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보다 더 절박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총선을 하루 앞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대표는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말했다지만, 누구나 아는 사실었다. 총선 승리 없이는 '정치인 이재명'의 미래도 없을 것임은. 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은 11일 오전 3시 현재 170석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되며 낙승을 앞두고 있다. 출구조사 결과 발표 때의 180~200석이라는 압도적 전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1대 국회 의석(작년 정기국회 기준 168석)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 역시 상대방인 국민의힘을 압도하는 성적이다. 이 대표로서는 일단 승리라는 결과를 받아든 만큼 가슴을 쓸어내리게 됐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국회 과반 의석(151석) 기준을 넘기게 됐고, 조국혁신당 등 야권 내 우호 세력을 규합하면 180석을 넘겨 패스트트랙 추진 요건도 확보하게 됐다. 다만 서울 도봉갑·마포갑, 경기 화성을 등 일부 승리가 예상되던 지역구와 용산·동작·분당 등 격전지에서 패배하며 이재명 지도부가 주도한 공천 결과에 대한 당내 재평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번 총선은 애초부터 민주당으로선 '질 수 없는' 선거라는 평이 많았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져 정권 중간평가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도주 대사', '회칼 수석', '대파 논란' 등 윤 대통령의 각종 실점이 정권 심판론을 더욱 고조시켰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비명횡사 친명횡재'로 일컬어지는 공천 학살로 논란을 자초하며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임종석·박용진 등 공천 탈락자들이 당의 결정을 수용하면서 민주당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원팀' 선거를 치러냈고, 결국은 목표했던 의석수("151석 이상")를 달성했다. 공천 갈등으로 인한 위기는 오히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승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됐다. 이 대표의 벼랑끝 리더십이 승리한 셈이다. 이번 총선 승리로 이 대표가 얻게 된 소득은 매우 크다. 일단 현 시점에서 차기 대선 맞상대로 거론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신드롬을 한풀 꺾어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 3일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여론조사 업체 메트릭스에 의뢰해 지난달 30∼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례 여론조사(응답률 12.4%, 오차범위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 따르면, 두 사람 간 양자 대결을 가정한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이 대표는 37%, 한 위원장은 31%로 나타난 바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실정에 구원투수 격으로 등판했지만 총선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뽑아내지 못하면서 정치적 미래에 노란불이 켜졌다. 지난 대선 적수였던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 상실 등 우려는 두말할 것도 없는 상황. 이 대표의 리더십은 두 사람에 대한 반사 효과로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입지 면에서도 이 대표는 21대 국회 때보다 장악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대선 때까지만 해도 당내 친(親)이명재명계는 비주류에 가까웠다. 그러나 8.28 전당대회를 거치며 친명계가 한 차례 확장됐고, 이번 총선을 통해 자칭타칭 친명계 후보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면서 친명계는 명실상부 민주당 주류로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됐다. 민주당은 이제 그야말로 '이재명의 민주당'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선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앞으로 대선까지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지난 대선 당시 대선 레이스 초반만 하더라도 여당 후보 가운데 부동의 1위로 보였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선거에 가까워지며 몇 가지 악재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이 대표가 가지는 지금의 입지가 3년 후까지도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총선을 통해 얻어낸 과반 의석이 이 대표의 대선가도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지난 대선 때도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언론 개혁안, 임대차 3법안 입안 과정에서 여당의 의견을 묵살한 채 '입법 독주' 모습을 보여 중도층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은 검찰·언론 개혁안의 완수를 다짐하고 있다. 입법 속도전에 다시 나선다면 입법 독주는 지난 대선 때처럼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민주당 내 '친명 체제'를 완성했다 하더라도 이 대표가 차기 대선 승리를 안심하긴 이른 이유가 또 있다. 조국혁신당의 성공으로 급부상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존재 때문이다. 선거 초반 '조나땡(조국이 나오면 땡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조 전 장관의 존재는 미미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자마자 두각을 나타내더니 결국 10석 이상을 얻어 제3정당으로 올라섰다. 불과 1개월 전 창당대회를 연 신생 정당이 거뒀다고 보기 어려운 이례적인 성과다. 이번 총선의 최대 수혜자가 조 전 장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야권 지지층의 절반 가까이 비례대표 투표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아닌 조국혁신당을 찍은 것을 두고 정치 분석가들은 이 대표 리더십에 대한 비토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 대표에게 조국혁신당과 조 전 장관의 존재가 부담스러운 이유다. 향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는 상호 협조하면서도 야권 내 입지를 두고는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됐다. 또다른 변수는 당내 친문재인계 세력이다. 친문 진영이 비주류로 밀려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당내에서 상당한 지분이 있다. 이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로서 입지를 굳건하게 다지려면 친문 세력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총선 과정에서 친문 진영은 집단적으로 공천에서 밀려나면서 피해의식을 갖게 됐다. 친문 인사들이 총선 패배 시 책임론이 일 것을 우려해 이 대표에게 드러내 놓고 각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총선 이후에도 과연 이들이 이 대표에게 협력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특히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민주당,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이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고 말해 향후 친문 그룹이 주류인 새로운미래나 조국혁신당을 밀어주겠다는 암시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 암초는 바로 '사법 리스크'다. 이 대표는 대장동·백현동·위례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선거법 위반 등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영향이 미미했으나, 대선 전에는 재판들이 줄줄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만일 이 대표가 1·2심에서라도 한 건이라도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3심에서 유죄 확정판결까지 받게 되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피선거권을 잃게 된다.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이 대표 개인의 정치적 생명을 잃는 것은 물론, 야권 전체에 악영향을 미쳐 정권 교체를 어렵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댓글 0