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이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이 포함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가결되었다. 18세 선거권은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미성년자', '10대'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아주 일부라도 선거권을 보장받게 된다는 이유로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첫걸음처럼 여겨졌다.
이후 18세 선거권은 제도적인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계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던 '만 25세' 피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2021년 12월, 만 18세로 단번에 하향 조정되었다. 10여 일 뒤인 2022년 1월에는 정당 가입이 가능한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하향하는 정당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물론 그럼에도 현행 선거·정치 관계법이 청소년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미성년자(18세 미만)'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은 대표적 악법이고, 정당법 역시 당원 가입에 연령 제한을 둔 점, 18세 미만 청소년의 당원 가입에 법정대리인 동의를 받게 한 점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과도한 인권 침해이다. 나아가 대다수 청소년이 생활하는 학교에서 정치적 활동을 금지, 처벌하는 학칙들의 개선, 모의투표를 비롯한 선거·정치교육의 활성화 등이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정치 참여가 활성화되었을까
선거권·피선거권·정당활동 연령 제한이 완화된 이후로 실제로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가 활성하됐을까? 우선 만 18세 유권자들의 지난 선거에서 투표율 자체는 20~30대 투표율에 비해 낮지 않게 나타났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 및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어땠을까? 긍정적인 변화로 선거의 장에 청소년들의 모습이 등장하게 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정의당이나 더불어민주당 등은 만 18세인 청소년·청년 공동선대위원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또한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만 18세 후보자들이 출마하여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긍정적이진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지방선거에 20세 미만(만 18~19세) 후보자는 모두 7명이었다(언론 보도를 보면 이 중 6명이 대학생인데, 상당수는 청소년 때부터 정당에서 활동해 오긴 했다). 2022년 지방선거는 총 후보자 수가 6,000명이 넘었고 광역·기초의원 의석 수는 3,000명 조금 못 미치는 숫자였다. 거기에서 만 18~19세 후보자가 7명에 그쳤다는 것은 정치 참여에의 가능성보단 장벽을 보여 주는 것으로 느껴진다.
내용적인 측면을 따져 봐도 '공동선대위원장'이나 후보자로 출마하는 것이 곧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지방선거 후보자 중 정당 내 청소년 기구 등의 기반을 가지고 청소년에 관련된 구체적 공약을 내세운 경우는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같은 소수정당뿐이었다. 개개인의 출마나 당직 임명 사례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청소년이라는 소수자 집단의 정치 참여가 활성화된 사례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완화되고 정당 가입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곧바로 청소년들이 다들 정당 활동이나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나서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청소년들의 인권과 권익을 반영시키는 활동이 제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적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조건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청소년 참정권 확대가 극소수 개인들의 정당 상층부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조금 더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영역에서의 변화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공론화하며 관철시키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자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일상적으로 그러한 정치적 의견 형성과 행위가 가능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청소년 참정권 확대는 단지 (인맥이든, 재산이든, 학벌이든) 자원이 많은 특정 청소년들이 좀 더 이르게 정치에 진출하는 것을 돕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해 실시한 아동·청소년 참여권 모니터링 체크리스트에서도 청소년 정치 참여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11월 24일 아동인권보고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1504명이 참여한 체크리스트에서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이 정치참여를 쉽게 할 수 있다'라는 문항에 대한 동의 정도는 2.25점으로 다른 참여권 항목에 비해 더 낮게 나타났다. 현장 모니터링 심층 인터뷰에서 그 이유로는 청소년을 미성숙하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보는 인식, 발언권을 주지 않고 편견을 가지는 경우, 관련된 교육 및 기반의 부족,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한 입시 외 활동의 어려움, 시간적 여유의 부족 등이 거론되었다.
청소년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활하는 학교 환경부터가 정치 참여에 우호적이지 않다. 2020년 3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533개 중고교 학칙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중 54.8%가 정당 및 정치적 단체 활동, 정치활동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제한·침해하는 내용의 학칙은 약 70%에서 발견됐다. 공직선거법 및 정당법 개정 이후 학칙을 개선한 경우에도 "만 18세 이상의 학생은 법에 따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라거나 "법률이 보장한 경우에만 정당 등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라는 조문으로 바뀐 경우가 발견되었다.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 등 참여권을 보장하고 장려해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한 태도이다.
