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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고시원 투자자→땅주인, 부자의 돈은 이렇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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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초수급자→고시원 투자자→땅주인, 부자의 돈은 이렇게 유지된다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고시원은 안전한 투자 상품?
토지대장이나 건축물대장, 토지이용계획확인서만 들고 있으면 어디라도 잘 찾아다닌다. 그런데 하루는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야했다. 자전거 한대 겨우 지날 듯한 좁은 골목길을 미처 못보고 지나쳤던 탓이다. 통화했던 사장님은 30대 후반쯤으로 추정됐다. 젊은 부부였는데, 바빠서 나와 보기가 어렵다며 관리자에게 '감정평가사가 찾아가니 안내를 부탁하노라' 전달해놓겠다고 했다. 관리자인 총무는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단번에 알아보고, 어서 들어오시라면서 비좁은 관리실에 낡은 의자 하나를 내어주었다. 관리실은 너무나 비좁아서 총무의 의자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총무가 내어준 의자는 문 바깥 자리에 어설프게 걸쳐놓아야 했다.

"고시원은 안전한 투자 상품?"

이곳은 서울 도심 후미진 골목에 있는 작은 고시원이다. 1960년대에 지어진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이름은 '고시원'이지만 사실상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이다. 고시원은 몇백만 원 보증금 목돈이 없어도 25만 원가량의 월세만으로 주거가 가능하고, 밥과 김치 정도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끼니가 제공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다보니 거주자들은 저소득층 남성 노인들이 많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잠자리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이 고시원의 젊은 사장은 고시원을 운영한지 6개월도 채 안되었다. 6000만 원의 권리금을 주고 고시원을 인수하였으나, 인수 당시 거의 만실이었던 고시원생이 줄어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젊은 사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고시원의 월임대료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고시원보다 더 비싸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임대료를 조정해달라는 분쟁조정을 신청하였다. 시설을 둘러보며 혹시 빈방을 하나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관리자는 빈방이 있는 2층으로 안내하였다. 방은 한 사람이 겨우 누워 잘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는데, 방문을 열자마자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총무는 방마다 비치되어 있는 바퀴벌레 살충제를 익숙하게 살포하였다. 한 켠에는 몹시 낡고 더러운 침구가 한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층마다 공동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데, 30명이 화장실 두 칸, 샤워실 2개를 함께 써야한다. 식당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 보기만 해도 끈적끈적한 묵은 때가 앉은 전기밥솥과 냉장고가 놓여있었다. 입주민들에게는 비좁고 숨 막히게 작은 방만이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이고, 이곳을 벗어나면 아무데도 갈 곳이 없을 것이다. 지하철역과 시내버스가 지척에 있고 고층빌딩이 즐비한 대로에서 단 한걸음 들어왔을 뿐인데, 이런 이질적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총무에게 고시원 운영에 드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관리에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고시원이 꽤 안정적인 사업이라고 했다. 대부분 거주자들이 기초생활수급자이고 30여만 원의 주거급여가 나오기 때문에, 고시원비를 받지 못할 위험이 작고, 홀몸 노인들이 많다보니 이동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시원에 코로나19가 전염되어 몇 명이 중증 의료기관으로 이송되었고, 그 이후에 새 입주자가 채워지지 않아 빈방이 많아졌다고 한다. 고시원 거주자이기도 한 총무는 젊은 사장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고시원 입주자들은 시설을 청결하게 관리하고, 반찬 하나라도 조금 더 신경 쓰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고시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장은 총무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놓다시피 하고, 거의 나와 보지 않아 혼자서 모든 시설을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새로운 입주자가 채워지지 않으니 고시원은 금세 적자가 누적되었다.

