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공전을 거듭하던 21대 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이내 대통령이 공포하도록 하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개정노조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일찌감치 시사한 바 있습니다.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경영계와 보수언론까지 한목소리로 개정노조법이 시행된다면 "노사관계가 파탄날 것"이고 "불법파업이 횡행할 것"이라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수세력은 일제히 개정노조법의 의미를 왜곡‧폄하하는 데 혈안입니다. 모든 노동자의 온전한 노동3권 쟁취를 위해 이제 겨우 한걸음 내딛었을 뿐입니다.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개정노조법의 즉시 공포가 왜 필요한지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합니다.
'진짜 사장 책임법'이 '직접 공사', '부실공사 근절'의 지름길
# 1. 신선식품을 저장하는 냉동·냉장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선 우레탄폼 뿜칠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하 2층 우레탄 뿜칠 노동자가 같은 층에서 화물용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금속 절단 작업이 있어 불꽃이 튄다는 걸 알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지상 1층, 2층, 3층 4층 뿜칠 노동자가 위험 작업이 동시에 벌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2020년 4월 29일 13시 32분경 경기도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센터 신축공사장에서 우레탄폼 작업과 금속 절단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걸 시공사인 ‘건우’는 알고 있었다.
# 2. 28∼31층에서 창호·미장·소방설비 공사를 맡았던 건설노동자가 39층에서 지지대가 조기 철거된 채 타설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알고 있었다. 2022년 1월 11일 화요일 오후 3시 46분경, 아이파크 신축아파트 23층~38층 대부분이 붕괴한 사고의 책임을 HDC현대산업개발에 묻는 이유다.
누가 봐도, 건설현장 시공과 안전을 총괄하는 건 원청, 종합건설사여야 하지 않는가. 시공사가 책임지고 공사하면 될 일인데, 건설현장은 중층적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공사비는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며 줄고, 위험과 그에 따른 책임은 아래로 전가된다. 2021년 6월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 사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원청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전문건설업체에 도급을 주는 것까지가 합법이다. 반면, 붕괴 현장에선 하청에 재하청이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3.3㎥당 28만 원 정도인 철거공사비가 10만 원대로 절반가량 대폭 삭감되었고, 그마저 거기에 최저 4만 원대까지 더 내려갔다.도급의 법칙
도급은 철저히 노동자에겐 불리하고 건설사엔 유리하다. 건설사는 온갖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노동자는 온갖 위험에 처한다. 심지어는 노동자들끼리 아귀다툼을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 도급 구조는 인건비 경쟁과 맞물려 노동조건을 후퇴시킨다. 이를테면, 100만 원짜리를 10만 원씩 10명에게 주면 남는 게 없다. 그런데, 9만 원씩 10명에게 쥐어주면 10만 원을 남길 수 있다. 이게 도급이다. 도급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남겨먹는 돈은 많아지고, 노동자들의 몫은 줄어든다. 당장 하루 먹고 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위에서 얼마를 남겨먹든 저임금, 장시간, 중노동이라도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민주노총 건설노조를 향한 탄압의 과녁은
노동조합은 직접고용, 직접공사를 주장하고 있다. 시다우깨, 오야지 같은 중간도급업자가 아니라 건설사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것이고, 내로라하는 재벌 건설사가 하청 주지 말고 직접 공사하라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끼 입은 건설노동자만이 직접고용이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커질수록 건설현장 다단계하도급 구조가 단순해지고,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새지 않고 제 값을 했다. 결국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건, 총선을 앞두고 중간 도급업자더러 마음껏 설치라고 하는 꼴이다.노조탄압과 부실공사의 연결고리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2023년 8월 7일부터 이틀간 건설노동자 2511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였다. 현장 노동자들은 잇따른 부실시공의 원인으로 △불법도급(73.8%)과 △무리한 속도전(66.9%)을 절대적으로 꼽았다. 눈에 띄는 점은 윤석열 정권 이후 건축 상태가 매우 부실(32.5%)하거나 부실(31.7%)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도 늘고(56.6%) 노동안전보건 상태도 위험해졌다(64.8%). 무엇보다 윤석열 정권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늘었다는 답변이 84.7%에 달했다. 지하구간의 경우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나머지 노동자들의 비율이 7대 3 혹은 8대 2로 나타났고, 지상구간은 9대 1 혹은 10대 0, 즉 미등록 이주노동자만 일하는 구간이 매우 급증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권 이후 숙련공의 고용 상태가 매우 불안(76.5%)하다는 답변과 상응한다. 이 부분이 어떻게 부실시공으로 이어지는지 맥락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물량만 해치우면 그만… 속도전에 내몰리는 숙련공
이번 설문에 응답한 건설노동자들은 형틀목수, 철근 등 건물의 뼈대에 해당하는 골조 부분 노동자들이다. 건설노동자들은 해당 직종에 숙련도가 필요(97.5%)하며, 숙련공이 되려면 3년(34.4%)~5년(31.3%) 정도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숙련공이 되려면 시공능력(68.8%)을 갖춰야 하고, 도면을 볼 줄 알아야(59.9%)하며, 견실시공에 대한 책임감 및 산업안전 의식(53.9%)도 지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숙련공일 경우 부실시공 목격 시 지적, 개선할 수 있다는 답변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숙련공이 현장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뭘까. 설문에선 건설사로부터 공기 단축 압박을 받고 있는지 물었다. 속도전을 강요받는다는 응답이 89.4%에 달했다. 현장의 공사기간은 촉박해 30%(31.2%) 정도 늦춰야 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즉, 현장에선 부실시공을 견제하고 고품질 시공을 견인할 숙련공보다 빨리빨리 속도전을 치르며 ‘무조건적 물량 죽이기’로 장시간 중노동을 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는 건설사들이 이주노동자의 신분상 불안정성을 악용해 헐값에 미숙련 이주노동자를 마음껏 부려먹는 '초과착취' 관행을 더욱 부추긴 결과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건설사는 철근 매듭을 모두 튼튼하게 맺는 것보다 느슨하게 혹은 덜 매더라도 빨리만 하는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부실시공을 낳고, 미숙련 노동자의 안전은 물론 시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진짜 사장이 책임지고 공사해야 부실공사 근절
결국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의 보장을 위해, 시민들의 안락한 삶터를 위해 다단계 하청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노조법 2조‧3조가 개정돼야 하는 이유이다. 오래된 답, 반복된 답, 그 외의 답은 없는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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