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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가 발표한 학폭 전담조사관제, 대응 절차만 더 길어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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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윤 정부가 발표한 학폭 전담조사관제, 대응 절차만 더 길어질뿐 [기고]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도입을 환영할 수 없는 이유
최근 교육부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퇴직 교원 및 퇴직 경찰 2700명을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으로 채용하여 학교에 신고된 모든 학교폭력 조사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제는 교사들이 학교폭력 업무에서 벗어나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며 환영 기사를 쏟아냈다. 정부와의 협상에 참여한 교사단체들 역시 이 정도의 성과가 어디냐며 자화 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전담조사관 제도가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고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전담조사관 제도 교육청을 위한 제도에 지나지 않아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제도를 평가하기는 어려우나 현재 구조에서 전담조사관 제도가 실질적으로 학교의 업무를 덜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현 정부의 전형적인 용두사미 정책에 불과하다. 특히 전담조사관 제도와 함께 교육청에 '사례위원회'가 신설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는데, 단적으로 말해 교육청에 10~12명의 채용인력과 사례위원회라는 신설기구가 생겼다. 사례위원회에 조사관이 참여하며 여기에 외부 전문가들을 위촉한다. 즉 전담조사관 제도가 실제로는 역량 부족, 전문성 부족에 허덕이는 교육청의 인력 충원을 위한 제도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긴다. 교육청이 학폭위를 가져간지 3년이 되었다. 즉 현재의 전문성 위기는 일차로 교육청의 위기다. 그런데 이에 대한 평가는 한 마디도 없이 마치 학교의 전문성이 부족하니 교육청에 새로운 인력과 기구를 설치해 학교를 돕자는 태도다. 적반하장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전문성이 떨어지고 역량이 부족한 건 교육청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9월에 신고된 학폭 관련 학폭위가 12월에 열리고, 11월에 신고된 학폭이 제발 아이들 졸업 전에 처리되기를 기도하는 게 현재의 교육청 상황이다.

지나치게 길어진 절차,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나

기존 학교폭력 업무 매뉴얼을 보면 [인지-신고-초기개입-긴급조치-조사-전담기구 개최]까지 학교가 하고, [학폭위 심의]를 교육청이, 다시 [조치이행]을 학교가 가져가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번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이제 [인지-신고-초기개입-긴급조치]까지 학교가 하고 [조사]는 교육청 조사관이, [전담기구 개최]는 학교가, [학폭 사례위원회(신설)-학폭위심의]를 교육청이, 다시 [조치이행]을 학교가 하게 되었다. 원래 "학교-교육청-학교"의 업무 흐름이 "학교-교육청-학교-교육청-학교"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학폭 발생 시 학교에서 조사를 다 하고 교육청으로 넘겨도 학폭위가 열릴 때까지 대략 세 달 걸린다. 이렇게 교육청으로 학폭위가 넘어간 뒤 학교폭력 신고부터 가해자 조치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문제 때문에, 피해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가·피해 학생 분리 제도가 도입되었다. 분리 기간은 최대 3일이었으나, 교육청 일처리가 점점 늦어지면서 분리 일수가 7일까지 늘어났다. 내년부터 업무 흐름이 더욱 복잡해지면 분리 일수를 며칠까지 늘려야 할지 재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학교 폭력 발생 시 업무 단계. ⓒ교육부

학교폭력 조사 외주 인력,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 가능한가

학교폭력은 물적 증거가 별로 없기 때문에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 아이들의 진술이 중요하다. 따라서 신고 후 즉시 조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거짓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부모의 개입, 기억의 왜곡 등이 일어나 진술이 오염될 수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아이들 스스로도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는 보통 신고가 이루어진 당일 기초 조사를 한다. 학교폭력 조사는 절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처음 교사와 면담할 때 아이들의 진술 속에는 거짓말, 편견, 기억 왜곡이 섞여 있기 때문에 교사는 피해 학생, 목격 학생, 가해 학생을 번갈아 부르며 조금씩 거짓말과 왜곡을 걷어내고 진실을 추적해 간다. 필요하다면 담임교사, 학부모 의견을 듣고 생활기록부 기록, 선도 기록을 참고하기도 한다. 전담조사관은 교사와 달리 교육청에 상주하는 외주 인력이다. 학교에 출장 나와 정해진 시간 동안 학생, 학부모와 면담하고 돌아갈 것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 신속하고,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피해자의 억울함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폭력 조사가 잘 되어야 피해자도 보호받고, 가해자도 반성해

교사들이 힘들더라도 조사를 빨리 하려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빨리 조사를 하여 사태를 파악해야 아이들도 진정하고, 자기 잘못을 반성하려는 태도를 갖기 때문이다. 즉 조사 자체가 일종의 훈육이고 다른 문제를 더 일으키면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피해자, 가해자, 목격 학생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상담과 훈육을 병행한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해주고, 목격자의 불안을 덜어주려 노력한다. 가해자가 객관적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질문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은 언행을 조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가해자가 반성하고 사과하려는 태도를 가지면 피해자도 마음이 누그러져 가해자의 사과를 수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교사의 학교폭력 조사는 경찰의 수사와도, 검찰이나 법원의 조사와도 다르다. 교사는 학교폭력 조사를 통해 잘잘못을 가리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반성시켜 화해에 이를 수 있도록 중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청 전담조사관이 이와 같은 교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겠는가.