공직선거법도 문제이다. 특히 청소년 선거운동 금지 조항은 청소년들이 선거 상황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발언하고 참여하는 일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생활 중이어도 만 18세 생일이 지난 사람만 특정 후보·정당 지지 또는 반대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선거법은 황당하기까지 하고, 일상적 토론까지 옥죈다. 다음은 2020년대에 경기도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어느 학생의 경험담이다.
고등학교에서 체감하기로는, 학교 현장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입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니까 참정권과 관련한 교육 영상을 틀어 놓긴 하는데, 그러고 자습을 시킨다. 참정권 관련 학습보다 교과서 내용을 공부하고 성적을 높이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다. 2022년 지방 선거와 대통령 선거 때도 학교는 입시를 더 중요시했다. 선거가 있던 3월과 6월, 학교에서는 선거일에도 집에서 쉬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학생들은 사회적인 분위기나 인식 탓에 참정권과 관련한 교육을 들을 때도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정치적인 말을 하거나 사회적인 현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게 잘못된 것마냥 여겨지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어리기에 정치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남을 선동하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정치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가르침받는다." (민서연, 〈청소년 참정권, 확대됐지만 변하지 않은〉, 《오늘의 교육》, 72호, 2023년 1·2월호.)
청소년 참여권 보장은 정부의 의무
오랜 시간 참정권을 제한당해 왔고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 여건이 많은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은 단지 법률에서 연령 제한 기준을 18세, 16세로 고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서 청소년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여건은 사회적 인식이나 편견 등 문화의 차원도 있고, 시간과 예산의 부족, 교육 제도의 문제 등도 있다. 이는 청소년 참정권의 보장은 청소년들이 어떤 공간에서 얼마나 자유시간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공직선거법 및 정당법의 개정 이후로, 정부에서는 청소년 정치 참여에 관해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교육해야 했을 뿐 아니라, 청소년의 삶을 바꾸는 정책들을 종합적으로 수립했어야 마땅하다.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해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에게서는 이러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문재인 정부 때에도 18세 선거권에 찬성하는 모습만 보였을 뿐 청소년 참정권 보장이라는 종합적 접근은 부족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외려 청소년 정치 참여에 적대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윤석열차' 만평 사건이나 촛불중고생시민연대에 대한 정부·여당 차원의 탄압 등은 청소년 정치 참여를 위축시킨 대표적 사건들이다. 또한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 관련 부서들과 사업들을 없애거나 축소시키고 있으며, 여성가족부는 2024년도 청소년 참여 활동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지자체의 여러 청소년 사회·정치 참여 관련 사업들이 줄줄이 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들의 학교 안에서의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참여권 등을 신장시키려는 학생인권조례도 없애라고 성화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반영하려는 노력은 물론 없다. 정부가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직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최근에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오염수 방류 문제에 관련하여 어린이·청소년들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 국민의힘에서 '아동 동원', '아동학대'라는 등의 공격을 가한 사건이 있었다. 올여름엔 수원시의회 앞에서 초등학생들이 기후 위기 관련 수업 이후 행동에 나서서 퍼포먼스를 했는데, 해당 학교 교사가 언론 및 보수단체에 의해 '아동학대', '사상강요'라며 공격받고 신고를 당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어린이·청소년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발언하는 것이 어른의 조종을 받은 것이라는 등의 비난을 당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정부·여당은 이런 부당한 비난을 억제하지는 못할망정 여기에 동조, 동참하고 있다.
청소년 참정권은 중요한 인권이며, 정치를 포함하여 사회적 의사결정의 과정에 청소년의 참여권은 더욱 확대되고 보장받아야만 한다. 다만 직접적 정치 참여 관련 제도만 손보는 것으로는 반쪽짜리 변화에 그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의 생활 전반에서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유시간과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모임과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과 기반이 필요하다. 그 첫 단추는 정부가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청소년의 인권과 자유, 참여를 위한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 이전에 청소년 참정권에 부정적인 정책들부터 반성하고 철회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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