가난한 이의 돈으로 부가 유지된다

각종 투자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조금만 살펴봐도 고시원 창업을 권하는 내용이 홍수를 이룬다. '1억으로 월 400버는 고시원 창업', '월 2000 수익이 나오는 직영 고시원', '고시원의 말도 안 되는 수익률', '1000만 원 투자로 월수익 800만 원' 등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단 투자권유 영상들이 넘쳐난다. 아마도 젊은 사장부부는 투자 열풍의 분위기에 휩쓸려, 비교적 소액으로 큰 노력 없이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시원 사업에 투자한 것 아닌가 싶었다. 고시원 투자자가 많아질수록 고시원의 권리금은 높아졌다. 고시원을 몇 개 운영하면서 권리금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도 생겨났단다.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은 아파트와 주식, 코인에만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더는 갈 곳이 없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까지도 투자대상이 되었다. 이들이 탐욕에 눈먼 투자자인지 과다 광고에 속은 피해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젊은 사장부부는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여건이나 삶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분쟁조정을 신청해놓고 현장에 나와 보지도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신들의 투자가 기대했던 수익에 미치지 못하자, 그제야 원인을 찾아보고, 임대료가 다른 고시원에 비해 너무 높다며 임대료를 조정해달라고 조정신청을 했다. 이 고시원은 거의 만실이 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운영비용과 관리자의 인건비 정도를 공제하고 나면 모두 임대료로 귀속되도록 수익구조가 맞추어져 있었다. 젊은 사장은 6000만 원 투자, 월 500만 원 수익을 기대하였으나, 고시원 입주자들의 취향과 선호를 이해하고, 시설관리와 운영을 위해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채 너무나 쉽게 투자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 주거급여를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 중 절반은 이 고시원 운영자의 노력비용을 포함한 운영비용에 사용되고, 나머지 절반은 고시원의 임대료로 지출되었다. 등기부등본을 보니 1960년대, 도심 뒷골목에 지어진 이 낡은 건물의 소유자는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그는 이 건물을 수십 년 전 부모로부터 증여받았다. 임대인의 의사를 물어보기 위해 연락을 취했는데, 사실상 그의 70대 어머니가 관리하고 있었다. 계약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임대료를 조정해달라는 임차인의 요구에 임대인은 응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교통여건이 양호한 도심이지만, 찾기도 힘든 비좁은 뒷골목에 지어진 오래되고 낡은 고시원은 안정적인 임대료가 꾸준히 받쳐주는 최고의 수익가치를 갖는 부동산이었고, 대를 이어서 승계되고 있었다.
▲서울의 한 고시원 내부 모습. ⓒ프레시안

한국 부동산의 이중 승리

지난 10월 24일 공공주택특별법이 개정되었다. 쪽방밀집지역을 포함하는 공공주택지구의 토지 등 소유자에게 현물보상을 할 수 있게 하고, 종교시설 등의 토지소유자가 원하는 경우 같은 용도의 토지로 보상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토지소유자를 구성원으로 하는 주민협의체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쪽방촌은 가난한 사람들의 열악한 주거지이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급여 등 정부보조금을 기반으로 쪽방촌 부동산은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높은 수익가치를 갖는 부동산이다. 쪽방촌, 고시원 소유자들은 대부분 부자들이다. 쪽방촌, 고시원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 현행 구조상 원활한 현금흐름을 갖고, 양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좋은 부동산이니, 토지소유자들의 눈높이가 높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재개발사업을 통하여 지어지는 새 아파트 또는 개발후의 토지를 종전의 토지소유자들에게 현물로 보상해 그들이 개발이익을 다시 누릴 수 있게끔 법을 개정했다. 즉, 토지소유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언젠가 다시 부동산 투자수익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은행에 담보 잡히고 몰려들어 부자들을 더 큰 부자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 터를 잃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소비지상주의 윤리, 중세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품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푼한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들은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 소비지상주의 윤리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끝없이 소비하는 현대인의 소비행태를 지적했다. 그런데 현대인은 자동차와 TV 같은 물건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걸거나, 미래소득까지 당겨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자산에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한다. 투자를 소비하는 것이다. 소비지상주의가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널리 퍼져있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투자지상주의가 퍼질수록, 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자산에 자신의 미래를 걸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부동산 상품의 원재료인 토지가격은 계속 상승한다. 우리는 그것을 부동산사업의 '사업성'이라고 한다. 부동산 시장 활황기에는 '투자' 명목으로 아파트, 구분상가, 생활형숙박시설,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타운하우스, 분양형호텔 등이 장및빛 달콤한 이름을 단 채 소비된다.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완성된 투자상품 가격 하락과 채무 불이행 위험은 개인의 책임이 되지만, 토지소유자들은 팔지 않고 보유함으로써 자신의 자산을 지킨다. 자산을 잘 알지 못하는 청년, 서민들이 투자를 소비하면서, 위험은 이들에게 전가되고 자산가격은 계속 유지된다. 평범한 이들이 가격이 높은 시기에 아파트, 상가 같은 완제품 부동산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돈을 탕진한다. 극심한 변동성은 오히려 도박판을 더 크게 만든다. 정부보조금과 대출지원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거쳐 부동산 가격을 지탱하는데 기여한다. 다시 사업성이 좋은 시기에 높은 가격에 팔린다. 그러니 결코 토지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기존 자산소유자들의 부는 유지되며 세습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투자에 뛰어들지만, 그로 인해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주거급여는 쪽방촌 주민의 주머니를 거쳐 토지소유자에게 들어갔다. 청년·서민에게 지원된 전세자금대출은 임차인을 거쳐 전세사기꾼과 토지소유자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정부는 PF대출을 보증해주는 방법으로 높은 토지가격을 지탱시킨다. 부동산 투자 붐을 일으켜 부동산 완성품을 팔고, 이를 통해 토지가격이 하락하지 않도록 지지한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투자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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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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