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만' 위해 합병한 건 아니니 무죄?
당장 1심 재판 결과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재판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목적이 무엇이냐를 두고 판단한 부분이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삼성 내 경영권 승계 작업 목적과 내용이 담긴 것으로 평가받은 '프로젝트 G-문건' 등을 근거로 이번 합병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합병이 승계작업'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해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합병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2년 12월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프로젝트 G 문건은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금산분리 대응 등의 전략을 담은 문건이다. 그 핵심 과제로 문건은 삼성물산과 에버랜드 합병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앞서 지난 국정농단 사건 재판 당시 대법원이 이재용 회장의 뇌물 공여 사건에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명확히 판단한 결과와 모순된다. 아울러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소송에서 이긴 논리와도 모순된다. 이에 관해 이동구 변호사는 "승계작업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고 해서 합병 과정의 불법성을 부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즉, 재판부가 해당 합병 목적에 이 회장 승계 목적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못하면서도 이를 무죄 판결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김종보 변호사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핵심 목적이 이 회장의 지배력 확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이를 두고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거나 '약탈적 합병이 아니'라는 식으로 판단한 건 본질을 회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해당 합병으로 인해 주주권이 침해받았다는 점 역시 부인했다.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이나 의사가 도외시된 적이 '없고', 해당 합병으로 이 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이 강화됐으니 결국 삼성물산 주주에게도 좋은 것 아니냐는 게 판시 이유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를 위해 이뤄진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 당시 합병비율은 1대 0.35였다. 당시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은 격이라는 논란이 인 해당 합병을 두고 검찰은 이 합병 과정에서 거짓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시세조종 등의 불법행위가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근거가 '대주주가 이익을 봄에 따라 곧 그룹 지배력이 강화됐고 이는 장기적으로 주주에게도 좋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에 이동구 변호사는 "대주주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논리는 회사법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 생각"이라고 일침했다. 기본적인 회사법적 상식도 충족하지 못한 판결이라는 소리다. 이 변호사는 "설사 합병에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더라도 진행 과정의 불법행위들은 여전히 엄중한 처벌 대상"인데 이를 무시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회장의 승계작업을 뺀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경영적으로 어떤 목적과 필요성이 있었는지 납득할만한 설명도 제시되지 않은 판결"이라고 허탈해 했다.이 회장 일가 지배력만 고려한 합병
이와 관련해 검찰이 기소 근거로 제시한 '프로젝트 G-문건'에는 두 회사 합병을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의 내용이 지시 사항으로 적시된 데다, 이 합병으로 발생하는 이 회장 일가 지분율 변화 등이 세세히 명시돼 있다. 이 회장 승계가 합병의 핵심 사안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문건이라는 평가다. 관련해 프로젝트 G 문건 내용을 보면 '물산(삼성물산)+에버랜드 합병' 부분에 그 목적으로 '일감몰아주기 해소, 물산 지배력 확대'가 명확히 명시돼 있다. 아울러 합병의 기대 효과로 "에버랜드 일감몰아주기 과세 이슈 해소"와 함께 "대주주 지분 현 1.4%→25.4%(회장님 8.5%, 부회장 10.1%, BJ+SH 6.8%)"가 된다는 점이 적시돼 있다. 해당 합병에 따라 이 회장 일가(이건희·이재용·이부진·이서현)의 지배력이 강해진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판단된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해당 합병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사업적 필요에 의해 이뤄진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의결권 변화에 따른 지배력 확대만이 언급돼 있다. 김종보 변호사는 "이재용 회장 측은 (해당 합병에) 사업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변론"했으나 정작 G문건에는 그 내용이 없는 데다 "이런 자료는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며 "즉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를 위해 합병하는데, 이왕 합병하는만큼 모직과 물산의 사업상 시너지를 궁리해보자'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1심 재판부는 주 목적과 부수적 목적조차 구분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관련해 1심 재판부는 프로젝트 G 문건은 "삼성 그룹 사전 승계 목적으로 작성된 문건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같은 사건에 엘리엇은 주권 보호, 국내 투자자는?
이번 합병에 반대한 엘리엇은 결국 ISDS 소송으로 이를 끌고 갔고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즉 한국 정부의 행위가 엘리엇의 투자자 권익을 침해한 만큼 정부가 이를 손해 배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 가액은 총 687억4411만 원에 달한다. 즉 물산-모직 합병으로 인해 발생한 엘리엇의 주주권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된 셈이다. 아울러 해당 소송에 나선 엘리엇만이 그 피해를 구제 받고, 국내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게 됐다. 김종보 변호사는 "그럼에도 1심 판단에 따르면 이 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이 주도한 모직-물산 합병은 불법이 아닌 게 된다"며 "결국 물산 주주들의 투자 이익이 침해당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러, 엘리엇은 보호되지만 국내 삼성물산 주주는 보호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로 같은 주주임에도 해외투자자가 국내투자자보다 더 권익을 챙기는 불공평 사례가 발생하게 된 셈이다.분식회계 명확한데도 1심은…
김은정 협동사무처장은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분식회계 문제도 1심 재판부가 그대로 넘어갔다고 비판했다. 해당 분식회계는 제일모직의 주식 가치를 끌어올려 합병비율을 이 회장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 구체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높여 제일모직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방안이었다. 합병 전 이 회장이 23.2% 지분율로 지배한 제일모직은 삼성전자 지분을 갖지 못한 반면,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갖고 있었다. 결국 두 회사가 합병하면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강화된다. 이를 위해 이뤄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비율은 1대 0.35로 이뤄졌다. 이 합병비율의 근거를 제시한 딜로이트안진과 삼정KPMG의 '합병비율 적정가치 평가 보고서'는 이후 큰 논란이 됐다. 보고서상 안진은 당시 제일모직 가치를 21조3000억 원으로 평가했다. 제일모직이 이처럼 큰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된 근거는 제일모직바이오의 영업가치가 3조 원이라는 평가 결과였다. 그 근거는 '에버랜드가 보유한 동식물로 바이오와 헬스케어 사업을 키울 것'이라는 추상적 전망이었다. 이 영업가치가 건설(1조5000억 원) 가치보다 크다는 전망이었다. 이 같은 조치 결과 양사 합병이 어렵게 이뤄졌다. 이후 통합삼성물산에서도 분식회계가 이뤄졌다. 부풀린 제일모직 가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6조9000억 원, 에피스 가치를 5조3000억 원으로 평가해야 했는데 이처럼 평가할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젠 콜옵션 부채 1조8000억 원이 회계장부에 반영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완전 자본잠식에 들어간다는 문제가 있었다. 김 처장은 "이를 피하기 위해 에피스를 삼성바이오로직스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는 지배력 상실이 발생"했고 그 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완전 자본잠식 회사에서 2조 원대 흑자 회사로 탈바꿈됐다"며 "최종적으로 4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그간 확보된 이 같은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고 김 처장은 비판했다. 그는 "재판부는 삼성의 입장을 그대로 공유해 감리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의결 과정이나 삼바, 에피스, 바이오젠 감사보고서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관계마저 부정했다"며 "실제로는 2015년 통합 삼성물산의 재무제표상 염가매수차익, 영업권, 주식처분이익은 짜맞추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정도의 일치된 결과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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