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8 여성파업은 무엇이 다른가?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여성파업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세계 첫 여성파업은 아이슬란드에서 열렸다. 1975년 10월 24일 오후 2시 5분, 아이슬란드 전체 여성의 90%가 파업을 벌였다. ‘2시 5분’은 남성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을 적용했을 때 당시 여성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2시 5분까지 수준까지밖에 안 되었던 것에서 착안했다. 첫 여성파업에 여성들은 임금노동과 무급 가사노동, 돌봄노동을 모두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광장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는 당시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2만 5000~3만 명의 여성이 참여했다. 여성들은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유치원을 늘려라!",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 "성폭력을 멈춰라!" 등 평등과 권리를 외쳤다. 이후 독일, 폴란드, 아르헨티나,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19세기 중반 뉴욕의 직물공장에서 일어난 파업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들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부터 파업 투쟁의 오랜 전통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1910년 8월 제2인터내셔널 사회주의자 여성대회에서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매년 3월 '국제여성의 날' 행사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1917년 3월 8일, 러시아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벌인 대규모 파업 시위는 러시아 노동자계급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한국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파업한 사례가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보다 더 일찍인 1923년 7월 3일에 경성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경성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대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당시 경성의 4개 고무공장에서 100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 중단과 무례한 일본인 감독 해고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후에도 여성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이나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한 크고 작은 파업과 투쟁이 있었다.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이해 집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 '2시 5분'에 여성파업을 벌인 것처럼 한국에서는 2017년에는 '3시 STOP 조기퇴근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 '3시 STOP 여성파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욱 악화하고 오프라인 시위가 어려워지면서 ‘3시 STOP’ 투쟁은 휴식기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여성파업과 2024년 3‧8 여성파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별 노동자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자발적이며 실제적인 파업을 이끌어 내려 한다는 점이다. 중앙 단체의 지침에 따른 집회 참여에 그치는 여성파업이 아니라 여성파업의 의미를 새기며 왜 여성파업을 벌여야 하는지, 각각의 노동자들이 여성파업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며 만들어 가려 하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러한 차이를 더욱 널리 퍼트리고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조직위는 3월 8일 이전에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이 그중 하나다.톨게이트지부와 함께한 '찾아가는 여성파업'
톨게이트지부의 '찾아가는 여성 파업'은 2월 3일에 진행되었다. 톨게이트지부 노동자들은 여성파업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일상에서의 여성 차별,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여성 차별을 지적했다. 2019년, 7개월 동안 직접고용 투쟁을 벌인 톨게이트지부는 전체의 80%가 조금 넘는 수가 여성 노동자다. 톨게이트지부 노동자들은 투쟁하며 고용불안과 지독한 차별에 맞서 싸워 왔다. 때문에 자신들이 일터와 가정,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그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투쟁을 하면서 그동안 여성 차별을 스스로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점을 알게 되었고, 투쟁 후 지부 외의 주변 노동자들이 여전히 여성 차별을 차별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고 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한 노동자는 "여성 차별을 인식하고 여성 차별을 타파할 힘을 기르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자 스스로가 주변 노동자들에게 이에 대해 더욱 알려야 한다"고 했다.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끌어내야 대대적인 여성파업도 조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노동자도 있었다. 더불어 한 노동자는 "차별과 차이가 다름을 알고 차이에 대해서는 서로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크숍에서는 3월 8일 당일 여성파업대회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개별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투쟁 방식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오고 갔다. 각자 일하는 공간에서 일손을 일정 시간 동안 놓거나 외출을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작지만 대대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의견들이 제시되었다.KEC지회와 함께한 '찾아가는 여성파업'
2월 13일 진행된 KEC지회의 '찾아가는 여성파업'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왜 여성 동지들만의 것인지 부채의식이 평소 있었다"는 남성 노동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KEC지회는 2010년 파업 이후 계속해서 노조 탄압에 맞서고 있으며 악명 높은 '승격 성차별'에 여성 노동자, 남성 노동자가 함께 저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남녀 차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여전히 퍼져 있는 남녀 고정 관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그에 대한 답답함과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들이 오고 갔다. 특히 얼핏 보기에는 KEC 사업장 내 '승격 성차별'이 투쟁을 통해 해소된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워크숍에 참여한 한 노동자는 투쟁 이후 "승진, 승급에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격차는 줄어들었지만 최근에는 아예 승진, 승급 자체가 전체적으로 멈췄다"고 지적했다. 또한 "월급 수준이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 노동자는 "세상이 내일 아침 당장 바뀌리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수라 하더라도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 그 물결을 계속 퍼트려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직이나 사업장이라는 틀을 벗어나 같은 대한민국에서 같은 노동을 하는 계급으로서, 남녀를 떠나서 활동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고 말했다. KEC지회에서는 2019년부터 매년 3월 8일 어용노조 여성 조합원을 포함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빵과 장미 그리고 핸드크림과 같은 선물을 나누며 국제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긴다. 워크숍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어용노조 조합원들과 하나로 힘을 모을 수 있는 기대를 비치기도 했다. 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은 크게 취지 발언, 국제 여성파업 사례 소개, 토론, 깃발 만들기 순서로 진행되었다. 깃발 만들기 시간에는 각 사업장의 구호가 적힌 깃발 여백에 워크숍에 참여한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이 여성파업에 대한 각오, 다짐, 의미 등을 직접 적었다. 2월 19일 현재까지 조직위와 함께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는 톨게이트지부와 KEC지회 이외에도 서울교통공사(이하 서교공) 책읽는여성노동자모임,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확대간부회의), 비정규직이제그만 부산울산경남모임, 공공운수노조 울산본부 상근간부와 교육공무직지부 노동자들과 함께 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을 진행했다. 서교공 책읽는여성노동자모임에서 진행한 '찾아가는 여성파업' 토론 시간에는 "민주노총이 진행하는 파업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 제기되었고, 여성파업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현장에서부터 토론하고 실천하고 조직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확대간부회의에서 진행한 ‘찾아가는 여성파업’에는 참가자들이 대부분 남성 노동자들이었다. 참가 노동자들은 다소 낯설 수 있는 내용들을 진지하게 함께했다. '찾아가는 여성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여성 해방이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성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 남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장애 노동자, 이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가 노동계급,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24년 3‧8 여성파업은 그 시작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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