 5명의 참사 희생자가, 러시아에서는 4명의 참사 희생자가 나왔다. 외국인 중 가장 많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앞좌석에 착석했다. 정치인들은 그 뒤에 앉아 추모대회를 참관했다. 야당 정치인들은 정부와 여당의 대응 태도를 집중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유족들의 절절한 호소는 오늘도 외면받고 있는데 정부는 오로지 진상 은폐에만 급급하다"며 "참사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10.29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전의 대한민국과 달라야 한다"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신속한 통과로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책임만 안 지면 된다, 버티면 끝난다는 권력자들의 억지가 오송 출근길에서, 새만금 잼버리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위기로 다시 찾아와 끝없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한 시민을 위협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책무를 다하지 못한 그 무능함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우리는 국가가 최소 희생자와 유가족의 손은 잡으리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쇄신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하리라 믿었"으나 "이 순간까지도 윤석열 대통령의 자리는 비어 있다. 참사 1주기 당일까지 대통령은 사과 대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운운한다. 어떻게 참사 앞에서 재난 콘트롤타워가 '국민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냐"고 질타했다. 추모대회 중 민중가수 한선희, 유주현 씨와 웨슬리 꽃재 오케스트라, 416합창단, 한영애 밴드의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웨슬리 꽃재 오케스트라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최보람 씨의 고모가 소속돼 있다. 한영애 밴드의 공연을 끝으로 추모대회 참석자들은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사 유가족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은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를 방문했다. 주최측은 희생자 15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추모대회 참석자들도 이를 복창하며 고인들을 기렸다.본 대회 앞서 참사 현장서 기도회 열려
한편 이날 추모대회에 앞서 오후 2시부터 사전행사가 참사 현장인 지하철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4대 종교(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기도회로 열렸다. 기도회에 참석한 유가족과 시민들은 2시 40분경 기도회를 마친 후 이태원을 출발해 용산 대통령 집무실-서울역을 지나 본 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분향소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오후 4시40분경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분향소에는 오전부터 고인들을 찾는 시민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조용히 묵념하며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연신 눈시울을 훔치는 이들, 흐느껴 우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정부의 참사 후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정치인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발언을 하는 와중 박수가 이어지는 모습도 연출됐다. 추모 공연 중에는 좌중이 조용히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모습이었다. 주최측은 이날 추모대회 참석자를 3000명으로 추산해 경찰에 신고했다. 30일에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광장 분향소 서편 도로에서 저녁 7시 30분부터 참사 1주기 천주교 미사가 진행된다. 관련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달부터 매주 월요일 시국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