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한 병원에 의료진 등으로 위장해 잠입 뒤 치료 중인 환자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원들을 사살해 파문이 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친이란 무장 세력 공격으로 미군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대응을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외신은 바이든 대통령 앞에 사실상 좋은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30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 매체 <이스라엘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정보 기관 신베트 및 경찰 대테러 특수부대와 함께 이날 오전 요르단강 서안 제닌에 위치한 이븐 시나 병원에 잠입해 병원 내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3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 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이날 사살된 무함마드 잘람네(27)는 테러 조직의 지도자 격으로 해외 하마스 당국자들과 접촉하고 있었고 "10월 7일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습격"을 계획 중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으로 주로 민간인인 1200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은 사살 당시 잘람네가 권총 한 자루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살된 다른 두 명은 무함마드 가자위와 바셀 가자위 형제로 이스라엘군은 무함마드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군에 대한 총격에 연루됐고 바셀은 무장 조직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 소속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사건이 "테러 단체가 민간인 공간과 병원을 은신처와 인간 방패로 이용하는 또 다른 사례"라며 잘람네의 공격 시행이 임박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마스는 잘람네가 하마스 무장 조직 알카삼 여단의 지도자라고 확인했다. 이슬라믹 지하드도 무함마드와 바셀 형제가 조직의 일원이며 바셀은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 공개 영상에 따르면 이븐 시나 병원 감시 카메라 영상에 이날 오전 이스라엘군 등이 의료진, 무슬림 여성 및 남성으로 위장해 병원에 잠입해 작전을 벌인 것이 나타났다. 오전 5시 43분께 찍힌 영상엔 이들이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머리쓰개인 히잡을 착용한 채 총을 든 모습, 수술복으로 보이는 푸른 상하의를 입고 총을 든 채 걸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살된 이들 중 한 명은 이 병원에서 치료 중인 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븐 시나 병원장인 나지 나잘은 <로이터> 통신에 이스라엘 작전팀이 이날 오전 5시 30분께 병원에 침투한 뒤 잘람네 등이 자고 있던 병실에 침입해 머리에 직접 총을 쏴 살해했다고 말했다. 나잘은 모든 사건이 15분도 안 돼 일어났다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 그는 이날 사살된 베셀의 경우 10월 말 이스라엘군의 무인기(드론) 공습 때 척추에 파편을 맞아 마비 증상을 겪고 있어 재활 치료 중이었다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보건 당국자인 위삼 스베이하트는 신문에 잘람네의 경우 병원에 친구 방문차 들른 것으로 이스라엘 쪽이 "환자를 포함한 세 사람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전시에도 특별한 보호를 받는 병원 및 환자에 대한 이번 습격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살해된 이들이 무장 세력이었더라도 부상으로 인해 전투 능력을 잃은 이를 공격하는 것은 무력충돌법 위반이라는 영국 엑세터대 국제 공법 교수인 아우렐 사리의 지적을 전했다. 사리 교수는 공격자가 의료진이나 민간인으로 위장하는 것 또한 해당 법 위반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하마스 터널을 무력화하기 위해 대량의 물을 주입하는 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확인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당국자들을 취재해 이스라엘이 하마스 터널을 침수시키기 위해 바닷물 주입을 시작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 뒤 전문가들은 터널에 바닷물이 주입될 경우 가자지구의 모래 토양으로 스며들어 토양에 소금기가 배게 하고 지하수층으로 침투해 식수 공급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며 터널 내부에 저장된 오염 물질이 흘러 나올 수 있어 가자지구의 삶의 조건이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하마스 터널이 다공성이었던 탓에 주입된 물이 홍수를 일으키기보다 주변 토양으로 누출돼 작전이 제한적 성과만을 냈다고 이스라엘군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편 이틀 전 친이란 무장 세력의 공격으로 요르단 내 미군 전초기지에서 미군 3명이 사망한 뒤 보복을 천명한 미국의 대응이 주목되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0일 해당 공격에 대한 대응을 결정했냐는 언론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이 이번 일을 저지른 세력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말했지만 이란에 직접 책임이 있냐는 질문엔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만 답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30일 기자들에게 미국의 대응이 "단일 조치가 아닌 잠재적으로 여러 조치, 층화된 접근 방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보복이 다방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다만 보복이 군사 영역을 넘어 제재와 같은 경제 영역에서도 행해질 수 있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가 요르단 기지 공격에서 "흔적"을 보았다며 배후 가능성을 언급한 이라크 친이란 무장 조직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뒤늦게 미군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30일 카타이브 헤즈볼라 지도지 아부 후세인 알하미다위는 성명을 통해 "이라크 정부의 곤란함을 막기 위해 점령군(미군)에 대한 군사 및 보안 작전 중단을 발표한다"고 선언했다. 성명은 "저항의 축 형제들, 특히 이란은 우리가 어떻게 지하드(성전)를 행하는지 알지 못하며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미국 점령군에 대한 압박과 긴장 고조에 자주 반대한다"고 부연했다. 이는 이란이 요르단 미군 기지 공격과 관련해 이 지역 무장 세력들이 이란의 지시가 아닌 자체 판단으로 움직인다고 밝힌 입장과 일치한다. 이라크와 이란 당국자들을 취재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는 이미 몇 주 전부터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미군 공격을 중지하도록 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었으며 최근 며칠 간 더 집중적인 협상이 벌어졌다. 신문은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다른 무장 단체들은 이라크 정부의 공격 중단 요청을 무시했지만 이틀 전 요르단 기지에서 미군이 사망하며 무함마드 시아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가 이란에 직접 연락했다고 이란 혁명수비대 군사 전략가를 인용해 전했다. 신문이 인용한 이란 군사 전략가와 이라크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수다니 총리는 이란이 원하는 이라크 내 미군 철수를 협상 중인데,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공격이 이라크 정부의 협상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미군은 이슬람국가(IS) 잔당 퇴치를 위해 이라크에 2500명, 시리아에 900명 규모로 주둔 중이다. 가자전쟁 발발 뒤 카타이브 헤즈볼라 등 친이란 무장 세력에 의해 이라크와 시리아 등의 미군 기지가 160회 이상 공격 당했다. 관련해 지난 4일 미국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친이란 무장 조직 하라카트 알누자바 지도자 무쉬타크 자와드 카짐 알자와리를 제거하며 이라크 내에서 미군 철수 여론이 급격히 높아졌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30일 언론 브리핑에서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미군 공격 중단 선언에 관한 질문을 받고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일축했다. 미 CNN 방송은 미군 사망 대응과 관련해 바이든 정부가 "답할 수 없는 질문과 씨름해야 한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모든 잠재적 선택지가 나쁘고 위기 심화를 늦추기 위한 노력 자체가 위기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는 부럽지 않은 위치에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방송은 미국이 이미 더 넓은 중동 지역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으며 확전을 막으려는 바이든 정부의 노력에 효과가 없는 것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그나마 다행인 점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의 제한적 교전에 머무르는 등 여러 전선에서 대규모 공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우려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