경찰과 변호사는 학교폭력 전문가인가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 도입을 환영하며 어떤 변호사들이 TV에 나와 그동안 학교폭력 조사의 전문성이 없는 교사가 조사를 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따라서 이제라도 법률 전문성을 갖춘 조사관 제도가 도입되어 다행이라고 한다. 교사가 학교폭력 전문성이 떨어지니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30년째 되풀이 되고 있다. 심리전문가, 분쟁조정 전문가, 아동발달 전문가 등 수많은 이익 단체들이 이런 말을 해왔는데, 최근에는 법률전문가가 학교폭력 전문가로 각광받고 있는 듯하다.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이 우리나라 법률전문가라 부를 만한데 그 중 주로 변호사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 그런데 경찰이 수사전문가이지 법률전문가가 아니듯 변호사 역시 법률전문가일 뿐 수사의 전문가는 아니다. 모든 측면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집단은 없음에도 교사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다. 게다가 학교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육청이 학폭위를 가져가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을 다 데려왔는데, 아직도 전문성 부족이 지적되는 것은 교육청 및 외부 전문가들의 책임이다.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핵심은 화해와 중재에 있고, 화해 중재의 전문성은 교사에게 있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전문가는 교사이고, 외부 전문가들이 교사를 도와주는 형태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학교에서 피해자, 가해자, 목격 학생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상담과 훈육을 병행한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해주고, 목격자의 불안을 덜어주려 노력한다. 가해자가 객관적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질문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1·2학년 대상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열린 19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담조사관의 전문성과 신분에 대한 의구심

퇴직경찰과 퇴직교원으로 구성된 전담조사관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의문이다. 학교폭력 조사 매뉴얼을 만들어 일정 기간 연수를 거친다고 하지만 현재 교육부 매뉴얼도 학교폭력 조사에는 별로 도움 안 되는 형식적 내용일 뿐이다. 전문성 없는 조사관들의 조사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경찰에 수사 전문성이 있다 하지만 경찰의 전문성은 주로 성인 범죄자에 대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 일반 학생에 대한 수사전문성을 갖춘 경찰은 아마 없을 것으로 보인다. 퇴직교원 역시 현장에서 몇 년씩 떠나 있다가 학교폭력 업무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전담조사관들이 학교폭력과 관련된 아이들의 센척, 폭언, 폭행,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소송으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교사들을 괴롭히는 5가지 법망-학교폭력법 위반, 학생인권조례 침해, 학습권침해, 특수교육법, 아동학대법-의 적용을 그대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업무가 줄어들지 의문

학생 정보가 전혀 없고 교육 전문성이 없는 조사관들은 학생들을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 거짓말을 있는 그대로 적어 놓고, 양측의 주장이 다르다고 병렬로 기술하고 끝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는 손놓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전담조사관의 조사는 형식적인 행위로 전락하고, 학교폭력 책임교사가 보강조사를 요구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폭력은 점점 심각한 문제로 비화될 것이고 학교는 억울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민원, 소송으로 얼룩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교사들은 학교폭력 업무는 업무대로 하면서 전담조사관의 기초 조사를 돕고, 보강조사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그런데 교사가 보강 조사한 내용과 전담조사관이 기초 조사한 내용이 충돌하면 누가 조율해 줄 지도 알 수 없다.

학교폭력 조사관 제도 이미 한 번 실패한 정책

학교폭력 조사관 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2년에 학교폭력법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할 때 교육부는 시행령 입법예고를 통해 '학교폭력 조사관'이라는 직책을 신설하려고 했었다. 학교폭력 전문 조사관을 육성하여 교육청에 채용해 놓고 교육청이 직접 학폭을 조사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교육부의 이런 시도는 상식적인 처사였다. 그러나 실제로 시행된 시행령에는 이 내용이 모두 빠져버렸고 학교폭력 조사를 외부 단체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바뀌었다. 적어도 2012년 그 상황에서 교육부가 학교폭력 조사를 중시했고, 학교폭력 조사관을 직접 채용 육성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도입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다만 이 제도는 현재 전라도에 남아 있다. 전라도교육청은 '학교폭력 조사관'을 임기제 공무원으로 운영중에 있다. 즉 현재 법 제도 안에서도 조사관 제도는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데 안 했던 것 뿐이다. 하지만 현재 전라도의 조사관들은 업무가 너무 힘들고, 신분이 불안정해지고 있어 면직이 늘고 있다고 한다. 교육청으로 학폭위가 이관된 초창기 교육청에서 학교로 조사관을 파견한 적도 있다. 학교에서 올려보낸 보고서가 헷갈릴 때 교육청이 조사관을 파견하여 아이들을 면담하고 가곤 했다. 그러나 교육청 학폭위 업무가 폭주하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교육부는 건망증이 심한 것인지, 왜 예전에 실패한 정책들, 사멸한 정책들을 포장만 바꿔 다시 시행하려는 것인지 의문이다.

교사들의 열망을 배신하는 정부의 기만

이 모든 일은 대통령의 '학교폭력 업무 경찰 이관'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이 한 발언을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교직단체들이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물이 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제도이다. 학교폭력 업무 경찰 이관이란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요구였지만, 그 요구에 담겨 있는 교사들의 애환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발표는 교사들을 기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담조사관 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부작용과 민원이 심해지면 지금까지 수많은 정책이 그래왔듯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형식만 유지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교사의 전문성 부족을 언급했다는 데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교사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교사의 역량과 권한을 강화하는데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 투입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레퍼토리는 30년째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되고 있다. 학교폭력법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학교가 학교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교사의 권한과 역량을 높이는 것이 정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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